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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성姓을 선택할 권리>
호주제 폐지 주장하는 한의사 이유명호 원장
- new human DAHN 2001년 2월호에서-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방송프로나 잡지, 신문에서 한두 번씩은 마주쳤을, 시쳇말로 요즘 잘 나가는 한의사 이유명호 원장. 방송출연을 섭외 받을 때면 PD나 방송작가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사회자가 제 이름에 대해 꼭 물어보도록 해 주세요.”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姓을 하나씩 따서 두자의 성을 쓰고 있다. 남자의 성씨로 대를 잇는 ‘아들밝힘증’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질병을 불러왔는지 ‘임상학적으로’뼈저리게 느꼈던 탓이다.

한의학 열풍이다. 도올 김용옥이 포문을 열고, 금오 김홍경에 이은 음양과 오행, 사상체질과 양생론 등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이른바 한의학 스타들을 속속 배출시키고 있다. 이 가운데 흔치 않은 넉자이름을 지닌 남강한의원 이유명호 원장의 출현은 첫대면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살을 빼기 전에 마음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살풀이 속풀이론’에서부터 아들 낳게 해달라는 성화에 지쳐 시작한 호주제 폐지 운동까지. 사람이건 조직이건 일단 ‘병이 있다’고 진단되면 성큼 주저앉아 처방전이 담긴 보따리부터 풀어내는 것이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얼마 전에 제가 방송사고 쳤어요. 여자가 밭이고 남자가 씨다, 뭐 아직도 이런 생각하고 있냐, 말 그대로‘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말인데, 이 말에는 아이의 유전적 형질을 결정하는 것은 부계 쪽 유전자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건 의학적으로 잘못된 미신이다, 라고 말해버린 거지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생방송 아침 프로그램이었는데, 순간 스태프들의 얼굴이 하얘지더란다. 그저 여성질환, 갱년기 증상 뭐 이런 얘기를 바랐는데, 대뜸 대본에도 없는 ‘정치적으로 민감한’얘기를 펼치니 잔뜩 긴장할 수밖에.

“비유를 하자면 ‘난자는 냉장고이고 정자는 달걀만 하다’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난자가 왜 그렇게 크냐. 아이를 키우는 영양물질의 원천이 모두 난자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모계로만 전달되는 독자적인 DNA가 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여성들의 유전자가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죠. 이상하죠? 그 말에 왜들 그렇게 겁을 먹는지.”

줄서 기다리는 환자를 모두 진료하고, 정오를 한참이나 넘긴 시간에야 식당에 앉은 이유명호 원장은 요즘 근황을 묻자 얼마 전 방송에서 ‘사고 친’얘기를 먼저 떠올린다. 이어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는데, 그 모양새가 분명 생선 한 마리는 더 얹어서 나오지 싶을 정도로 살갑다.

“호주제 폐지요?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한해 동안 3만 명의 여아가 낙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한의원에 와서 ‘아들 낳는 처방 없냐’고 묻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또 아들 못 낳는다고 신경쇠약에다 화병에 걸려 임맥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 여성들은 어떻고요.”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의 남아선호사상은 심각한다는 얘기였다. 이같은 의식을 강화시키는 법적 제도적 장치인 호주제를 그저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이유에서 그의 호주제 폐지론은 시작되었다. 의사로서 본분을 다한 행동이었다.


아들의 동거인으로 기록되는 어머니

호주제란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간 서열구조를 남편 아들 손자 부인 딸 순으로 나눈 것인데, 아들만이 한집안의 대를 잇는 호주의 역할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법적 장치이다.

“호주제 폐지라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도 조상 대대로 내려온 미풍양속인데 그걸 어떻게 쉽게 고치냐는 말씀이시죠. 원래 호주제란 일제시대 징용이나 독립군 색출을 위해 만들어놓은 식민시대의 잔재입니다. 그런데 그걸 국민정서라고 고스란히 남겨두고 있으니 별의별 일이 다 생깁니다. 세 살 손자가 예순 살 할머니의 호주가 되고, 이혼한 엄마랑 같이 사는 아들이 동거인으로 기록됩니다. 또 바람둥이 남편을 참아내고 몇 십 년 동안 고스란히 모아온 재산을 덜컥 혼외婚外 아들이 물려받아도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인데, 얼마나 비상식적입니까. 아름다운 풍속이라고는 할 수 없죠.”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혼외로 들어온 자식이라도 아들을 따른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원리가 21세기 법조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 사이 음식점의 종업원은 몇 번이나 테이블에 들러 뭐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왔는데, “원장님 유명세가 이런 데서도 진가를 발휘하나 보네요”라는 말에 손 사레를 친다.

“아니에요, 저 분들 정성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는 마음이 전해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하랴 밥 먹으랴 바쁜 틈틈이, “김치 정말 맛있네, 이 찌개는 왜 이렇게 맛있어”라는 음식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일어서는 일행에게 “어유, 커피 타놨는데…”라며 잡아 앉힌 인심도, 맛깔스럽게 음식을 삼키는 그의 입맛과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입담 때문이었으리라.

성씨 선택은 천부인권

호주제의 가장 큼 핵심은 ‘아들이 대代를 잇는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 즉, 부계의 성을 따르는 것을 그 증표로 삼는데, 이런 의미에서 그의 ‘이유’라는 성은 유별나다.
“아버지, 어머니 성을 하나씩 따 붙인 거죠, 그럼 사람들은 묻죠, 두 개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성은 네 개가되는 거냐고요. 그럼 나중에는 성이 4의 배수로 계속 늘어가겠네, 라고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 때가 되면 맘에 드는 성을 다시 선택하는 거예요.”

성씨姓氏를 선택한다? 이거 참, 종친회 할아버지들이 당장 짐 싸들고 올라올 만한 발언이 아니던가.

“근본도 모르는 상놈이 되자는 말이냐고 호통을 치시죠. 그런데 상놈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내 위로 조상을 1천 명이라 친다면, 5백 분은 외가쪽 조상, 나머지 5백분 가운데 다시 2백50 분은 친가쪽 할머니입니다. 결국 나와 성씨가 같은 2백50 분의 친가쪽 할아버지만을 내뿌리로 삼자는 것인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실제, 공자 맹자의 나라인 중국에서조차 1981년 혼인법을 개정하며, 자녀가 모친인자 부친의 성, 모두를 따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무조건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우리의 호주제가 성姓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한 ‘천부인권에 위배된다’며, UN이 해마다 개정을 권고하는 사항이라고 전한다. 이같이 전통적 가족제도에 기반한 호주제는 앞으로 그 실효성을 찾기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말을 잇는다.

“결혼과 가족의 형태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혈연적 관계에서 벗어나 공동체 가족이나 비혼, 동거가족, 미혼모들도 증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현재의 법제도로는 보호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이죠. 언제까지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미래를 내다본다면 좀더 포용력 있고, 유연한 법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 대안으로 현재의 호적 대신 ‘1인1호적제’를 쓰자는 말도 나온다. 호적이란 이른바 신분증명제도인데, 요즘처럼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굴비 엮듯 가족의 신상명세까지 소소하게 공개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개인정보유출이고 사생활 침해라는 것“외국사람들은 우리 나라 압사지원서에 사진 붙이고 키나 몸무게 치수까지 적는 것에 대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능력을 평가하는데 그런 게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요. 인권침해라고까지 말하죠. 근데 우리 나라 호적은 더 심각합니다. 내 신상만 증명하면 되는데, 동생이 언제 누구랑 이혼했는지까지 소상하게 밝혀지잖아요. 불쾌한 일이죠. 그 동안 우리가 좀 무감각하게 살지 않았나 싶어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혼외로 들어온 자식이라도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법조항이 바로 호주제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바뀌지 않았냐고 하는데, 호주제로 인한 피해는 여아낙태에서 동성동본 혼인 금지까지 헤야릴 수 없습니다.”

이번 생에 해야 할 일

어려서부터 시경詩經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는 이유명호 원장. 동내에서 굿을 한다고 하면 맨 앞자리로 헤집고 가 턱을 괴고 앉았다는 그녀는 불교철학과를 갈까 어쩔까 하다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 낫겠다 싶어 미련 없이 한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곳저곳 좋은 일 한다는 단체에 후원금 내고, 배고픈 사람들 불러내 밥 사주는 일에, 환자들 모아 매주 산에 오르는 일까지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그녀는 늘 ‘다음 생’을 생각한다.

“이번 생에 해야되는 일이 뭔지 늘 생각해요. 그 일을 다하려면 참 바쁘거든요. 몸과 마음이 좀 편해보자고 투정부리기도 하지요. 그럼 가만히 마음과 거래합니다. 늦어도 30년 후면 소나무 이부자리에서 그저 누워 쉴텐데, 그 때 가서 내 인생 아무 일 없이 무덤덤하게 가노라고 말하면 얼마나 허망하겠어, 라고 말입니다. 누구 말대로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한 사람에게라도 더 값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다음 생’에 또 얼마나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기겠어요.”

소양인 체질인지라 본래 밝고 낙천적이라는 이유명호 원장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호주제 폐지는 사실 젊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에요. 우리 어머니들 늘 걱정 속에 찌들어 사시잖아요. 과거는 후회하고 미래는 걱정하고. 여성으로 태어나 이것저것 상처받고 속 삭혀야 했던 사연들이 너무 많았던 탓이지요. 가장으로서 책무를 책임져야 했던 우리 아버지들 역시 마찬가지구요. 세상 반쪽씩 같이 짊어지고 가는 게 좀 수월하지 않겠어요. 분별하고, 편가르는 것 그만하고, 이제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고요.”

글 김태연(taeyeoun@newhuman.org) 사진 김경아



Date : 2004-12-02 0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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