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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잊지 말자고? 이걸 믿으라고?


김선주 언론인


소설가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사주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힘들 때마다 사주명리학 책을 들여다보며 살아온 속사정을 아는지라 요즘 속이 시끄럽구나 싶었다. 친구는 딱 죽고 싶다, 이 시대의 정신과 나하고는 안 맞는 거 같다고 했다. 선문답 같은 메시지가 오고 갔다. 친구는… 그래도 콩밭은 매러 가야지 하고는 카톡방에서 사라졌다. 마음 잡고 소설 속으로 다시 빠져들어 가려는 모양이다.



아무리 슬퍼도 허망해도 분노해도 하루 세끼 밥은 먹어야 하고 밥이 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밥벌이를 해야 한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염천에 밥이 될지 죽이 될지도 모르는 시를 쓴다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인간이다.


세월호 사고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구조보다는 브이아이피한테 보고할 동영상을 구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자신의 콩밭을 매는 거라고 믿고 사는 사람도 있는 게 세상이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이 바퀴벌레나 모기처럼 박멸할 대상이 되어 죽어가는데도 언젠가는 자신들에게 닥칠 일인지도 모르는데도, 인류의 대부분은 손끝 하나 까딱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세계이다.



지금 내가 있는 세상은 왜 이 모양인지에 감정몰입이 되면 이게 내 팔자인가 이게 대한민국의 운명인가 이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고 똑같은 잘못을 거듭하며 사는 것이 인류의 역사인가라는 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고 무력감과 무능감, 희망 없음의 나락으로 이어진다.



가파도는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한다.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로 천천히 달려도 30분이 안 걸린다. 자동차도 전신주도 없다. 우리나라 섬 가운데 가장 낮은 섬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자리에 앉아 <어린 왕자>처럼 빙글빙글 돌아앉으면 해 달 별 바다 바람 그리고 하느님하고도 언제나 직거래가 가능할 것 같은 곳이다.


4월엔 청보리축제가 열리고, 6월 한 달은 성게철이다. 새카만 가시가 다닥다닥 붙은 성게를 반으로 쪼개면 대추만한 알갱이가 있고 그 속을 작은 티스푼으로 파내면 황금색의 알이 나온다. 값도 맛도 금에 버금간다. 해녀들은 성게를 따 자루째 바닷가에 내려놓고 바삐 바다로 들어가고 동네 사람들은 모여앉아 그 금을 파낸다.



왜 6월 한 달만 따느냐고 물으니 그때 성게알이 가장 맛있고 그렇게 해야 성게가 보호되고 알이 꽉 차니까 매년 딱 한 달만 작업하고 끝낸다고 한다. 대자본이 들어가 싹쓸이를 하거나 체인점이 들어가 섬의 생산 판매 생존의 오래된 구조를 파괴하지만 않는다면 낙원이 따로 없다고 여겨졌다.



6월에 가파도에 갔다.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 어떻게 노년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세월호의 서러움이 심하게 이입되어 마음이 격렬한 요동을 쳤다. 정답을 찾았다 싶었다. 그냥 자연에 동화되고 순응하며 가파도에서 밥집을 하며 나도 먹고 남도 먹이고 살자고 마음먹었다.



단원고 2학년 김동협 학생의 편집 안 된 동영상이 마음을 찢어놓았다. 마지막 순간인데도 침착하게 상황을 보도하는 리포터의 자세와 중간중간 비명 같은 속마음, 랩으로 자신의 심경을 또박또박 표현한.


이 학생이 하고 싶었던 많은 일을 생각하니 오래 살아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노년을 잘 지낼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추악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인간은 순간순간 애초의 잊지 말자고 다짐한 마음을 잊고 사는 건가 싶어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유병언이다. 한 달 전에 이미 백골이 되어 발견된 유병언의 사체를 어딘가에 처박아놓고 전 국민을 상대로 술래잡기 놀음을 거국적으로 한 셈인데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무엇을 잊지 않겠다고? 무엇을 믿으라고? 거짓말이다. 이렇게 유언비어가 난무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흉흉한 유언비어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국가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데 국민은 지쳤다. 당장 우리가 매야 할 콩밭이 바로 이 지점임을, 특별법을 만들어 일단 시작부터 하는 것이 천만개의 노란 리본이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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