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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일곱집매- 초대할게 같이 가자구...2014.10.21 10:42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2013년 5월 어느 날 연우 소극장에서 이양구 작가의 <일곱집 매>를 경험했다. 그랬다. ‘연극을 보았다’, ‘우아하게 문화생활을 했다’가 아니라, 망치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가끔 망치로 뒤통수를 맞아야 내 머리는 겨우 작동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부어 오른 뒤통수의 상처 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그림이 한 점 있었으니, 그건 화가 김용태의 <DMZ>라는 작품이었다. 1984년 6월 서울 경운동 아람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 <DMZ>는 김용태가 동두천과 의정부 미군 부대 주변의 사진관을 찾아 다니며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을 구해 그 사진들을 영어 대문자 ‘DMZ’라고 배열한 일종의 콜라주 형식의 작품이었다. 크기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수백 장의 사진 속에는 미군 병사와 한국의 여인들이 있었고, 그 중엔 한국 여인이 흑인과 백인 아이를 함께 안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그의 작품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전쟁에 대해, 휴전선에 대해,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폐허에 대해, 굶주림과 삶의 막막함에 대해, 저 삭막한 성욕과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절박하고 슬픈 눈웃음. 사진 한 장 한 장이 파편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고, 나는 작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말을 잊은 채 하염없이 서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당장의 현실을 얘기할 뿐만 아니라 ‘비무장 지대’라는 추상성을 구체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뒤 작가는 그 사진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그 사진에 나오는 여인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이제 작품 <DMZ>의 원본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착한 술친구 김용태도 없다. 지난 5월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뒤이어 소설가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과 소설가 송병수의 단편 「쑈리 킴」이 뇌수 속에서 흘러 나왔다. 그 중에서도 「쑈리 킴」이 더 각인되어 있었던가?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쑈리(shorty)는 따링(darling) 누나를 만나 펨프가 된다. 그들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야전용 휴대식량 ‘레이숑’ 통조림과 비스켓을 먹으며 산다. 해방과 전쟁 이후의 혼란과 상처 속에 남겨진 이 둘의 생존 이야기에서, 작가는 쑈리 킴과 따링 누나의 행위를 도덕적인 규율로 매도하지 않는다. 시대가 강요한 조숙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따링누나에게 쑈리는 천진한 열살 남짓한 소년이고, 양색시 따링 누나는 쑈리의 동업자, 어머니, 누나, 가족이고 험한 세상을 함께 건너가는 아름다운 동반자였다. 이름을 팔고 몸을 팔고 마음까지 팔아서 살았던 사람들. 왜 살아야 했을까?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미술 평론가 이태호, 서울대 조윤정 선생의 글이 내 기억을 구체화 시켜 주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곱집 매>를 꼭 해봐야겠다는 욕심은, 이 연극이 이런 기억들을 상기시켜 주어서가 아니다. 이양구 작가는 수년간 안정리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할머니들과 몇 달을 같이 지내기도 했다. 거기에서 작가는 전쟁의 그늘과 속살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서, 국토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이 탄생했다. 그래서 <일곱집 매>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고, 옛날 얘기가 아니고,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의 기록이고, 우리 이웃에 관한 보고서이고, 분노하지 않는 지성은 밥벌이 직업을 위한 호구지책용 논문 같은 거라고 각인시켜 주고 있다. 작가의 진정성이, 작가의 치열함이, 그의 역사의식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연민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 낸 샘이다. 연습장 풍경 <일곱집 매>를 연습하던 어느 날 매매춘에 관해 장시간 토론하다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이 나왔다. - 옛날, 옛날 한 옛날, 한국이라는 나라에 의사, 변호사, 판검사 등 소위 잘 나가는 아들을 둔 어머니는 그 남자에게 시집 올 여자에게 열쇠 3개 (집 열쇠, 자동차 열쇠, 병원 또는 사무실 열쇠)를 가져오라고 했다던데, 이 경우 그 아들과 어머니는 매매춘과 상관이 있을까? 없을까? - 열쇠 3개를 요구한 그 어머니는 포주가 아닐까? 그 아들은 남창이고 - 그건 너무 순진한 견해인데. 인신매매가 더 정확한 법적 용어가 아닌가? - 근데 ‘위안부’ 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그 따위 단어를 사용하는 일본이나 한국의 언론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야? 아니 남자들이야? 뭘 위안해? - 성 노예가 더 맞는 단어 아닌가? 기억 하고 또 기억 하기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서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그리고 공감하기. 연극 <일곱집 매>는 눈물 한 바가지, 웃음 한 보따리로 이제 여러분을 만나러 간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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