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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여성살이] “난소야, 미안해”

» 김연/소설가

 

‘그분’을 보내며 눈물로 날을 지새우신 분들께 따뜻한 위로의 글을 올려야 하는데, ‘피 튀기는’ 유혈 낭자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난소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지난해 말. 몇 년 전부터 월경이 점점 늦춰지다 건너뛰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몸은 오래 전부터 구조 신호를 보내 왔는데 ‘나이 마흔에 폐경이 되는 드라마 여주인공도 있으니 나도 뭐, 이렇게 폐경이 되나 보다’ 여기며 징후들을 무심히 지나쳐 왔다.

 

 

삶이란 정말이지 장담할 게 없다. 자궁암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다 어떤 예감에 실로 오랜만에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검진하던 의사가 “어어…” 하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었다. 난소에 단순한 물혹으로 보이지 않는 달걀 크기만한 종양이 있다며 당장 혈액검사부터 했다.

 

그간 이런저런 운동도 하면서 내 몸을 돌보면서 살아왔다고 믿었다. 자궁에 있던 물혹이 이혼 뒤 사라졌다는 임상 보고서를 칼럼에 호기롭게 쓰기도 했다. 그런데 물혹도 아닌 더 불길한 덩어리가 내 몸속에서 자라고 있을 줄이야 ….

 

 

한의원을 찾았다. 한약을 먹고 침을 맞으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란 책을 경전처럼 외웠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후 육류는 끊다시피 했지만 어쩌다 먹던 ‘남의 살’도 술과 더불어 뚝 끊었다.

 

 잠들기 전에는 아랫배에 손을 올리고 “난소야, 미안해”라고 속삭였다. 지금까지 버텨 준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몸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자 기적처럼 월경이 다시 시작됐다. 한때는 귀찮았던 비릿한 붉은 피가 어찌나 반갑던지!

 

병원에서 지켜보자던 3개월이 지나고 난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종양 제거만이 아닌 난소 절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의사에게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내 딸을 세상에 보내 준 소중한 난소를 가능하면 지키고 싶노라고. 태어나서 가장 큰 수술을 받고 깨어났다.

한쪽만이 아닌 다른 쪽 난소에도(초음파에 잡히질 않은) 종양이 있었단다. 의사는 종양만을 제거하고 내 비원대로 난소는 살려 주었다.

 

수술 뒤 의사는 재발을 우려해 호르몬 치료용 루프나 주사제를 권했다. 피임할 일도 없는데 루프를 몸에 넣는다는 것도, 폐경을 유도하는 호르몬 주사를 비싼 돈 주고 맞는다는 것도 내키질 않았다.

“그럼 제가 더는 도와드릴 게 없네요”라며 근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젊은 여의사 선생님께 씩씩하게 말했다. “앞으론 더 잘 지낼 거예요. 혹이 또 생기면 …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죠.”

 

 

약속대로 난 지금보다도 더 잘 지내 볼 참이다. 혹이 또 자란다면 이번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일 참이다. 어떤 병이든 내 삶이 만들어낸 것이고 이건 내 인생이니깐.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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