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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이유명호 그는 누구인가

2010.01.15 15:15

yakchobat 조회 수:1373 추천:198

독일의 뤼브케 대통령이 방한했던 여고생 시절이었다. 당시엔 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 우리들은 한복 부대로 동원되어 공항에 나가 태극기나 풍선을 흔들어야 했다. 그때 나는 여고생이 입기엔 무척 ‘점잖은’ 미색 저고리에 밤색 치마를 입고 나갔다. 할머니가 엄마 헌 옷을 뜯어서 만들어준 것이었는데,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아버지의 ‘방해’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옷이었다.

누구에게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듯, 나 역시 아버지를 좀처럼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군 복무 중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탈영을 하고 싶으셨다니, 그 사랑은 원초적이랄 수밖에.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가 더 좋으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전교에서 유일하게 아버지가 좋다는 쪽에 손을 들기도 했다. 한번은 공부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싶어 교실로 찾아와 담임선생님이 장학사인 줄 알고 놀라기도 했다.

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엽기적인 학부모로 불릴 만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랑 평일에 등교 대신 광릉에 놀러 갔다가 다음날 등교해보니 담임이 바뀌어 있었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며 밤에 불을 꺼버려 숙제를 해야 하는 나는 울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아버지가 아시는 교장선생님이 훌륭하다는 이유로 엄청난 하향 지원을 했다(당시엔 중학교도 성적에 따라 선택했다). 이 밖에도 아침밥은 반드시 온 식구와 함께 허름한 기사식당에서 먹어야 했는데, 교복 입은 나는 창피해서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엽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시는 걸 즐겨했다. 한번은 이름도 야한 ‘내시’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이니 극장 입구에서 막아서는 것은 당연지사. 아버지는 “부모가 데리고 들어가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극장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그 극장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아버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비교적 단속이 덜한 동네 극장에 오면 반드시 나와 함께 보러 갔다.

아버지는 이처럼 사회가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권위와 질서를 거부하는 용기를 내게 심어주셨다. 또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며 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시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반말을 쓰도록 하신 아버지는 이로 인해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으셨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참고 살아라’라는 말 대신 “남편이 한 대라도 때리면 당장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는 당신의 나이 47세에 경기도 여주 신륵사 강가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가 아버지의 권유로 한의대에 입학하여 본과 1학년 1학기 말 시험을 보던 때였다.

나의 생애 모든 걸 가르쳐주신 아버지는, 당신의 죽음마저도 내게 가르침으로 남겼다. 부모나 자식 등 아주 내 살 같은 이들의 죽음을 경험해봐야 비로소 생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시간이, 건강이, 환경이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인생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즐겁게 보내겠다는 생각에 오늘을 담보한 채 모든 것을 참고 뒤로 미루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매장으로 묻힌 아버지의 시신을 들어내어 28년 만에 화장으로 모셨다. 화장한 가루를 강원도 구룡사 적송 밑에 뿌리고, 타다 남은 뼛조각 하나는 내 지갑 속에 들어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죽음은 그렇게 우리 옆에 늘 있는 것이다.


<필자 소개 >

서울 마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님은 ‘부모 성姓 함께 쓰기’를 하면서부터 이름이 ‘이유명호’로 되었다. 요즘엔 호주제 폐지운동에 한창인데 후천적 페미니스트였던 그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단다. 이 글은 노정환 기자가 정리했다.

출처:작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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