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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 여러분께 선물로 올립니다.

대산문학에 실린 오정희 선생님(소설가) 글.

 

 

 

열 마리의 개

 

 - 오 정희 소설가.

 

  흰개 홀로 살던, 모내기를 하지 않은 빈터에 여러 마리의 개들이 찾아들었다. 하루 혹은 사나흘씩 어울려 놀다가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하수구에서 다섯마리의 개들이 차례로 튀어나와 한바탕 기지개를 켜는 모양을 보기도 했다. 그중 끝까지 남아 있는 개는 갈색 점박이 수캐와 성별을 알 수 없는 검은 점박이였다. 흰개와 더불어 그 두마리 개의 동거생활이 계속되었다. 세 마리가 어울려 지내는 모양이 훨씬 보기 좋았다. 잡초가 우거진 들판에서 어울려 뛰노는 모습은 즐겁고 평화로워보였으나 보장되지 않는 그들의 미래의 시간을 생각하며 나는 지레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우려했던 대로 개들은 그들의 은거지에서 쫓겨났다. 하수구에 굵다란 피브이시 도관을 여러 개 연결하여 논과의 경계를 지어 배수관을 만든 것이다. 장마가 오기 전 건물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리라 하였다. 하수구 안에 넣어주었던 깔개며 밥그릇 물그릇들이 함부로 팽개쳐졌다. 결코 사람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그들은 아마 멀찌감치에서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 보았을 것이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비가 잦았다. 절기에 맞춰 알맞게 내리는 고마운 비였지만 사방천지 둘러보아도 비피할 곳 없이 한뎃잠을 자야하는 개들에게는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흰개와 검은 점박이의 몸이 눈에 띄게 통통해졌다. 유독 허리와 배가 두리두리해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새끼를 가졌구먼.' 논물을 보러나온 촌로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비일시 분명한 갈색점박이는 달아난 것인지 쫓겨난 것인지 주변에 보이지 않다가 밥을 주러가니 장마철에 새끼를 낳은 것이 분명했다. 올 장마는 길고, 잦은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예상되니 저지대주민들은 대비를 든든히 해야 한다고 기상통보관은 뉴스시간마다 되풀이 경고했다.

 

  나는 궁리끝에 개들이 올라와 놀곤하는 낮은 둔덕에 집을 지었다. 벽돌을 주워 벽을 쌓고 나무 판자 몇개를 걸쳐 지붕을 만들고 방수돗자리를 덮으니 삼각지붕의 집이 되었다. 묵지한 돌덩이로 꾹꾹 눌러놓아 어지간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생에 처음 내 손으로 지은 집이었다. 이만하면 새끼 낳을 장소로 손색이 없으리라. 그러나 개들은 그 집이 낯설어서인지 전혀 가까이 가지 않았다. 흰개는 밥을 먹고는 곧장 논두렁을 건너 종적을 감추었다. 논을 가로지른 건너편 어딘가에 둥지를 틀었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어느 날 밤, 몹시 예민해져 뭔가 안전부절못하는 기색이던 검은점박이는 밥에 입도 대지 않은 채 불안하게 코를 벌름대더니 둔덕 비탈의 풀섶으로 갔다. 몸을 비스듬히 뉘여 기어들며 그 안으로 몸을 감추었다. 바로 그 곳에 굴을 파두었던 것이다. 입구가 잡초로 가려져 좀처럼 눈에 띄지 않을 곳이었다. 새끼를 낳으러 가는구나,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먹장구름이 무겁게 뒤덮인 캄캄한 밤이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그곳을 떠났다. 둑길을 오래 서성이며 개울 건너편, 어둠과 적막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외롭디외로운 산고를 느끼면서 끝끝내 생명을 받아내는 우주의 섭리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고양감과 외경심에 사로잡혀 나는 중얼거렸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문학이란, 생이란, 결국 들짐승이 새끼를 낳는 거친 자리, 그렇게 슬픈 피비린내와 고독과 경이로움과 신비를 다함없이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날 밤, 제법 국물이 걸진 밥을 만들어갔지만 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통 하나 거의 비비적대며 들어갈 수 있는 토굴 깊숙한 안쪽에서 아주 약하게 낑낑대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두 개의 눈이 보였다.

 

  매일 앞에 놓아두는 밥그릇은 핥은 듯이 비어 있었지만 어미가 굴밖으로 나온 것은 사흘이 지나서였다. 해산어미의 꼴이라니! 다 닳은 몽당 빗자루처럼 빈 부대처럼 꺼칠하고 추레한 몰골이었지만 새끼를 낳고 거두는 어미답게 몸놀림은 조심스럽고 털끝마다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며칠을 두고 천둥번개가 치고 폭으가 쏟아졌다. 검은 점박이가 새끼들과 들어 있는 토굴에서 흙물이 흘러내렸다. '죽었니?살았니? 새끼들 데리고 안전한 새집으로 가거라.' 안에서 들려올 소리에 귀기울이며 나는 하릴없이 되뇌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폭우 속에 나가보았을 때 내가 만들어준 삼각지붕의 집안에 알록달록한 눈먼 강아지 세 마리가 나란히 어미의 젖을 빨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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