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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장수시대의 연옥

등록 :2019-01-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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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권혁란의 관계의 맛

‘망령이 들었다’거나 ‘노망이 났다’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 급한 연락이 밤에 당도했다. 2년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스텐트 시술로 생명을 이은 엄마는 큰 병원 작은 병원을 옮겨 다니는 기간이 가파르게 짧아져 환자복이 평상복이 되었다. 한 호실에 8명이 그야말로 ‘와병’(臥病)하여 ‘누워만 있는’ 병원이었다. 옆 병실 8명까지 환자의 이름과 나이가 쓰인 문패를 보면 가장 젊은 사람이 86살, 90이 넘은 이가 여럿인데 이름마저 20세기 복순, 정녀, 봉예, 막례, 순자.

1930년대에 태어난 할머니들을 돌보는 간병인들은 2인 1조로 2시간마다 병상을 돌며 기저귀를 갈고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왼쪽 오른쪽 통나무를 옮기듯 몸을 돌려주고 행여 밥을 제 손으로 드시지 못하는 이를 떠먹여주었다. 평균 65살. 사실 그들도 허리가 휘어가는 노인이었다. 엄마가 심전도, 혈압,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모니터를 달고 위급하게 누워 있는 병실에서 화장실까지 제 발로 걷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누구도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기저귀를 차고 똥을 싸고 제 손으로 못 먹고 몸 하나 못 가누는 거나, 무른 음식 하나도 씹어 삼키지 못하는 것은 아기나 노인이나 그리도 닮은 행태이건만, 아기의 무능한 몸과 무지한 정신이 생명의 눈부심으로 꽉 차 있다면 노인의 그것은 참혹하고 가엾을 뿐 생명의 기운이라곤 씻은 듯이 찾을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디엔아르(DNR) 동의서. Do Not Resuscitate. 이제 이 환자에게 소생을 위한 어떤 처지도 하지 않겠다는, 며느리, 사위, 손자는 할 수 없고 직계가족만 할 수 있는 동의서를 제출하고 간이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수많은 생명과 죽음의 용어를 검색했다. 임종임박 징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시피아르(CPR), 비피엠(BPM), 존엄사 그런 것들.

“저 사람은 왜 마빽이에 감을 달고 있어? 나 좀 따 줘.” 옆 침대 할머니가 심전도 측정을 위한 레이저 광선 같은 패치를 달고 있는 내 엄마 얼굴을 보면서 나를 채근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 이마의 불빛은 가을 홍시를 달아놓은 것처럼 주홍빛으로 명멸했다. 앞의 할머니는 기저귀를 금방 간 것을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간병인을 부르다가 나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이봐, 젊은 양반, 나 기저귀 좀 갈아줘, 축축하게 젖었다니까. 양쪽 팔목을 침대에 묶인 분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나를 윽박질렀다. 이것 좀 풀어줘, 아파 죽겄어. 기진하여 잠들었던 할머니는 지나가는 텅 빈 내 손을 움켜잡고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왔냐고 자식으로 착각했다. 깜빡 잠들었던 엄마는 새롭고도 끈질긴 섬망의 증세를 보였다. 아이구, 저 천정에 버러지들 좀 봐라. 저녁에는 아주 막 떨어져 내리는데 너무 더럽고 무서워. 옆방에 작은 아버지가 와 있어. 원숭이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가엾기도 하지. 먹을 것 좀 갖다드려. 아이고, 왜 침대 밑에 애기가 앉아 있니? 쟤 좀 데려와라. 아니 마늘을 까야 김장을 하는데 저 아줌니들이 혼자서만 까고 있네. 얘야, 생강 좀 까자니까.

기억의 질서가 뒤죽박죽된 장수만세 노인들이 서로 섬망 증세로 아우성치면서 무너진 몸의 윤곽을 뒤척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더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아니 죽어지지 않아 쉽사리 끊어지지도 않는 목숨을 붙들고 있는 엄마들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앉아 있는 나이 들어가는 딸들도 보호자로 앉아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단박에 돌아가셨다는 분들 소식 들으면 차라리 부러워요, 한순간에 자는 듯이 죽는 복도 따로 있다던데 그 복은 어떻게 받을까요. 지옥이든 천국이든 어서 떠나는 것이 여기보단 낫지 않을까요. 너무 뜨거운 연옥의 풍경 속에 여러 날이 이어져갔다.

권혁란 작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78905.html#csidx09dbc023f60d4ebbdd4a296d66193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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