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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추억하다 - 한겨레 프리즘

2012.03.20 13:45

해피바이러스 조회 수:1785 추천:278

역사에 성폭행 당하고 가난 속에 아이 잃고 숨죽여 화장실 치우는 진짜 여성 정치인들

 

 추억 속 그녀는 구슬픈 노래를 잘도 불렀다. 대구 상인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그녀는 단칸방 한편에서 커피를 끓여 내놓았다. 2010년 1월,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용수(85) 할머니는 작은 화장대 앞에 앉아 옛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부모는 날품 팔아 끼니를 이었다. 일제와 그 앞잡이들은 가난한 집 여자만 골라 꾀었다. 가죽 구두를 주겠다는 일본인에게 속아 그녀는 기차에 올랐다. 역 앞 언덕에 도라지 꽃이 흐드러졌던 것을 그녀는 기억한다. 열여섯 소녀는 대만에 끌려갔다. 헌옷으로 생리혈을 닦으며 하루 네댓명을 상대했다. 군인들은 바지도 벗지 않고 지퍼만 내렸다. 아래가 헐고 고름이 차고 피가 엉겨붙었다.

 

  해방 뒤 고향에 돌아왔으나 가족은 멀어지고 가난은 여전했다. 그 세월을 혼자 치러낸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노래를 불러 주었다.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야. 제목은 모르겠고.” 그녀는 눈을 감고 노래 불렀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노래 들었다. “꽃다운 이팔소녀는 울어라도 보았으면, 철없는 사랑에 울기라도 했더라면….”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14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 지원했다.

 

  또다른 추억 속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2009년 11월, 나는 대형마트 노동자를 취재하고 있었다. 빈곤을 대물림하는 어느 노동자를 만났다. 시무룩하던 그의 표정은 아내 이야기에 밝아졌다. “똑똑하고 말 잘한다”고 자랑했다. 아내는 장애인 성문제를 상담·교육하는 장애인이었다.

 

 어느날 아내 조윤숙(38)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비정규직 남편의 일터에 왔다. 마트 주차장 구석에서 부부는 조용히 만났다. “화장실 가려고 날 찾아온다”고 나중에 남편이 말했다. 하반신이 마비된 그녀는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없다. 아무한테나 도움을 청할 순 없으니 남편을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서울 중계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장애인 지원비, 기초생활수급권자 지원비에 남편 월급 170만원을 보태 생활한다. 뇌성마비를 앓은 첫아이는 다섯살 되던 해, 돌연사했다.

 

  그녀의 깊은 고통과 강한 의지는 배변·목욕·요리·출산·육아에 이르는 일상과 일생에 걸쳐 있다. 몸을 뒤틀면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를 나는 먼발치서 바라보며 경외했다. 조윤숙씨는 18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그녀, 추억의 곳곳에서 얼굴 숨기고 웅크린 그녀는 키가 작다. 김순자(58)씨의 키는 151㎝다. 농사짓던 부모는 가난하여 자식을 잘 먹이지 못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녀는 스물셋에 결혼했다. 그녀가 마흔이 됐을 때, 오랫동안 앓아누웠던 남편이 세상을 떴다. 10년 전부터 청소 일을 시작했다. 재벌이 운영하는 어느 대학의 비정규직 청소부가 됐다. 월급 55만원을 받았다.

 

  그녀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으면, 교수들이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지퍼를 내렸다. “우리를 사람으로, 여자로 여겼다면 그런 짓은 못했을 것”이라고 지난 주말, 그녀는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그녀는 곳곳에 있다. 어딜 가든 청소 아줌마가 있다. 몸집 작은 그녀는 고개 숙이고 숨죽여 일한다. 사람들은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김순자씨는 지난 16일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확정됐다.

 

  한국 정치인의 절대다수가 엘리트다. 여성 정치인 대다수도 엘리트다. 엘리트 남성과 엘리트 여성이 서로 경쟁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여성 대다수는 가난과 소외의 삶을 온몸으로 헤쳐온 이들이다. 그들을 불러내 핍진한 우리를 대표하게 만드는 일이 진정한 정치 발전 아닐까. 가슴 저린 추억 속 그녀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안수찬 탐사보도팀장TO=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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