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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어제의 농담이 오늘은 성희롱…



김선주 언론인


유럽여행 중에 길에서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를 보았다. 아이고 이뻐라 했더니 알아들은 듯 눈을 마주치며 쌩긋 웃는 게 사랑스러워 등을 쓰다듬으며 뭐라 뭐라 했더니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내 손을 얼른 저지했다.

큰일 난다, 왜 터치를 하냐, 자칫 잘못하면 성희롱으로 몰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손녀뻘에게 귀엽다 한 행위가 뭐 성희롱? 하다가 문득 모든 성폭행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되었고,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들이 대부분 너무 귀여워서 조금 만진 게… 이런 식으로 변명을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남자였다면, 혹시 그 아이가 남자아이였다면… 충분히 그런 심증을 가질 수도 있는 세상이지 싶었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낯뜨거운 범죄행위에 대해 조금 변호를 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가 검사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성적 일탈의 파렴치한 짓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권력형 범죄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검찰 66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며 우리나라 검사들이 상당한 도덕적인 집단으로 살아온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검찰 내부의 반응이 역겨워서이기도 하다.


개인적 일탈로 지나쳐 버리기엔 그가 가진 지위가 너무 공적인 자리이고, 정신적인 문제라면 그 상태나 행위가 심각해 보여 그 자리를 유지하고 살 수는 없어 보인다. 들키지만 않았으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면 사실상 미친놈 해버리는 게 우리 사회의 바바리맨들에 대한 보통의 인식이었다. 검사들의 권력형 비리나 범죄는 숱하게 보아왔던 사람들이 제주지검장의 범죄를 보면서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 집단이 무슨 짓은 못하겠어라는 쪽으로 질타와 분노가 쏟아지는 것 같다.


수많은 성범죄 가운데 바바리맨 증상은 가장 낮은 종류의 성범죄로 취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종류의 관음증이나 노출증에 자신감이 붙으면 점점 더 흉악한 범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성폭력 행위를 초기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가 검사로서 여성 피의자를 심문하면서 바바리맨 행위를 한 게 아니라면 그의 성적 일탈은 지금부터 정신과 의사가 풀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미 망신은 당한 거고 바바리맨은 들키지 않는 것이 생명(?)인데 들켜버린 이상 그는 공적인 자리에 다시는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 그의 얼굴이 드러난 것 자체로서 이미 충분히 벌을 받은 거 아닌가 싶다.



가장 나쁜 성범죄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상사가 부하들을 상대로, 교수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의사나 목사들이 환자나 교인들을 상대로, 혹은 장애시설의 장이 심신이 약한 원생들을 향해 저지르는 지속적인 성범죄야말로 가장 흉포하고 엄하게 다스려야 할 범죄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법의 잣대가 흐리멍텅해서 지역을 바꿔가며 직장을 바꿔가며 버젓이 활개치고 산다는 것이 우리나라 성범죄의 현주소이고 심각한 문제다.



누구나 젊은 시절 성적 일탈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범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어제는 범죄가 아니었으나 오늘은 범죄가 되는 일이 흔한 게 현대사회다. 교육을 통해, 법을 통해 억제를 배우고, 범죄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야 한다.


최근 직장에서 성희롱 의혹을 받은 상사들의 경우 예전엔 그런 일로 선배를 성폭력자 취급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탄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 같으면 농담거리밖에 안 될 일도 상대방이 불쾌해한다고 분노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기사 섹시한데…’라는 표현은 과거에 내가 후배들에게 던진 최고의 찬사였다. 요즘은 상사가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면 성희롱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성범죄의 특징은 지속적이고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초기에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게 옳다. 우리 사회에 성범죄와 성폭력이 만연하는데도 그 문제에 관대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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