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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 동침

2011.03.15 13:29

약초궁주 조회 수:1399



책과의 찐한 인연.
이걸 글로 함 정리해보고싶은데 못하고 어정쩡
십년도 훨씬전에  여한의사회지에 투고한 원고가
나왔다. 방가방가.
내가 썼음에도 낯설고 새글같아서 올려본다~~~~~



내게는 비밀노트가 있다.
일기나 가계부는 게을러서 못쓰고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난 후 줄거리가 헷갈려서 여기저기 내용이 짜깁기 된다든지 제목도 어슴프레해지는
것이 섭섭해서 노트에 짤막한 기록을 남긴지가 7년쯤 된다. 기억력 감퇴(이것이 다 떡국
을 많이 먹어서 생긴 조화가 분명하다.)
핑계김에 낙서하듯 책의 제목, 작가 이름,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어 두었더니 어쩌다 펼쳐보면 처음 읽던 때의 감동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재미있다. 이 비밀노트는 백발이 다 되어도 두고두고 싫증 안나는 애인이 될것같다.

책을 읽다보니 기발한 책상은 역시 이어령이고, 김주영 또한 연륜의 깊이가 느껴진다.
니체는 멋지고 毒한 앙칼짐이 마음에 들고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장석주의
글이다.
“내게 책은 밥이고, 공기이며, 꿈이다. 뜻 없음에 사로잡혀 있는 이 삶의 空洞, 비애, 혼란과 불안, 그리고 수모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 그것은 책읽기이다. 책읽기에의 몰입 단계에 들어서면, 우리를 소모시키는 불필요한 마음의 혼미와 웅성거림은 고요와 정적에 의해 평정되고 나의 내면은 충일과 평화로 풍부해진다. 책읽기는 빵도 권위도, 명예도, 아무런 실용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것의 완벽한 무용성, 비억압성은 놀랍게도 우리 자신을 오로지 자신에게로 되돌려 준다. 자신의 일회적인 삶을 하염없는 소모와 難航으로 가난한 영혼을 가진 자여. 그대 삶의 누추함과 궁핍은 무엇으로 보상받으려 하는가. 책, 그것의 집약성은 경이롭다.
그러므로 나는 오로지 밝은 등과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인 그런 정적과 고요의 세계, 뜻있음과 삶의 열광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되돌려 주는 책의 세계로의 한없는 망명을 꿈꾼다.”
-장석주 <산문집 가을> 중에서-


이 책이 내게 주는 보너스 같은 즐거움은 또 다른 데에 있었다. 탁월한 감수성으로 진심에서 우러난 글들도 많지만 요새 흔한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제목에다 다 쓴 치약 쥐어짜듯 억지로 미사여구만 늘어놓은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나같이 삐딱한 독자라는 위치는 편안히 누워서 글을 씹어 맛을 음미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소비와 나태, 욕심에 길들여진 내게 엄숙하고 진지하게 다가오는 책이 있다.
전우익님이 지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현암사)는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전우익님은 해방 뒤에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년 간 징역을 살았다. 지금은 혼자 고향에서 자리를 매고 나무를 가꾼다. 신경림씨는 그를 가리켜 ‘깊은 산속의 약초같은 사람’ 이며 애써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사는 것의 의미를 알게해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노인이라고 말한다.

위의 책은 이러한 전우익님이 그의 소중한 벗과 9년동안 나눈 편지글 모음이다.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들려주는, 그리도 때로는 경상도 무뚝뚝한 사투리로 ‘언제 한번 불쑥 나타나시소’ 하는 인사말에서 보이듯 깊은 정이 배어있는 편지글은 정말 귀하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쇠죽쑤려고 쑥을 캐다보면 뿌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서려있어 숙연해집니다. 이만큼의 뿌리가 있기에 봄이 오자 쑥은 멋지게 자라는구나 여겨지데요. 논밭 두렁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를 매기 위해, 줄을 치려고 말뚝을 받을 때, 모두 다 어김없이 지심을 향해 박습니다. 때대로 말뚝을 박으며 생각해 봅니다. 나를 어디에 박아야 하나하고….’

‘지난 음력 칠월 초순에 파를 심었습니다. 장에 가서 오백원짜리 두 단 사다가 한 사흘 땡볕드는 마당에 널어 곯게한 다음 뿌리를 자르고 심었습니다. 딴 곡식이나 나무는 삼십칠팔도되는 햇빛에 단 오분만 쪼여도 영결종천인데 더욱이 부리를 싹 자르고 심어야 크게 자라는 파는 신비로운 식물입니다.
또 파는 나무가 얼어죽는 소문난 추위에도 끄떡없이 삽니다. 그 파가 가게에서 파는 뿌리담이 흰 대파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땡볕과 뿌리를 잘리면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을 참고 견딘 뒤 그 아픔을 끝끝내 가슴에 새기면서 큼지막하게 자란 것같이 느껴집니다.’

아픔에 대한 이만한 지혜와 통찰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이 내게 주는 따끔한 회초리 같고 양심을 썩지 않게 해주는 소금같은 책이다.
.......

빌 코스비의 <시간 사냥> (현암사)을 한밤에 읽으면서 참다못해 혼자 소리내어 낄낄거렸다.
‘옷을 입고 샤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벗은 몸을 보는 것은 주교가 음란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다. 밑을 내려다보면 시선을 막아서는 언덕처럼 솟아있는 지방질. 이 대목에서 나는 기도를 올리고 만다. 하나님, 손을 길게 늘여 주시거나 다리를 짧게, 한 반쯤 줄여 주십시오. 구두를 벗을 때 아이를 낳는 것같은 고통이 없게 말입니다.

사실 50대 남자의 배꼽은 빛을 피해 숨는다는 면에서 드라큐라와 성질이 비슷하다. 배꼽은 또 작은 저수지이다. 어느날 샤워를 끝내고 물기를 닦을때쯤 칫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칫솔을 주으려 몸을 굽히자 배꼽에서 꽃 한송이는 충분히 키울 분량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영화의 심사기준은 음모의 노출에 따라 포르노인가 아닌가를 정한다던데, 빌 코스비의 고개숙인 남자편에 나오는 음모 이야기는 배꼽잡고 웃게 만든다. 이렇게 늙음, 질병, 다이어트, 건망증들을 실감나고 익살스럽게 써내려감으로써 노화와 자연스럽게 화해하게 해준다.
.......

늘 탐나고 좋은 책은 지도책이다. 자투리 시간이 나거나 혹은 창밖을 보다가도 문득 지도를 뒤적이면 곧 떠날 사람처럼 마음이 설레곤 한다. 잠들기 전에 오른쪽 머리맡의 스탠드 불빛에 책을 읽는 버릇 때문일까.

내 오른쪽 이마는 흰머리가 아우성치며 나오고 있다. 친구들이 내 청춘이 ‘아깝다, 아까워’ 끌끌차며 바르는 염색약을 권하기도 하는데…. 이 흰머리가 불빛에 탈색된 탓이라고 한다면 한의학적으로 말이 되는건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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