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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밖엔 난 몰라’가 좋다

 

김선주칼럼~~

 

첫눈 온 다음날, 정읍 사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술 많이 먹고 남편한테 주정했거든… 창피해 죽겠어.’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몇달 전 재혼해 행복하게 살겠지 했는데 무슨 사달이 났나 싶었다. 70을 막 넘긴 친구다. 남편은 50대 시인. 열 몇 살의 나이 차가 있다.

 

 

혼배성사를 올리던 날, 처음 본 친구의 남편은 선하디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젊고 잘생겼다. 궁금증을 못 참고 대뜸 첫날밤은? 하고 물었다. ‘…응. 내… 안에 여자가… 있더라….’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는데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할머니인 친구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못해 섹시하기까지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난로 앞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내다보다가 ‘우리 술 한잔 할까요’로 시작했다고 한다. 한잔 두잔 마시다가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 애들 아버지와의 힘든 결혼생활과 이혼, 그리고 그 뒤의 더 신산한 세월들을 술로 풀며 모두 쏟아내고는 엉엉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지난밤을 창피해하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속 괜찮아요?’ 묻더니 넌지시 시 한편을 내밀더란다.
 

연식이 높은 아내는 얼굴이 불콰해지고

끝내 쓰러져 울었다.

죽고 싶었어요. 당신 후회하지 않아요?

밖에는 소리없이 첫눈이 내리고

나는 우러러 지금도 수고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걱정 말아요 당신 죽을 때까지는 하고 구부린 등을 연신 쓸어내렸다.

첫눈 내리는 밤에, 재혼한 우리 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짐승처럼 울었다.
 

인생이 서럽고 가난이 힘들어서, 절망의 끝에서 다시 시작한 새로운 삶이지만 속절없이 나이만 많아진 자신의 처지가 억울해서, 그동안의 세월에 아무 책임이 없는 한참 어린 남편에게 떼를 쓰듯 통곡한 아내였다. 남편은 한 편의 시로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정말 가진 것 없고 사시사철 헐벗은 살림이다. 교사 출신인 남편은 시집을 두어 권 낸 적도 있지만 밥벌이가 쉽지 않다. 1년에 200만원 세를 내고 사는 집은 터도 넓고 방들도 규모 있게 크고 아주 쓸 만한다. 쓸고 닦아 운치도 있다. 여름 내내 농사지어 푸성귀를 조달하고 농사지은 배추로 일찌감치 김장을 해놓고 가득 채운 된장·고추장 항아리가 일용할 양식이자 재산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고 그리고 사랑도 사라지고, 그다음엔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열정이 사라진 메마른 몸과 마음, 영혼이지만 사랑을 다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두 사람이 경이롭기만 하다. 시인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첫 결혼, 교사생활을 접은 것 모두 시대의 탓이었다. 웅크리고 자기 안에 갇혀 산 세월이 십수년이었다. 대선 결과에 며칠을 허탈해하면서도 새해 아침 첫눈은 축복이라 여기며 작년에는 각자 혼자서 눈을 보았지만 올겨울은 둘이 같이 눈을 본다고 좋아라 한다.
 

아침 골목에 나가 눈을 쓸고 있는 내 남편의 구부정하게 숙인 머리 정수리가 허옇게 비어 있다. 평생 남편한테 화를 내면 냈지 목 놓아 울어본 적이 없다. 오늘 저녁 한번 울어볼까 싶기도 하다. 등을 쓸어주며 같이 울어줄까, 아니면 왜 안 하던 짓 하냐며 도망갈까. 영화 <아무르>에서 늙은 남편은 치매 걸린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다. 아마 내 남편도 인생의 마지막에 내가 부탁하면 틀림없이 그렇게 해주겠지 싶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밖에 난 몰라가 나는 좋다.
 

12월31일 밤 부부가 보내온 이메일엔 사진이 담겨 있다. 장독대에도 마당에도 눈이 쌓여 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소복한 눈이다. 연탄난로 위에는 물주전자, 난롯가에는 구운 밤이 가득하다. 시인 남편은 편안한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다. 유난히 춥고 시린 이 겨울 메마른 살갗을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며 사는, 늙고 가난하지만 따뜻한 부부의 풍경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김선주 언론인
 
아앙...흑흑
어제  노부부'아무르' 영화보고
오늘은 이 글보고
펑펑 운다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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