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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자.

2009.08.22 11:24

생강 조회 수:1032 추천:136

아버지가 DJ 타계 전날 운명하셨다.

 

신장암 말기셨고 식도까지 퍼져있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을 다 하셨지만

아버지를 용서하지도 화해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시골 보통집에 장남으로 태어나서

어쩌다가 시골 수재가 되서 서울에 명문대를 나온 바람에

인생 초반에 잘 나갔었고 그때 여섯명이나 되는 동생들 수발을 다 해줬다.

 

그러고 나서 늦게 낳은 자기 자식들 키울때는 진이 빠졌던거 같다.

정말로 자식들이 귀찮았던 것 같다. 돈도 없었고.

 

딸들이 모여서 기억해보려고 해봐도 

특별한 애정도 훈육도 꾸지람도 받은 기억이 없다. 말을 섞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한집에 사는 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남들과 만나면 얼마나 즐겁고 활발하고 외향적인 분이셨는지.

참 묘한 일이다.

 

그러다 집이 망했다.

사업하시다가 망한 것으로 포장되었지만

일종의 소비파산이다.

딱히 과소비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조잘조잘하게 작은 돈이 쌓여서 파산이다.

 

그후 엄마와 우리는 많은 고생을 했다.

아버지는 따로 사셨지만

사실은 맘편하게 사셨던거 같다.

엄격한 청교도같은 징징거리는 엄마의 잔소리가 정말 싫었을 것이다.

 

암으로 쓰러지신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엄마와는 화해가 되지 않았고

나도 어정쩡하게 있다가

돌아가셨다.

 

오래 사셨고 다행히 암부위의 특징상 통증도 별로 없으셨고

전날까지 TV를 혼자 조정하면서 보실 정도로 정신 또렷하게 지내시다가

이튿날 고요히 돌아가셨으니

돌아가신 형태만 놓고 보면 부러운 죽음이 맞다.

 

그런데 계속 찜찜하다.

서로 해원이 되지 않은것 같다.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셨는데

너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셔져있었다.

살 때 잘 살아야 되나보다.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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