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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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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더 이상 주유소에서 일은 안 하고 있고요,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주유소 경험을 짧은 글로 기고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여기다 옮깁니다. 2013년 1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주유소 혼유사고 다시 보기    유재언

                                                        
얼마 전 꽤 흥미로운 뉴스를 봤다. 그것도 방송3사에서 모두 다뤘다. 그건 바로,

‘주유소 혼유 사고 급증!!’

보통 주유소 관련 뉴스는 휘발유 가격이 얼만지, 가짜 휘발유 판매 적발, 용량 속인 주유소, 혹은 주유소 화재 사고 등이었는데 혼유 사고라...이건 주유소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다 (주유소 화재 사고 다음으로!). 손님 입장에서도 주유소 입장에서도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1) 그래서 나도 처음 주유소에서 일할 때도 그랬고, 내가 주유원들 교육시킬 때도 그랬고 항상 강조했다. 주유하기 전에 휘발유인지 경유인지 유종 확인하고 주유하라고. 암튼 그 흥미로운 혼유 사고 관련 뉴스들을 모두 찾아서 다 봤다. 이렇게 혼유 사고를 짧게라도 방송3사에서 공동으로 다룬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거다.

“손님과 주유원의 부주의로 인해서 혼유 사고가 발생하므로 손님은 주유 시 반드시 엔진을 정지하고 주유원은 유종을 확인해야 한다.”

이거 맞는 말이다. 사실을 제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원인(부주의)과 해결책(유종확인, 만일에 대비한 엔진정지)도 틀린 말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난 좀 찜찜했다. 그건 내가 주유소에서 꽤 오랜 기간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혼유 사고를 포함해서 그냥 주유소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졌다. 왜 혼유 사고가 자주 일어날까? 이건 그 일의 숙련도와 관련이 있다. 일을 오래하면 할수록 주유기를 오래 잡으면 잡을수록 많은 차량에 주유를 할수록 혼유를 할 확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그럼 답은 간단하다. 주유를 오래 하면 된다. 역시 길은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주유원들이 주유를 오래 안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주유원들이 하는 일은 몇 가지 과정의 연속이다. 즉, 처음에는 어색하고(손님께 큰 소리로 인사하기) 위험하고(차들이 바로 내 옆으로 지나간다.) 냄새나서(유증기는 냄새도 독하고 몸에도 해롭다.) 정신없고 어렵다 생각되지만 대개 보통 2주에서 3주정도만 지나면 거의 완벽하게 일을 익히게 된다. 그만큼 단순한 일이다. 한 달 지나면 이제 슬슬 핸드폰으로 문자질도 하면서 주유한다. (그러면 안돼!!)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다는 이유로 이들 주유원들의 노동력 가치는 아주 우스운 취급을 당한다. 누구에게? 소장 및 사장 즉 자본가들에게... 이들 자본가들에게는 항상 이런 마음이 있다.

‘그래도 주유소는 돌아간다. 너(주유원) 한 두 명 없어도 주유소는 돌아간다.’

고백하건데 이건 나를 포함한 우리 주유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비정규직, 시간제 알바생 등... 오래 일할 생각도 없다. 왜? 우리들은 알고 있다. 어차피 이 일은 그냥 시간 때워주고 지금의 절박함을 약간이나마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냥 하루하루 지냈을 뿐이다. 나도 그렇게 지냈다. 오히려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휴식보다는 어떻게든 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서 단 몇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주유원들(노동자들)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바람직하니까(?) 자본가들은 이제 그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탄력적으로 주유원들의 노동시간을 조정해준다.2) 좀 한가한 시간에는 근무 시간을 인위적으로 줄여버리거나 어떨 때는 더 늘리기도 한다. 주유원들에게는 일정하게 무조건 지켜지는 노동시간이란 것이 없다. 항상 필요(그 필요란 자본가들 입장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이윤추구!!)하면 언제든지 주유하러 나와야 하고 자본가들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돌리다3)보면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스스로 나가는 주유원들이 생긴다. 이유는 여러 가진데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주유소 짜증나서....’

추운 겨울에는 찬바람 맞으며 더운 여름에는 지열과 더 심하게 올라오는 유증기를 맡으며 하루 9시간 혹은 10시간 이상, 그리고 바쁘거나 교대하기로 한 주유원이 결근하게 되면(보통 무단결근이다. 왜? 주유소 짜증나서..) 15시간 이상도 초과노동을 하게 되는 이 상황...그래도 자본가들은 끄떡없다. 그들은 일한 만큼 더 시급 챙겨줬다 생각하고 주유원이 관두면 또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어차피 짧게 주유소일 하다가 돈 좀 몇 푼 모이면 알아서 관두는 다른 일을 하려는 자발적으로 준비된 산업예비군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다시 새로운 비숙련 주유원이 들어오게 되는데 혼유 문제는 여기서 일어나게 된다. 신규 채용되는 비숙련 주유원들은 늘고 노련한 숙련 주유원은 줄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주유원은 경력이 인정 안 된다. 짜증나서 좀 다른 주유소로 옮기려 하면 다시 초보자들이 받는 시급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자본가들도 경력 있는 주유원이라고 시급을 더 챙겨주지 않는다. 왜?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산업예비군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노련한 주유원이나 비숙련 초보주유원이나 시간 좀 지나면 별 차이 없(어지)는데 시급을 더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혼유 사고 같은 부주의에 의한 사고 건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유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알려줄 수 있는 숙련 주유원들이 줄어가고 그 자리를 비숙련 주유원들이 채워가고 있는 상황, 그리고 어차피 현장에서 일하는 주유원 입장에서 이 일에 그렇게 애정이나 책임감은 애초에 가질 생각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상황, 자본가들은 그거 감안하고 주유소를 운영하는 상황!

이것이 주유소 혼유 사고의 다른 모습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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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는 혼유사고 발생 시 모든 비용을 주유소에서 부담했는데 요즘은 손님(차량 소유자)에게도 같이 책임을 묻는 판례가 늘고 있다.

2)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19세기 영국에도 릴레이(relay)제도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이런 교대제와 같은 가혹한 노동방식이 있었다.

3) 실제 주유소 현장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 “애들 어떻게 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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