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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다방-김사인

2016.08.20 11:31

랄라 조회 수:565

여름의 끝자락 시원한 소나기처럼 벙개 데이트는 시시한 다방의 전혀 시시하지 않은 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떤 사람을 사진이 아니라 움직임이 있는 형체로 만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사진은 어쩌면 그 사람의 가장 잘 꾸며진 단정한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게 김사인이 그랬다. 선생님께서 선물해주신 딱딱한 검정색 하드커버 속 안에 흑백으로 바바리 코트를 입은 김사인에 대한 첫인상! 내겐 전혀 끌리지 않는 그냥 남자가 말 그대로 시 나부랑이나 좋아할 것 같은 그래서 뭐 시가 뭐 이런! 그래서 그의 느릿느릿한 말투도 처음엔 그러치 뭐 걍 내겐 중년남자!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ㅎㅎ 그도 그럴 것인데 나를 본다면 걍 그냥 평범한 필부네.

창비시선400권째를 기념하는 자리에 1권의 문을 연 신경림시인을 소개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김사인은 진행내내 조금은 들떠 있었고 또 행복해 보였다. 도대체 시가 뭐길래 저 남자를 저렇게 들뜨게 만들지 하는 생각이 빙그레 떠올랐다. 또 나는 어쩌다 인연이 닿아 울압지와 비슷한 연배의 81세 노인의 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작년에 태국여행에서도 나는 이미 60대 70대 여인들이 얼마나 힘있고 매력있는지를 알게된터라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 엷어지기도 했지만 81세 시인을 보니 남자지만 참 곱다라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빗겨간 삶을 살았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째튼 명호샘보다 어린 김사인과 명호샘보다 나이든 신경림의 시 이야기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쫑긋 다시 자리를 고쳐 앉고 귀기울여 듣게 된다. 이 잔잔한 간지럼 좋다.

오호! 그래 사람은 평면적 사진으로는 절대 그 사람의 혼을 느낄 수 없는거구나. 나는 농담조로 또 졸리운조로 진행해가는 김사인의 간간히 번득이는 눈빛에 흥미를 느꼈다.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내게 그가 예사인물이 아님을!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를 소개하는 그의 뒷배경이 갑자기 궁금해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내 속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아주 잠깐 명호샘께 김사인이 옥고도 몇번 치른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듣게 되었다. 신념을 위해 감옥을 다녀온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에게는 무언가 단단해진 아름다운 신념이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순전히 내 눈으로 보는 내 느낌이지마.

어째는 창비시선1권 시집 '농무'
진행자가 자꾸 언급하는 바람에 저절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시가 시나부랑이가 되지 않고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그 무엇이 되기 시작한 근원을 나는 듣게 된 것이다.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를 시들과는 주류가 다른 시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배경 이야기는 옛이야기처럼 두런두런 재미있게 내 마음에 남는다. 시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시인 김지하가 언급된다. 노시인 신경림은 김지하의 폄하를 안타까워했다. 김사인을 통해 김지하가 병중이라는 것도! 두 사람의 김지하에 대한 염려와 또 사랑이 중중한 무게감으로 어떤 파장으로 내 가슴에 밀려들어온다. 말만 들어도 뜨거운게 올라오게 만드는 사람 김지하!! 시사한 다방에서 그 사람이 초대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만일 그걸 알게 된다면 또 한번 시간을 내야지하는 마음을 낸다.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지만 내가 누리는 이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의 댓가 위에 서 있다는 건 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 목숨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사람들 속에는 그러한 두려움을 딛고 목숨을 내어놓고 공동체를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 평화가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들 중 한사람이 내겐 김지하이다. 속속들이 그 사람을 몰라도 그냥 안다. 그걸 아는게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없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만 질투인지 무엇인지 모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을 폄하한다. 다 같이 잘 살아보자고 말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 거들지 않아도 된다. 목숨을 두려워하는 건 사람의 가장 기본 속성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폄하는 말하야한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기억해주는 거 그것이 앞선 세대들에 대한 후세대들의 역할이 아닐런지.

신경림의 나는 그저 앞에 나서지 않고 죽을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솔직하게 자기 시를 썼노라고 김지하는 정말 목숨을 내 놓고 앞장 선 사람이라고! 나는 신경림 잘은 모르지만 김사인은 자꾸 신경림의 겸손한 자세를 그런 분 아니라고 했지만 어젯밤 말 그대로의 신경림이라면 나도 그러한 사람축에 든다 목숨 내놓고 할 자신도 없고 그러나 동조라는거 그거라면 내 마음이라는거 그거라면 그래도 소외된 사람과 같이 잘 살아가보자는 사람들의 철학과 닿고 싶은 나도 그런 것에 가슴 설렘이 있으니까. 그런 마음을 먹으면 온 몸에 기운이 넘쳐 흐른다. 옆길로 빠지는 것 같지만 아잔브람이 말한 좋은 마음을 가지면 온 몸에 좋은 기운이 넘쳐흘러 일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에너지가 탁해지고 몸에 기운이 빠지고 그래서 자꾸만 병이 오는거라고.

요샌 비우는 걸 좋아한다.
명호샘 따라 쫄랑거리고 어딜 가는 것도.
사전지식 없어도 된다.
척할 필요없이 내가 무언가를 만난 날 들은 날부터 내 인생의 참조문헌들을 하나씩 늘려가면 되는거니까.

그래도 나는 오늘 출근길에 김사인의 시집도 신경림의 시집도 사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박준'이라고 시시한 다방의 젊은 피디의 시집 한권을 살 것 같다. 왜냐하면 나와 동시대를 사는 나보다 어린 남자의 시를 들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시 제목이 끝내준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부대끼며 사는 세상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공감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그 당신을 어떻게 먹었는지 그의 심장소리를 살짝 엿듣고 싶어진다.


p.s. 지금은 사무실 결국 샀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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