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일상어가 되었다. 주로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온 값비싼 물건을 뜻하는 명품이란 말은 명품 거리, 백화점 명품관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이제는 토착 감성과 결합하여 명품 한우, 명품 꽃마을, 명품 둘레길 등등…. 온갖 데 갖다 붙이는 꾸밈말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명품이란 말에 중독돼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명품 중독을 관찰해 볼 흥미로운 영화가 등장했다. 수다의 미학을 보여주는 우디 알렌이 <미드나잇 인 파리>를 비롯하여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 산책을 마감하며 뉴욕으로 돌아와 만든 <블루 재스민>이 바로 그렇다.
제목을 듣자마자 ‘블루 문’이 떠오른다. 이 곡은 빌리 할리데이, 냇 킹 콜, 줄리 런던 등 세대를 넘어 즐겨 불려지는 전설적인 재즈이다. 재즈광이자 재즈 연주가이기도 한 우디 알렌이 이런 제목을 붙이고,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이 곡을 넣었다.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달인 ‘블루 문’의 상서롭지 못하지만, 마음 끌리는 감흥력이 산파된다.
재스민이 비행기 안 옆자리 노인에게 질릴 정도로 퍼붓는 일방적 수다에서 영화가 열린다. 뉴욕에서 누린 화려한 인생 드러내기가 핵심이다. 재스민은 하얀 샤넬 재킷에 루이뷔통 가방세트를 들고 등장한다. 명품 향유가 그녀의 취향이자 삶의 가치이며 미덕으로 묘사된다.
화려한 명품 뒤, 허영과 거짓의 두 얼굴
그녀가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남루한 구석은 동생이 사는 집이다. 명품 제공자인 부자 남편이 사기꾼 사업가이자 바람둥이라는 진실의 발견은 그녀를 붕괴시킨다. 호화 주택에 살며 명품을 휘감고 즐기던 파티, 기부금도 내며 살아온 뉴욕 상위 1%인 그녀는 진실의 발견 후 숨조차 쉴 수 없어 떠났다. 영화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재스민이란 인물의 속내, 개인사적 편린을 뒤집어 보인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사랑을 믿으며 누린 상류 생활은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습관과 취향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두르고 다닐 명품이 있고, 빈털터리여도 습관적으로 일등석을 타고 왔다. 영화가 진전하면서 그녀의 허영과 거짓이 때론 소소하게 때론 과격하게 드러난다. “명품 속내를 관찰하는 코미디란 이런 것이구나!” 노장 우디 알렌의 인간관찰, 특히 여성 속내 관찰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은근하게 감기는 재즈까지 곁들여지니 청각적 쾌락도 함께한다.
샌프란시스코 거리에는 명품 거리가 없다. 당연히 돈도 없다. 동생에게 얹혀살면서도 그녀는 동생의 남자친구를 루저라고 비웃고, 부자 남자를 만날 꿈에 집착한다. “내가 홀로 서 있는 게 보이죠. 내 마음에 희망도 사랑도 없어요.” ‘블루 문’의 가사처럼 서글퍼도 솔직하게 속내를 고백할 용기나 의지도 그녀에겐 결여되어 있다.
망가져 가는 재스민은 영화 속 인물이니 거리 두고 구경하는 재미가 넘쳐난다. 그런데 현실로 걸어 나와도 명품 두른 여성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프랑스산 명품 주 고객이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이란 통계가 나오기도 한다. 재스민의 가방, 루이뷔통은 지난 10년간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490억에서 4천900억으로 한국 매출이 급신장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프랑스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처럼 표시가 드러나는 명품을 두르지 않는 편이다.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인간 명품 되기가 멋쟁이 인생의 비결인 것 정도는 상식이니까. 그래서 재스민의 명품중독증은 역사의식 결여가 개인사 의식 결여로 이어져 허영과 광기로 폭발하는 처량한 몰골로 드러난다. 우디 알렌이 유럽 산책 후 미국의 속내를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뒤집어 내는 솜씨가 웃음의 미학으로 터져 나온다.
* 팁: 재스민 역의 케이트 블라쳇이 신명나는 연기 혼을 보여준다. |
비올때 가방 씌우는 뭐시기 신경쓰시느라 허둥지둥..
옆에 있는 이룸은 가방님 상전되심에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간 그 존재가 사실 다들 명품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