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반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의 어젠다를 인용했다. ‘꾼’들의 논쟁은 이제 더 이상 듣고 있기 지겨우니 실용적으로 우리 모두 잘 살아보자는 게 그의 요지였다. 집권 후반, 이번에는 전두환의 해묵은 어젠다를 끄집어냈다.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은 전두환의 경우만큼이나 공교로운 일이었다. 지난 지면에서도 언급했듯, 이명박 대통령의 인생은 ‘개인적인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윤리적인 층위를 초월했던 투쟁의 기록’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검증 시스템은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 그가 정의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객관적으로 정의롭지 않은 개인이 공정이라는 단어의 ‘간지’에 눈을 뜨는 순간, 그의 모든 주관적인 신념과 행동은 당위에의 자신감을 얻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의로운 4대강 사업’ ‘공정한 로봇 물고기’ 같은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MC몽과 신정환 추락 보며 단죄의 기쁨 맛봐

그렇게 해서, 공정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율배반은 이 시대의 유행이 되었다. 구호와 패션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영향력 안에 놓여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국회 밖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누가 준비라도 해놓은 것마냥 ‘공정 사회 구현’이라는 사정권 안에 몇 사람이 들어왔다. 연예인들 말이다.

   

생니를 빼 입대를 ‘회피’한 MC몽과 ‘도박왕’ 신정환이 걸려들었다. 태진아와 이루에 관련된 스캔들도 있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케이블 TV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용돈만으로 호화스럽게 산다고 자랑한 명품녀 또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한 스포츠 신문은 신정환의 응급실 진료카드와 진단서 ‘입수’를 특종이라 터뜨렸다. 개인 진료기록을 무슨 자격으로 열람하고 심지어 기사화하는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한 주 동안 다른 중요한 뉴스들, 예를 들어 용광로 속에서 생을 마친 젊은 노동자의 사연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관한 문제 제기 같은 것보다 연예계의 ‘정의 실현’이 우선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확실히 추락했다고 느껴질 때마다 사람들은 단죄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래서 정의가 실현되었나?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는 오로지 이 나라를 가십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쉽게 흥분할 만한 아이템을 미친 듯이 추적했다. 혹은 갈등을 조장했다(요즘 넘쳐나는 부자 리얼리티 쇼를 보라). 그렇게 생산된 가십이 사회를 지배하는 동안 사람들은 공정 사회를 향한 부푼 꿈을 꾸었다. 미디어는 그 꿈으로 배를 불렸다.

공정은 대통령의 유행어로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열된 여론과 인민재판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민주 사회에서 공정은 강력한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며, 누군가 휴가 때의 독서 경험에서 착안해 정치적 구호로 꺼내 들지 못할 만큼 당연한 삶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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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공정한 사회, 정의실현 이런거
포스터, 백일장이 치러지는건 아닐까.
..공정 공정하니까
 
참 듣기 껄끄럽다아이가.
구리디 구려서 서울시 교육을 말아먹은
이름마져 공정한 공정택 영감님
생각도 나구....싫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