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akchobat.com/files/attach/images/672/25ac150166d1c1b79cef64f80f51bc28.jpg
  logo    
먹고! 읽고! 걷고!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이동 될수 있습니다



한국의 책쟁이들

2009.09.30 12:40

약초궁주 조회 수:2298



한국의 책쟁이들

청림 출판에서 나왔다.
임종업 기자의 서문 자체가 힘차고
간결하고 아름다워서
서문을 달라고 혔다.
내가 가로세로 토달고 지저귀느니
그의 글의 생생함이 백번 좋을듯 싶어서다.

책쟁이에 나 야그도 실렸다.

자궁에 햇볕정책 펴는 한의사로
앞으로 희망은 꽃피는 자궁의 짝궁이 될
<꽃피는 거시기? 를 쓰고 싶다는 것이
밝혀졌다. ㅎㅎ


~~~~~~~


이덕무(1741~1793)는 어릴 적부터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그의 방은 동, 서, 남쪽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한 책을 대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집안 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혜강 최한기(1803-1877)는 서울서 책만 사다 집안 재산을 탕진했다. 그래서 도성 밖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한 친구가 “아예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니, “책을 사는데 서울보다 편한 곳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값을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그리고 읽은 지 오래되면 헐값에 내다 팔아버렸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의 서울. 텔레비전이 왕왕대고 인터넷으로 무한정 정보가 흘러도, 잉크·종이의 향이 고인 우물에 엎드린 사람들이 있다. 책에 미친 이덕무와 최한기의 후예들이다.

#  김중렬씨.
2003년 군산대 한문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그는 오후 2시면 작은 가방을 메고 책방으로 간다. 남들은 직장에 출근하는 것으로 안다.
허름한 가방에는 두툼한 수첩이 들었다. 거기에는 구입한 책의 목록이 가나다 순으로 정리돼 있다. 얇았던 것이 차츰 불어나 이제는 1000쪽에 이른다. 중국어책, 일본어책, 영인본, 학술지, 석박사 논문으로 나뉘어 깨알같다.
2층 큰 방은 중국어 원서와 한문학 관련 책, 각종 사전류가 가득하고, 평소에는 잠가두는 그 옆방은 한적과 근현대 고서가 쌓였다. 개미굴을 연상케 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틈을 빼고는 천장까지 책이다.
‘몇 권이나 되느냐’는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이다 결국은 ‘모르겠다’였다. “중국어 책은 1만8600권이오.” 그나마 원서는 중복될까 봐 기록해둔 탓에 권수를 알 뿐이다.
......

성균관대 정문 앞 한옥이 책 무게에 못이겨 방고래가 꺼지는 바람에 30년 전 작정을 하고 이곳 튼실한 집으로 이사했다. 2층을 책방으로 쓰다가 책이 점점 불어나 건축기사가 와보고는 집이 무너지면 어떡하냐고 질겁했다......
지하실 작은 탁자 옆에는 저술 예정인 <최치원 문학연구> 목차가 걸려 있다. “완벽한 책 한 권은 내고 죽어야지.” 완벽한 책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칼만 갈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이다.

# 김영식(55)씨.  
그에게는 한때 서재가 있었다. 사방 벽을 책으로 두르고 가운데 책상을 둬 필요할 때 책을 뽑아보고 단상을 정리하곤 했다. 일과 후 피곤함은 새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책꽂이의 책을 책더미가 가리고, 방 한가운데도 책탑이 솟았다. 틈새의 통로조차 안쪽에서부터 차츰 채워져 이제 그방은 책 창고가 됐다. 책은 넘쳐 거실 벽에 퇴적되고 이제는 딸의 방까지 범람했다.
책 한권을 300g으로 치면 책 무게가 3t., 이삿짐센터에서 “책은 돌덩이”라면서 돈을 더 내라고 해 웃돈 주어야 했다. 지금은 그 두 배쯤 돼 1만권쯤 된다. 대물림 목표치에는 이른 셈이다. “지식욕으로 포장된 소유욕인지도 모르겠어요.”  
책방을 거르면 허전하기는 전과 다름없지만 요즘은 책 사는 것을 절제한다. 빈 손으로 책방을 나설 때가 잦다. 그는 책사기를 절제한다기보다 책 둘 공간을 아낀다고 표현했다.

#  허기량씨.
축협 중앙지점장을 퇴직하여 부동산업소를 운영한다. 그 건물 30여평 지하에는 풀다만 책뭉치가 쌓였다. 다섯 트럭(2t) 분량이다. 이태 전 집에서 옮겨오면서 한 트럭을 버렸다. 가슴 한켠이 주저앉는 것 같았고 지금껏 살아온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내는 책이라면 질색이다. 그 앞에서 책을 사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지키지 못할 약속임은 피차 알았다. 책을 사면 헐렁한 윗옷에 숨겨 들여가고, 숨길 수 없는 양이면 아내가 교회를 간 틈을 노렸다.
요즘도 점심식사 뒤면 운동삼아 근처의 헌책방으로 간다. 물론 어김없이 책 한두 권이 손에 들려 책더미를 불린다. 어쩌다 아내가 지하실에 들르면 눈길 안준 동안의 증가분은 금방 표가 난다. 허씨는 저쪽 것을 이쪽으로 옮긴 거라고 둘러대고 아내는 속아준다.
언젠가 한 트럭을 버리고 뭐하러 또 사느냐는 책방 주인 말에 “어느 것은 보는 재미, 어느 것은 읽는 재미, 어느 것은 만지는 재미”라고 답했다.
.....
신간안내를 보고 책 제목을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헌책방에서 눈에 띄는대로 사고 소원을 이룬 것은 줄을 그어 지웠다.
“한 권 값이면 서너 권을 살 수 있잖아요. 게다가 잘하면 보물을 건지기도 하고요.”
지금은 썰렁한 지하를 서재로 꾸며 음악 틀어놓고 책 읽으며 글씨 연습하고, 때로 뒷산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꿈을 꾼다. 그러나 부부싸움 때 책이 단골 시비다. “내가 깔려 죽어야 책을 안 살 것”이라는 말이 나올 쯤이면 말다툼은 사실상 남편의 판정패다.

  ***
이렇게 책에 미친 사람들이 고령화하고 차츰 줄어드는 추세다. 서대문구 홍제동의 헌책방인 대양서점 주인 정종성씨는 “단골 대부분이 50~60대”라면서 30~40대는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나이드신 분이 다녀간 지 오래면 전에는 걱정이 돼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귀띔이다. 언젠가 건강이 어떠신지 물었다가 “그 양반 돌아가셨어요”라는 답을 듣고 당황했다는 것이다. 손에 돈이 들어오는 대로 모아들인 책들은 그들의 분신과 마찬가지여서 그들의 체온이 식으면 장서 역시 혼백처럼 허공에 흩어지기 일쑤. 혹여 대학도서관의 구석자리를 얻으면 행운이다. 그나마 썩음썩음한 책들, 즉 책과 고물의 중간지대에 있는 것들은 버려져 파지상을 통해 제지공장으로 가버린다.

나는 서서히 없어져가는 ‘책에 미친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젊은 이들 가운데서 알게모르게 이어지는 광증의 전통을 찾아내고 싶었다. 이 책에 실린 스물 여덟 꼭지의 글은 그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책의 생산, 유통, 소비는 물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서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소개된 이들은 정치인도 연예인도 국회의원도 아닌,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들이다. 생산적인 일로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은 굳이 책에서 길을 찾지 않아도 책으로써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들은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책을 펴 읽고, 서점이나 헌책방에서 주머닛돈을 뒤적이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웃이다.
나는 이들이 있어 우리사회가 이만큼 지탱된다고 본다. 눈앞 이익과 무관한 책을 통해서 건전한 생각을 굳힌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족과 사회 나아가 국가를 위한 버팀대가 되어 있는 것. 튼실한 이들이 아니라면 우리사회는 몹시 허랑하여 언제 무너질지 모를 터다.  
어떤 책쟁이는 그 동안 책 산 돈을 땅에 투자했다면 부자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말인 즉 옳다. 현대 금융사회에서 돈은 곧 흐름이거니 부라는 것은 좋은 길목에서 흐름을 낚아채는 것 아닌가. 책쟁이들까지 모두 들고 일어나 돈낚시에 나선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다.  

돈과 이름값에 오로지 미친 세상에서 책에 미친 미련퉁이들이 있어 더불어 살 만하다. 이들이 진짜 우리문화의 담지자들이다. 책 살 돈을 누가 따로 주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깎아주지도 않는데, 스스로 책을 사들여 읽고 쌓아 지식과 교양의 대를 잇는 이들. 나라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할 일을 사사로이 떠맡고 있는 이들이 애국자가 아니라면 누구를 꼽을까.

이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내내 행복했다. 애초 신문기사 작성을 위해 만났지만 책을 사이에 두고 금세 친구가 돼 서로 흉금을 텄다. 그들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나를 통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만일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알량한 문자를 놀리는 나의 아둔함 탓이다. 이나마 형식을 갖춘 것도 오로지 게으른 자를 독하게 채근한 편집자 덕이다. 청림출판과 편집자인 송복란 과장께 고마움을 전한다.

임종업-----
한겨레신문 창간 초기에 입사해 편집경력 기자로 15년 동안 주야장천 편집을 했다. 윗분 눈 밖에 난 것이 계기가 돼 사내 도서실로 옮겨와 책먼지를 떨다가 본격적으로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 그 인연으로 편집기획팀, 여론매체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책·출판을 담당했다. 잠깐 기적적으로 존재했던 책 섹션 <18.0℃>에서 정말 신나게 일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밤을 새워 책을 읽었고 ‘헌책방 순례’와 ‘한국의 책쟁이’를 연재했다.

“이 책들 다 본 거지? 읽은 책은 팔아버려! 나머지 책들은 다 읽을 수 있어? 가능성 없는 책도 팔아버려!” 딸의 논리에 주눅 들어 한 트럭 이상의 책을 버리고도 요즘 또 성화에 시달리고 있다. 야무진 꿈 하나. 책을 펼쳐놓고 마음대로 뽑아보며 글을 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두 번째 꿈. 딸이 시집가기 전에 공구서만 남기고 모두 처분할 수 있기를.

지금은 대중문화팀에서 미술·사진·건축을 2년째 담당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회화·조각이 시·소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겨우 깨치고 작품감상에 푹 빠져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문학과 미술을 넘나드는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목표.
산이 좋아 북한산 곁으로 이사 왔고 한해 한차례 꼭 지리산을 간다. 배낭에는 책 한 권을 꼭 넣는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22 '행복한 출근길' [1] file 약초궁주 2009.09.09 2364
1321 얘야 ~~나도 눈크게 번쩍 크게 뜨고 싶다. [1] 약초궁주 2008.12.31 2353
1320 17일욜 교보광화문점 <머리가 ..아이밥상의 모든것> [6] file yakchobat 2011.04.13 2351
1319 [돼지난담] 중국드라마 [2] 장철학정명원 2009.11.05 2347
1318 혹시 어디서 귀신을 만나거들랑~~ [1] 약초궁주 2009.05.21 2345
1317 제주 올레길에 내맘대로 별을 주다(시사IN) [2] file yakchobat 2008.10.16 2340
1316 74세에 그림그려~국민화가된, [2] file 약초궁주 2010.03.23 2334
1315 옛시장 올레걷고 국밥 한그릇. [1] file 약초궁주 2012.07.18 2327
1314 저도 강화올레 가요 [1] 조사라 2009.08.07 2326
1313 오늘밤~~백분 토론 '김상용' 교수님과 '오한숙희' 님! [1] 약초궁주 2008.11.20 2324
1312 커피야 네가 아무리 유혹해도 난 찔레꽃꿀!!! [4] 약초궁주 2012.06.12 2323
1311 [질러봅시다] 포청천의 부하직원 장철학정명원 2009.02.28 2322
1310 이순신. 꿈속에라도 나타나 주세요 약초궁주 2009.04.03 2320
1309 <한부모 가정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모임> 성명서 약초궁주 2008.11.11 2319
1308 강화섬 한바퀴- 월요일 마지막 코스 끝 file yakchobat 2008.10.14 2319
1307 [돼지난담] 창강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장철학정명원 2009.04.11 2316
1306 <아주 작은 차이>를 읽고 [3] 지혜자유용기 2008.11.14 2312
1305 자장 자장 자장시. [1] 약초궁주 2009.02.25 2306
1304 요리-땅콩버터쏘스와 훠궈 약초궁주 2009.10.15 2303
1303 물맞이-이시영 [1] 약초궁주 2009.08.11 2301

side_menu_title

  • 약초밭자유놀이터
  • 먹고! 읽고! 걷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