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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

2009.02.11 09:34

강위 조회 수:1389 추천:215

 

몸이 아프니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 보고싶어, 엄마 안아줘 _ 이런 따뜻한 느낌은 아니다.

엄마도, 엄마도, 그랬겠구나

뒤늦은 공감. 고통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해와 소통의 복도가 저만치 이어지고 있었다.

 

 

2007년 11월이었다.

마지막 학기였고, 학교식당에서 한 사람과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핸드폰 액정에는 계속 '아부지'라는 이름이 떴지만 나는 무시했다.

한번, 두번, 세번.

그 사람과 헤어지고 아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이 살짝 잠겨있었다. 섬뜩한 느낌.

지갑이나 핸드폰, 열쇠 따위를 찾으려 가방에 손을 넣었을 때 그것들의 부재를 손의 감각이 먼저

알아채는 것처럼, 나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목울대가 조여왔다. 배터리가 부족했고

득달같이 뛰어 집으로 갔다. 숨을 몰아쉬며 언니와 통화를 하고, 털썩 주저 앉았다.

 

 

다행이라고들 했다.

나 역시 그렇게 말했다. 천만다행이라고.

지금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더 늦었으면 어떡할 뻔 했냐고.

 

엄마도 그렇게 말했다.

성모님이 도와주신 것 같다고. 참말 다행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4월에 종합검진 때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깨끗했는데.

언니가 말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집에도 이런 일이 생길 지 몰랐다고.

아부지가 말했다.

너희들은 마음쓰지 말라고. 아빠 엄마가 알아서 한다고.

막둥이는 내려올 거 없이 학기 마무리나 잘 하라고.

 

 

잔뜩 긴장한 엄마의 누운 얼굴, 침대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동시에

언니와 나는 등을 맞대고 울음을 터트렸다.

하느님이 도와주실 건데 뭐 그리 방정을 떠냐며 아부지는 담담한 척 했지만

오래 전 끊은 담배를 다시 피고 싶은 얼굴이었다.

엄마가 깨어나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가슴 한곁에 자리잡은 암세포가, 어디까지 퍼져있을지,

우리는 마음을 졸였다. 제발, 부디.

 

 

엄마가 수술을 마치고 나왔을 때 엄마의 입에서 뭉글뭉글 쏟아져 나오던 액체들,

외숙모는 나에게 엄마 얼굴을 닫아주라 했지만

뭉툭하고 야물지 못한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보다못한 외숙모가 내 손에서 수건을 뺏어들고 능숙하게 엄마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 순간에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야들은 공부만 해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예.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술도 거의 못마시고, 담배도 피지 않아서.

포기해야할 것이 훨씬 적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말했다.

술도 많이 안 마시고, 담배도 안피고, 살이 찐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꼬.

생전에 길거리 음식을 먹지 않던 양반이 호떡이나 오뎅을 보며

침을 꿀떡꿀떡 삼켰다.

함께 병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 내 뱃속에서 뱃고동이 울리면 엄마는 오뎅이나 하나

먹으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한 걸음 떨어져 시선을 떨구고 선 엄마,

그런데도 나는 내 배를 채우려 오뎅을 두 개씩 먹곤 했었다.

 

 

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들은 앉아서 일해야 하는 편집자가 허리가 그래서 어쩌냐고 했지만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운동에 환장한 사람이라면, 걷는 것조차 힘든 이 상황을 어찌 견디겠는가.

하지만 내가 느끼는 박탈감은 이런 것들,

마라톤 같은 건 힘들겠지? 히말라야 등반도 힘들거야. 수영도 배영만 해야한다는데

버터플라이 같은 건 평생 못하는 거겠지? 스키도 못타고 골프도 못치겠지?

아프지 않았더라도 내 인생에 없었을 항목들이 '어쩌면'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마음 속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었다.

이젠 떡도 못 먹겠제. 밀가루 수제비도 못 먹고. 국시도 못 먹고.

이럴 줄 알았으면 자전거나 수영을 배워둘 걸 그랬다. 지금은 몸이 이래가...

보다 못한 내가 유기농 우리밀 밀가루를 사다가 수제비를 끓였지만

수제비라면 환장하는 우리 둘 다 반그릇도 먹지 못했다.

보드라운 밀가루에 길들여진 혓바닥에는 거칠거칠한 음식이 낯설기만 했으니까.

그래도 엄마는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억울하더니만, 이제는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이만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앞으로 조심조심 살면 된다 싶어서.

그래서 나는 엄마가 성당 옆자리에서 손수건에 코를 풀어가며 울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억울함과 분노, 감사와 회한이 버무려진 눈물의 맛을

나도 조금은 아니까.

 

그래.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발견해서 천만다행이지, 수술할 때까지 내버려두었으면 일이 커질 뻔 했다.

음식을 가려 먹고, 술담배도 줄이고, 운동도 하면서 살아가라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픈 거라고.

 

 

엄살쟁인 줄만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고통을 잘 참나보다.

뼈가 휘고, 신경이 눌리는 동안에도 이를 악물고 잘 참아왔으니.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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