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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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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부모노릇에 희망 달기...

2009.03.22 23:24

주렁주렁이룸 조회 수:1313 추천:171

7세 까지의 유아기 동안, 발도르프 교육으로 인하여

딸아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유아기를

사랑과 평온으로 길러졌다고 자부한다. 그리고는

그 연장선상의 초등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반 교육에

아이를 들이밀었다. 한 2학년 까지는 유치원을 다니는지

학교를 다니는지 모를 지경으로 즐겁게 학교에 다녔다.

종종 치르는 단원평가에도 아랑곳 없이, 지금이야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서도 원어민이 쏼라쏼라 하는 말들을

못 알아들어 울며불며 수업에 임했어도 친구들과 오며 가며,

바이올린에 푹 빠지기도 하고 그럭저럭 저학년이 지나갔다.

3학년 때, 된통 걸렸다 싶을 만큼 어려운 담임과 인연이 닿았다.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고, 아이들과 소통은 커녕 종종 매를 들기도

하는 선생님이었다. 자기 감정대로 움직이고, 폭발하면

과잉행동도 하는 선생님을 만나서 딸아이는 그 동안 어른에게

가졌던 경외심과 전적인 신뢰와 애정을 점점 철회하기 시작했고,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었다. 세상 속의 어른들 중

그냥 한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을 갖기까지 엄청난 상처와

극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있을까? 있으면 왜 있을까?

처음에는 참 아이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 편협한 분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즉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내면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가? 그 보다 더 심한 인간이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늘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

좋은 모습을 가장할 수도 있고, 타인의 모습에 투사하면서 그를

몹시 나쁜 존재로 몰아갈 수도 있는 나는 또한 그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더 교만하고 비뚤어진 존재일 수 있다.

딸아이는 이제 발도르프에서 말하는 다시는 건너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넘어서 세상을 한 면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인간상을 만나고 때론 부딛고, 아프지만 지나가야 하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공격성과 폭력성,

닫힌 마음 등등을 제대로 경험한 것이다.

아이에게 단물만 준다고 아이가 행복할리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쓴 음식, 쓴 약이 몸에 이롭게

작용을 하기도 한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야생초가 더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러운 것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것을

인정하고 그 것이 알려주는 것을 배워나가는 지혜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있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그럼 왜 나쁜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쁜 모습,

그러니까 모두 나의 또다른 모습을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누군가는 회피하고,

누군가는 충돌하고, 누군가는 배운다. 성급한 마음에 지난 시간들

속에서 충돌했던 순간들도 허다하다. 그리고는 곧 배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도처에는 배워야 할 것들 뿐이라고.

그리고 또한 나 아닌 존재들이 없다는 것도 알게된다.

 

아이가 3학년 말쯤에 부모에게 자신의 욕구를 구체적이고 집요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서 티브이를

사 달라는 것이다. 수년 전에 남동생에게 주고서 티브이 없이

살았지만, 큰 불편함 없이 지냈고, 아이도 크게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는데,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점점 적어

지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로 먹통이 되어가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가족회의를 통해 티브이를 다시 장만했고

아이는 갑자기 던져진 물고기를 허기진 배를 한 채로 사정없이

먹는 모양새를 취하며 빠져들었다. 처음엔 서로의 룰 안에서

균형있게 조절하자고 굳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어디

욕구라는 것이 무 자르듯 잘라지는 일이냔 말이던가.

아이는 균형에 애쓰는 부모에게 가차없이 공격적

자세를 취했다. 티브이를 꺼야만 하는 순간에는 급작스런

짜증과 함께 앞뒤 안 가리고 성난 짐승처럼 굴었다.

다시 가족회의 끝에 유선을 끊기로 했고, 가족이서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비디오로 가끔 한 번씩 보기로 했다.

아이는 그 상황에 적응하는가 싶더니만, 곧장 이성을

휴지통에 버리고 감정적으로 폭발하는등 자신의 욕구의

좌절에 대한 무차별적 항의를 했다. 부모는 고심에 빠져서

여러가지 안을 생각해내고 아이와 대화도 해보았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무분별 했을 때 겪는 낭패감을

느낄 수 없게 한 건 아닌지 싶어서 마음을 비우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다시 유선을 연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얼음판 미끄러지듯 티브이의 세계로 미끄러져갔다.

단, 그렇게 해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기로 한 것이다. 아마 처음으로

크나큰 '책임'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을 것이다.

 

11세가 되면 아이에게 '스스로 책임 지는 법' 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도 있다.

좌우지당간에 아이는 해피한 티브이시청생활을 만끽했다.

밤 아홉시가 넘어서도 만화를 보거나

연속극까지도 보게 되었는데, 어린이가 보고

이해하기엔 굉장히 무리가 있는 어른들의 심각한 관계문제

등을 들여다보게 된 아이는 두렵고 놀라서 울기까지 했다.

어른인 엄마는 그런 것을 봐도 감정적 동요나 놀라움이

없는데 반해 자신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힘들어진다는

것을 간파한 아이는 깊은 고민에 싸여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도 잘 이루지 못해서 결국엔 짜증까지

겸비한채로 소리까지 질러댔다. 엄마로써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등을 쓰다듬으며 나즈막하게 말해주었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너는 아직 어리단다. 그러나 언젠간

너도 엄마 처럼 어른이 될테지. 그 때가 되면 아마 엄마처럼 할 수

있을꺼야. 화면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은 가짜이기 때문에 그 것으로

인해서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면 지금처럼 슬픈 일이 벌어지지. 뭐가

어떻든 엄만 널 이해해.' 라고...

 

다음 날 아침, 아이는 계속 힘들어했고, 학교에 가야하는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못한채로 비몽사몽이었다.

참으로 부모가 된 마음으로는 커다란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서

는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아이를 깨우려하니 포효하는

사자인양 짜증을 내는게 아닌가. 가만히 지켜보다가

일단 담임샘께 연락을 드렸다. 일이 있어 학교에 하루

빠지기로 한 것. 아이에게 다가가 등을 쓰다듬으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분명히 일을 그지경으로 끌고 온 자기

자신을 몹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도 들려주며 조용히 대화를 시도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일은 결코 하지 말자.

뭐가 어떻든 스스로를 용서해주자. 엄마는 벌써 너를

용서했지. 그러니 너도 너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주자.'

아이는 돌리고 있던 등을 펴며 엄마를 향해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을 해가지고 차마 말을 못잇고 울기만 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내 품에서 울다가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아이는

'엄마, 티브이가 필요 없어요. 이젠 더이상 그럴 이유를 못느껴.

진심이야. 유선을 끊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희안하게도 이번에 아이가 하는 말들에는 조금의 아쉬움도

느끼지 못할 만큼 평정심이 담겨져 있었다. 희안하게도...

티브이 유선을 끊고 안 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의 평화적 결단으로, 내부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심을 담아서 결정해낸 일이라서 너무나도 반가웠다.

학교에도 못 갔고, 엄마가 담임샘께 정말 입장 곤란한채로

결석을 이해받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건지 정확히 자각하게 된 것 같다. 금새 티브이가

보고 싶어 또 다시 보채고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몇번이고 결심에 대해서 되묻고 이야기를 해도 이번에는

자신 스스로 가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결심한 것이라서

후회는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곤 성당에 갔을 때 왜 사람들이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온다. 어떤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게 아니라

나의 내부로 가져와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내 책임으로 받아들

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호오포노포노의 핵심이었다.

아이는 무슨 생각에선지 곧장 기도서를 찾더니 주기도문을 읽는다.

하느님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사도신경도 읊는다.

어리둥절한 엄마는 아랑곳 없이 아이는 기도서를 들고는

자기용서와 책임에 대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녀석...근데 참 뜬금 없게 느껴지다가도 희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튼, 학교에 가는 대신 집 건너편에 생긴 도서관에서

집중 독서에 임하였다. 겸사겸사 치과에도 가고 말이다.

사춘기 언저리에서 루비콘강을 건너고 있는 우리 딸,

세상엔 감당해야 할 버거운 현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티브이는 안방 구석으로 얌전히 밀려나 있다. 그런데 이녀석은

종전과는 정말 다른 모양새다. 아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컴퓨터를 좀 하겠다고 짜투리시간에 요구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쁜 현실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길 바래본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들에서보다는 우리가

겪는 어떤 위기나 어려움 속에서 더 많이 성장하고 커나가고

기쁠 수 있다. 그러니 행복은 미쳐 돌아가실 만큼 기분 좋은

상태라기 보다는, 늘 있는 그대로를 사는 과정 자체가 아닌가 싶다.

그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화할 것이냐가 문제일뿐,

갈등이나 진통은 보배로운 것으로 가는 신성한 선물이 아닐까.

많이 부족한 엄마여서 때론 같이 혼란스러움을 타고 넘실거

리고, 좌로 우로 흔들리기도 하고, 한 없이 포악한 모습도 드러냈다가,

한 없이 유약한 내면을 들키기도 한다. 많이 아는척 하지 않고,

그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때론 바보 같고 ,어린아이보다 못한 내 모습에

슬퍼지기도 하는 나 자신을 또한 스스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렇게 함께 온화해지고 있다.

내 딸이 또한 그러길 바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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