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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현진의 애정동물생활

내가 서른이 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30년 중 10년가량은 아빠 없이 죽고 못 살았고 10년 정도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 못 살 지경이었으며 마지막 10년가량은 어색한 화해와 긍휼히 여김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그나마 나의 개들이 아니었으면, 마지막 10년간의 어색한 화해와 아버지 사후에 쳐들어오곤 했던 용역 깡패에 대한 대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전형적인 나쁜 아버지들의 사연처럼 술을 마시고 바람을 피우고 도박을 한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목사였으니까. 술을 마신 건 나였다. 아버지가 원하는 착한 딸이 되지 못하는 것이 괴롭고 일찍 돈 버는 게 고달파서 하루 일을 마치면 김치나 단무지를 곁들여 소주를 마시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해롱거렸다.


아버지는 도박을 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나 순진해서 다단계사기에 걸려들었다. 집에는 카드빚과 쓸데없는 자석요와 나의 울화가 천장까지 닿도록 쌓였다. 대학 내내 고학하고 가끔 집에 푼돈을 건네느라 바빴지만 졸업 후에는 시나리오 작가로 살리라고 풍선껌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나는 순식간에 짜게 식어 어떤 중소기업으로 기어들어가 매달 집에 돈을 입금했다.


속에는 울화가 부글부글 끓어서 어떻게든 해야 했던 나는 멍멍이들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복수했다. 아버지에게는 돈은 없었지만 시간과 체력이라는 자원이 있었다. 투견 같은 걸 했다는 게 아니고, 유기견을 발견하면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상 개들을 대책 없이 집으로 업고 온 것이다.


한창 유기견이 들끓던 시절 우리 집에는 최고 다섯마리까지 집 없는 개들이 설치고 다녔다. 아마 서른마리 정도는 우리 집을 거쳐 갔을 것이다. 그것도 멀쩡하게 똥오줌 가리고 팔다리 다 달린 개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택시에 치여 앞다리가 절단된 덩치 큰 모란이, 평택 야산에서 사냥감으로 오인당해 척추에 산탄총을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된 로렌초 같은 녀석들까지.


모란이는 절뚝거리면서 걸어갈 수나 있었지만 로렌초는 하루에 두번씩 대변을 짜내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했다. 물론 나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경제활동을 한단 핑계로 주로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건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가 하고 있는 작은 교회에서는 사례금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매달 집에 끙끙대며 입금하는 걸 볼 때마다 친구나 선배들은 돈 부치는 것 그만둬라, 부모님도 나가서 일하게 해라, 네 인생을 위해 살아라,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도 바울도 먹고살기 위해 천막 기술을 배웠다고, 나가서 경비 일이라도 하라고 내가 열변을 토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앞으로도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을.

그래서 못돼먹은 나는 아버지에게 내 멍멍이들에 대한 관리인 노릇을 시키면서 복수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입금하는 것은 노임을 지급하는 것과 같았다. 프란치스코(사진), 로렌초, 히스클리프, 루이 필립, 마리 앙투아네트(주운 개가 구질구질할수록 이름을 거창하게 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의다)를 돌보는 대가를.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최후의 10년간 균형을 맞추어 평화를 이룰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돌아가신 것 같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건 이럴 때 써먹는 말이지 싶다. 나중에는 토할 만큼 일해서 모은 전세금 몇천만원도 아버지가 사후 등기를 잘못하시는 바람에 바람처럼 날아갔다.


나는 그때도 쿨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었는데, 아버지 임금을 계산하니 그 정도는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을 거쳐 다른 집에 입양된 수많은 유기견들, 고녀석들은 한때 나를 마귀라고까지 불렀던 아버지와 나 사이에 귀여운 개 발자국을 내며 우리 사이를 원망도 빚진 것도 없이 공평하게 만들어주었다.


앞으로 여기까지 나를 살려둔 개들, 내 동물 친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들으면 틀림없이 개소리라고 하겠지. 멍멍.


김현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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