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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년전에 읽었던 칼럼이었는데...에휴..겨우 찾았습니다. (칼럼원문에는 남편의 이름이 나오는데요, 이름 또 확인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제가 XX라고 고쳤습니다.)

 

[여성칼럼] '얻어터진' 여자의 커밍아웃

 

최보은/케이블TV가이드 편집장

 

돌이켜보건대,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살아오지 못했다. 애당초 불가사리 모양의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울퉁 불퉁 살아왔다. 그러나 완벽을 의미한다는 동그라미가 세 개나 붙은 연도의 시작 앞에서는, 동그라미처럼 완벽한 각오를 한 세 개쯤 말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아, 그렇게 말하고나서 깨닫는다. 또 희망과 각오를 말해야만 하는 절기가 돌아왔단 걸.) 어쩔거나. 난 지금 희망도 행복도 ‘엥꼬’가 나버린, 만신창이 마흔살인데. 크리스마스날 애들한테 벅벅 소리만 질러대는 마쵸 주먹패 남편과 재떨이 던지고 싸우고 이혼해 달라 말라 자식을 달라 못준다  니가 나가라 아니 니가 나가라 옴팡지게 싸우고 난 끝인데. 새해 달력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호적에 두 번 빨간줄 긋게 생겼는데. ‘결손가정의 자녀’를 통산 세분씩이나 배출하게 생겼는데.

 

행복까지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예서 말 수는 없는 법,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길보드 테이프를 들어본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도 듣고, 베토벤의 '황제'도 듣는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 사무실에서 싸구려 녹음재생기의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싸구려 헤드폰을 뒤집어 쓰고 송창식의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허, 이런 노래를 귀청이 찢어져라 듣고 목청이 찢어져라 따라 불러본다.(여기서 헤드폰은, 지엄하신 바깥양반께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로 귓방맹이를 얻어맞아 멍든 한쪽 귀를 은폐하기 위한 아주 문화적인 바리케이드다.

 

근데 아드레날린이 치솟기는커녕, 우울함만 더 씩씩해진다. 그래서 헤드폰 벗어 팽개쳐버리고 크리넥스 한통을 다 써가며 눈물 콧물 뽑아내고 삶의 진저리나는 구정물 더 이상 못나오게 눈속이고 콧속이고 바싹 말린 채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음악에서라기보다는 내 기억 속에서, 드디어 희망의 원천, 웃음의 원천을 찾아낸다.

 

전현직 두 남편과 통산 몇차례 육탄전을 치른 전적을 총평하면, 이번 크리스마스 싸움이 제일 통쾌했다. 마루에서 부엌으로, 안방으로, 화장실로 링을 옮겨가면서 벌어진 세밑 대회전에서, 미약하나마 몇차례 크로스카운터도 날렸고, 빗자루, 바가지 이런 걸 무기로 쓸 기특한 생각도 했던 것이다. 주먹을 날리는 가운데서도 만만찮은 반격의 기운에 바깥쪽의 눈동자가 두배는 커지는 걸 난 똑똑히 봤다. 콧잔등과 목덜미, 손등, 귓방망이에 멍이 든 쪽은 물론 나였지만,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맞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다음에는 꼭 가스총과 수갑, 밧줄을 상비해놔야 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얻어터지면서, 머리속에서 ‘가스총, 가스총’ 하는 외침이 총성처럼 울려대던 것이었다. 태권도, 유도나 합기도, 우슈 이런 것도 합계 몇단쯤 따놔야겠다는 각오도 생겼다.

 

어쨌든 그 뒤는? 물론 주먹패가 잘못 했다고 싹싹 빌고, 애들을 생각해서 서로 참고 살자고 적반하장 떠들고, 시어머니 시아주버니 동서 시숙모까지 나서서 니가 참아라, 부부가 살다보면 싸움도 있는거지, 남자가 성질 나면 어쩌다 주먹 휘두를 수도 있는 거지, 우리가 대신 사과하마, 해놓고선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니가 못참으면 넌 사람도 아니라는 식의 비논리를 진리처럼 들이대는 순서지 뭐.

 

아, 난 드디어 질리고야 말았다. 사과 받는데도 질렸고, 사과 안받아주면 니가 사람이 아니라는 논리에도 질렸다. 이래서 세가지 완벽한 각오가 간단히 태어난다. 첫째, 새해에는 밀레니엄의 숙원사업이었던 이혼을 꼭 해치우고야 말겠다. 둘째, 주먹깨나 휘두르며 우끼고  자빠진 모든 좃선 놈들의 헤드폰 쓴 아내들의 이혼을 선동하기 위하여 ‘얻어터진 여성’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커밍아웃하겠다. 셋째, 남편비난 실명제의 관철을 위하여 발벗고 나서겠다. 솔선수범하는 의미에서 밝히는데, 아직까지는 내 남편인 이혼남 후보의 이름은 조XX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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