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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조언

2008.10.28 18:21

강위 조회 수:2398 추천:294

 

 

처음 선생님과 마주앉았던 날, 두 가지 조언을 들었지요.

그것을 다 실천하고 나서 일종의 후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1.와이어

 

"자기, 이거해?"

선생님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물체를 제 앞에 내미셨을 때 저는 단번에 그게 뭔지 알아보기 힘들었어요.

그것은, 브래지어 와이어였습니다.

 

"아, 그거. 하는데요."

"그걸 왜 해? 당장 빼."

"아, 예."

 

이제 브래지어를 전부 새로 사야하나 생각하던 차에, 기존 브래지어들을 리모델링 했습니다.

아이들을 다 꺼내놓고 옆면에 일자로 칼집을 내서 와이어를 빼내기를 수십차례(양쪽 다 진행),

잔뜩 쌓인 와이어들을 보니 심경이 복잡해지더군요.

 

와이어가 든 브래지어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다들 쓰니까, 그런 제품이 많으니까

습관적으로 샀던 게 사실입니다. 사실 와이어 때문에 세탁기에 속옷을 돌린 후에 모양이 망가지고

그게 명치끝을 찌르기도 했었는데 왜, 그걸 빼야겠단 생각을 못했던 걸까요.

 

한 걸음 더 나가서, 와이어라는 것이 어떤 '상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내 삶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안전판이자, 한층 더 높게 올려줄 수단이겠거니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이 내 숨통을 조이고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빼면 이리 편하고 좋은 것을. 막상 버리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많은 것을 부여잡고 끙끙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하

 

 

 

2. 아주 작은 차이

 

 

침을 맞으려고 누웠는데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자기 책 좋아해?"

"아, 예. 좋아하죠."

"그럼 아주 작은 차이라고 읽어봐."

"아, 선생님 그거, 엊그제 주문해서 지금 책상 위에 올려놨어요."

"당장 읽어봐. 나는 그거 보고 깜짝 놀랐어. 70년대 독일 여자가 쓴 책인데, 거기 나오는 내용이 어찌나

우리하고 똑같은지. 진짜 놀랐다니까."

"네. 꼭 읽을게요."

 

책도 준비되어 있고, 당장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데는 꼬박 1주일이 넘게 걸렸어요.

부러 게으름을 부린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한 호흡에 읽기가 힘들었어요.

책에 실린 열다섯명의 <여자>들은 나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더군요.

순간순간 놀라고, 아프고, 답답하고, 시원해서 다시 읽어볼 페이지를 정신없이 접어두었다는.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남자의 두 다리 사이의 '그것',

하지만 남/여가 다른 것은 그렇게 길러지고 강요되고 고착화된 것이다,

근데 그것 때문에 여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아... 얼마나...

 

하지만 저는 여자들 사이의 '아주 작은 차이' 또한 보게 되었어요.

기혼이 비혼에게, 비혼이 기혼에게, 창녀가 주부에게, 주부가 창녀에게, 전업주부가 직업여성에게,

직업여성가 전업주부에게,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서로 다른 여자들 사이에 흐르는 편견과 방어기제, 두려움과 미움...

제 안에도 분명 그런 게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가 미워해야 하는 것은 작은 차이를 가진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 벽, 아닐까요.

 

또 한가지. 내가 알게 된 사실과 내가 느낀 감동과 내가 바라는 세상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는 것. 그래요. 결국 다시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되네요.

 

 

아, 뭔가 뿌듯합니다. 한편으론 겁이 나기도 하고요.

내 몸에 잘 맞는 약 부지런히 먹고, 이번주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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