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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되기 11 라운드- 우리에겐 이모가 필요해 

 

어려서부터 ‘이모’가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모라고 하면 느껴지는 이미지, 고모와는 또 다른 느낌 친근하고 살가운 느낌을 무작정 동경했던 것 같다. 내게도 이모가 ‘한 분’ 계시긴 한데 엄마와 띠동갑일 뿐 아니라, 거의 왕래가 없어서 만날 때마다 서먹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사실 내가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건 ‘피가 섞이지 않은’ 이모들이었다. 엄마 친구를 ‘이모’라고 부르는 애들을 보면 왠지 모를 질투심에 불타올라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엄마, 나도 이모 갖고 싶어.”
“이모 계시잖아.”
“그런 이모 말고. 밀양 이모, 대전 이모, 숙자 이모, 경아 이모.... 이런 이모들 말이야.”

 

엄마는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내가 원하는 이모를 얻지 못한 채 이모가 될 나이가 되어버렸다.

 

엄마도, 언니도 아닌 이모여야 하는 이유

 

내가 그렇게 ‘이모’를 목말라 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구성원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결핍 때문이었다. 언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였지만 냉정한 판단과 조언을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엄마는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라 그런지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을 줄 뿐이었다. 내겐 언니도, 엄마도 아닌 또 다른 어른이 필요했던 거였다.

 

성장기를 지났지만 그런 욕구에는 변함이 없다. 편하게 내 상태를 털어놓을 수 있는,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논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결핍을 느끼고 있고, 상당수가 상담을 통해 이런 욕구를 해소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젊은 세대가 타로점이나 사주 까페를 즐기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하니, 우리에게는 정말 ‘이모’가 필요하긴 한 것 같다.

 

시간의 더께가 쌓인 사이, 그것이 가족

 

하지만 상담이나 타로점은 일시적으로 위로나 조언을 전할 수는 있지만, 관계가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분명 이모와는 차이가 있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멘토’와도 일면 비슷한 면이 있지만 내가 굳이 ‘이모’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실제 피가 섞인 혈연관계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그에 필적할 만한 관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관계란, 가장 솔직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관계와 차별성을 가진다. 물론 내키는 대로 널브러져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원가족과의 관계도 그렇듯이, 이 관계에서도 지킬 것은 지켜야 탈이 없다. 이해 타산적이지 않다는 것도 가족 같은 관계의 특징이다. 이것 역시 무조건 잘못을 눈감아주거나,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수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 힘들고 지켰을 때는 아무런 조건 없이 정신적, 물질적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 그런 휴식을 통해 다시 홀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내가 꿈꾸고 만들어가는 가족 같은 관계다.

 

그러다보니, 이런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눈에 통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관계 역시 살아가는 데 힘이 되지만, 좋은 모습만큼이나 미운 모습, 진상인 모습을 함께 겪으면서 두터워지는 것, 이것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너에게 이모가 되어줄게, 그리고 나에게도

 

최근 십 년을 알아온 친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예정일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녀석을 두고 친구는 ‘세상이 정해준 속도에 따르지 않는 게 마음에 든다’며 우스개를 던졌고, 그로부터 며칠 뒤 녀석은 세상으로 힘찬 울음을 터트렸다. 멀리 있는 바람에 직접 보진 못했지만, 친구가 멀티 메일로 보내준 사진을 보는 순간, 두 가지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태어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 친구를 빼닮았다는 것과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고 말았다는 것.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내가 너의 ‘이모’가 되어줄게. 너에겐 엄마도, 피가 섞인 이모도 있지만, 나는 그냥 ‘위야 이모’가 되어줄게. 엄마와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엄마가 미처 전해주지 못하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줄게. 나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개성 강한 이모들이 네 곁에 있는 걸, 진심으로 축하해. 

 

축하하는 마음 한 곁으로 진심으로 부러웠다. 수많은 이모들로 다채로워질 아이의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면서도, 심장이 간질간질할 만큼 부러웠던 거다. (아이를 상태도 질투를 하다니 부끄럽지만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비록 나는 유년기를 ‘이모’와 함께 하진 못했지만 쉽게 포기할 마음은 없다. 아직 ‘이모’ 라고 부르기엔 좀 부족하지만 이모처럼 따뜻하고 살뜰한 관심과 따끔한 조언을 해주는 어른들이 곁에 있으니, 그 분들과 건강한 시간을 쌓아가면서 ‘이모’가 되어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내가 누군가들의 이모가 되어가는 동안 나에게도 이모들이 생긴다면, 혈연의 울타리를 벗어나 울창한 관계의 나무가 우거지지 않을까 싶다.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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