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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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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성명서 입니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취합하고 사실여부를 더 신중하게 확인하느라 늦어진 것이죠. 지금 언론에서 나오는(강조되는) 기사들 전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시뮬레이션? 그런건 사실(진실)을 먼저 제대로 밝힐 수 있는 것 부터 해결하고 할 일이죠. 종교, 회사의 문제? 그것도 그 사고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먼저 제대로 안 다음에 조사할 일입니다. 안 그런가요? 이 성명서에서 다루는 이것만 밝혀진다면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극히 상식적인 성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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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세월호가 4월 16일 오전 8시 49분에서 50분 사이에 급격히 우회전하며 사고를 당했으며, 위치는 진도관제센터에서 남서쪽으로 24km, 병풍도 동쪽방향 3.3km 지점이라고 발표했다.
476명의 탑승자 중 4월 21일 현재 구조 174명, 사망 121명, 실종 181명에 이르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처음부터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가 사고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 사고 시각을 은폐하고 있다

사고발생 시각이라는 8시 50분 이전의 항적과 교신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8시 50분 이전의 세월호의 행적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당일 7시 20분경에 사고 인근지역인 관매도에 세월호가 서 있었다는 주민의 발언1)이 보도되고, 비슷한 7시 20분경에 세월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방송보도를 보았다는 말2)도 있다. “오전 8시10분 제주해경이 ‘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왔다”고도 한다3). 해수부 해상교통관제센터 항행경보 게시판내용에는 “사고예상시간을 (애초에: 인용자) 8:30분경으로 발령하였으나 정부공식 사고발생 시간인 8:55경으로 정정”되기도 한다.4)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5) “8시 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다6). 또한 한미군사훈련 때문에 항로가 바뀌었다는 등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는 자동항법장치에 의해 운전되며, 해양수산부7)에 이 항적이 기록된다. 운행 중 인근 관제소와(목포, 군산, 대산 등)의  교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기록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런데도 이 기록을 계속 숨기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위와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은 즉시즉시 삭제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8시 50분 전후의 기록들과 55분 이후의 기록들을 애초에는 없다고 하다가 하나 둘씩 공개하면서 관심을 이곳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7시 20분 혹은 8시 30분 혹은 그 이전에 사고가 났음을 강력하게 의심해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2. 사고 발생 시각이라는 8시 50분 이후의 교신내용도 은폐하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 사고가 발생한 시각이 8시 50분경이라면, 세월호는 즉시 가까운 진도관제센터(해양경찰청 관할8))에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다급하게 보고했을 것이다. 설사 세월호가 보고를 안 했다 해도, 진도관제센터는 불과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자신의 감시 구역에 들어온,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500명 가까운 승객을 태운 대형여객선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급격히 우회전하고 기우는 등의 이상을 느끼고 교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를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도된 경과를 보자. 보도에 의하면, 탑승승객인 학생 등 승객들이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등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핸드폰으로 119로 신고하였고, 119에서 다시 해경에 연락하여서 8시 52분에 해경에 처음으로 조난신고가 접수되었다. 이때 이미 여러 승객들이 느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8시 55분에야 제주관제센터(해양항만청이 관리)에 처음으로 교신에 성공했다고 하고, 제주에서 다시 진도로 연락하여 8시 58분에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정식으로 사고가 접수된다. 그리고 해경은 오전 9시 6분부터 오전 9시 37분까지 31분간 세월호와 이루어진 ‘교신 내용’을 20일에야 여론에 밀려 공개했다.
교신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다. ▶8시 50분-55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빠져 있다. 세월호는 분명히 진도관제센터와 교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제주로 교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목포나 진도 등 해역에서 (세월호를 포함해) 우리 쪽으로 교신해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9)는 강상보 제주 관제센터장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진도관제소에서 고의로 세월호의 교신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8시 55분-9시 05분: 세월호와 제주와의 교신. 제주관제센터와의 55분부터의 교신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만약 발표한 대로 제주와의 교신이 처음 사고를 접수하는 교신이었다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사고경위가 보고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배 넘어갑니다”라는 내용이 그 처음 발언이었다. 또한 상황을 설명하는 세월호의 교신담당자의 목소리는 “배가 넘어가는” 다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침착하다10)11). 듣기에 따라서는 “해경에 이미 보고해서 다시 자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라고 들릴 수도 있다. 또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지금 자신들은 진도 해경에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둘을 종합하면 이전의 상황은 이미 충분히 해경에 보고되었는데 “배가 넘어가는” 상황은 새롭게 발생했고 이 부분이 연락이 안 되니 연락해 달라는 의미가 된다. ▶9시 06분-9시 07분: 제주관제소-진도관제소 교신. 이 부분은 발표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도 제주에서 진도로 사고를 보고하면서 사고원인에 대한 주요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다. ▶9시 07분-9시 38분: 진도관제소와 세월호 교신내용. “진도관제소-지금 침몰 중인가. 세월호-그렇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린다.”12)로 9시 7분에 해경이 교신을 시작한다. 해경이 전후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거나, 혹은 거기에 대한 내용을 빠뜨리고 발표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자가 더욱 의심된다.
이상의 교신내용과 세월호 교신자의 어조들을 가지고 판단하면, 세월호와 해경(진도관제소 포함)은 서로 간에, 보도된 교신내용 이외의 교신이 이미 있었고, 최초교신이라는 제주관제소와의 8시 55분 교신 전에 상황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다고 강력하게 추측할 수 있다.


3. 세월호와 선사인 청해진해운 간의 교신내용을 은폐하고 있다

이렇게 커다란 사고가 나면, 직원이 사장에게 상세하게 전말을 보고했을 것임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해운사의 문제점을 이 잡듯 뒤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고보고 내용은 철저히 감추고 있다.
그리고 만약 보고내용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더욱 큰 문제이다. 이것은 선장이 사고를 은폐하기로 계획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단독으로 결정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사건이라, 분명히 어떤 외압이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4. 선장과 선원들의 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선원들은 누구보다도 사건의 전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정부는 사고가, 8시 50분 경 선원이 배를 오른쪽으로 너무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어서 일어났다고 한다. 선원은 키를 조금 돌렸는데 많이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물어야 한다. 왜 비정상적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물어보지 않는다. 선원도 아무 말이 없다.
선원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사복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선원을 철저하게 에워싸며, 감시하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지한다. 사건발생 초기에 암초설 등 충돌설이 부각되었고, 그래서 관심이 집중되었던 “쾅”하는 충돌음에 대한 선원들의 의견도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5. 정부는 배를 감추려 한 것 아닌가?

‘쾅’하는 충돌음이 들린 것은 여러 번 있었다. 8시 50분 이후 급격하게 배 뒷부분 아래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왔”고, 좌측으로 배가 기울었고 좌측 뒷부분부터 가라앉았다. 그래서 배의 바닥 좌측 뒷부분에 구멍이 생겼을 가능성이 강력하게 의심되고 있다.
배가 충격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증언들을 찾아보면 크게 네 번이 있다. 첫째,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는 증언13)이 처음이다. 두 번째로는 세월호 승무원 전아무개씨가 16일 “당직 교대를 위해 기관일지를 쓰던 오전 7시45분께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다14). 세 번째는 “8시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다. 네 번째는 구조된 승객들이 “배가 침몰하기 전 ‘쾅’하는 굉음이 들렸다”고 증언했다는 것이 있다15).
그래서 만약 정부가 규명 의지가 있다면 배가 가라앉기 전16)에 바닥 좌측 뒷부분을 검사하고 공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를 못 보게 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사고 직후 구조를 위해 달려온 민간 선박의 선장이 “어선을 여객선 가까이 대려했더니 해경은 ‘방해된다’고 방송하면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17) 이렇게 지원을 거부하고 있었음을 볼 때 “사고 초기 구조 활동에 투입된 장비와 인력이 형편없이 부족했”던 이유와, “첫 날 동원된 잠수 요원은 해경 140명과 해군 42명 등 모두 182명이었지만, 실제 수중 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9%에 불과한 16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단지 능력부족으로만 볼 수가 없다18)19). 정부는 민간 잠수부의 투입도 꺼렸으며, 민간 잠수부는 사고 발행 후 만 하루가 지난 17일 오전 8시 반 경에야 처음으로 투입된다. 이후에도 민간잠수부들에 대한 비협조와 그로 인한 갈등은 지속된다. 현장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후 만 이틀이 지난 18일이 되어서야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겨우 세 개, 그것도 줄을 느슨하게 하여 효과도 없이 엉터리로 설치하더니, 다시 효과적으로 설치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당일 배가 완전히 가라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더 이상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20). 인양장비인 크레인은 공식적 사고 발생 후 5시간이나 뒤에 요청한다21). 12시간 만에 출발하고 만 이틀이 지나서야 도착한다22). 배의 길이는 146m에 이르지만, 침몰지점의 수심은 37m이니, 들어 올리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배를 세워 앞부분을 지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리프트백이나 크레인이 배를 부양하는 데 있어 효과 유무를 떠나서, 배를 부양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거부했다고 볼 수밖에는 없다. 앞으로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배를 끌어올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침몰 직후 배를 탈출한 사람들 일부를 “건져 올린” 것을 제외하고, 구조한 사람은 단 1명이 없다. 도대체 정부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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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과정을 살펴보며 다음과 같이 의심한다면, 전혀 억측에 불과할까?
사고는 8시 50분 훨씬 이전에 발생했다. 세월호는 해경에 상황을 알린다. 해경의 보고를 받은 상부는 사고의 실체를 은폐하기로 한다. 약점이 많은 세월호 선장 등 간부선원을 협박해 굴복시킨다. ―― 배를 바다로 끌고 가서 가라앉혀라. 배가 가라앉는 결정적 순간에 교신을 하면, 핵심 선원들의 생명을 먼저 보장해주고 승객들의 안전도 최대한 보장해준다. 대신, 사고 일체를 함구하라. 그리고 현장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침몰현장에는 민간인의 접근을 금지하고, 구조인원도 최소화한다. 배는 빨리 가라앉힌다.
그래서 선박은 상처를 안고 죽을 때까지 운항을 계속하게 된다. 정부는 이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 선박은 아침 7시 20분경 크게 흔들리고, 조난신고를 한다. 신고는 언론에 여러 경로를 통해 새어나가 보도된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로 묵살되고 보도는 삭제된다. 아침 8시 20분경 다시 배가 흔들린다. 다시 조난신고를 보낸다. 진도군청과 항행경보 게시판에는 8시 20분경 조난신고가 기록된다. 그러나 역시 묵살된다. 드디어 8시 50분, 결정적으로 배가 침몰하기 시작한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진도관제소는 선박으로부터의 교신을 차단한 상태에서, 상부와 교신하며 구조대 투입시기를 저울질 한다. 선박은 진도와 교신이 안 되자, 제주와 교신을 시도한다. 구조가 시작되고 현장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전원구조되었다는 등 허위보도를 한다.22)

우리는 정부에 다시 묻는다.
정녕 정부는 사고의 원인을 감추려고 하는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감추려 하는 참사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땅과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흐느낌이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정부에 요구한다.

하나, 세월호의 모든 항적과 교신기록을, 그리고 배를 공개하라!
하나, 세월호 선원과 청해진해운을 국민 앞에 세워서 진실을 말하게 하라! <끝>

1) 박기용 기자, “어민 ‘7시~7시30분 배 정지 목격’, 최초 신고시간보다 1시간여 일러”, <한겨레>, 2014. 4. 2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760.html)

2)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200517

3) 유명식, “[세월호 참사][단독]‘연락두절’ 해경에 인솔교사 연락처 알려줘”, <뉴시스>, 2014.04.21.

     사고 당일(16일)부터 이튿날인 17일 정오까지의 상황을 담은 5페이지 분량의 도교육청 일지에는 지난 16일 오전 8시10분 제주해경이 ‘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경기도교육청 정상영 부대변인은 안산올림픽 기념관에 설치된 세월호 침몰 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고당일 오전 8시10분 단원고 관계자가 제주해경이라는 사람과 통화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1134410796)

4) 항행경보(제14-155호) 진도군 관매도부근 여객선 침몰 조난 협조항행경보(제14-155호)

     16일 오전 8시 55분경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이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중이며,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학생 등 승객 476여명이 탑승 중이니, 인근해역을 항해중인 선박과 어선은 조난 구조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남해안 ∼ 진도 연안 ~ 여객선 침몰 중

     ○ 예상 시간: 4월 16일 오전 8:55 경

     ○ 지점: 전남 진도군 관매도부근 해상

     ○ 선명: 세월호(6825톤). 끝.

     ※ 긴급사항 전파를 위해 당시 사고 예상시간을 8:30분경으로 발령하였으나 정부공식 사고발생 시간인 8:55경으로 정정합니다.

   (http://www.khoa.go.kr/hpt/hptPopup.do?p_id=2955)

5) 김수정 기자, 뉴스타파 “세월호 침몰, 신고시간보다 20분 앞섰다” , <OBS플러스>, 2014. 4. 20.

     뉴스타파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신고시간보다 20분 앞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뉴스타파는 18일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이 목포해경에 신고된 것보다 20분 이상 앞섰다고 기록된 상황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고 전하며 5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목포해경에 구조신호가 접수된 오전 8시 58분보다 33분 빠른 시각이다.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7702

6) 김수지·김미겸·김효은기자, “불신은 어떻게 시작됐나?”, <Dispatch>, 2014. 4. 20.

     ”8시 30분 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119에 신고를 했고, 3,4층으로 뛰어다니며 학생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선장이 너무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0170407467)

7) 진명선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침몰 위기’ 신고 6분전, 뱃머리 급하게 110도 틀어”,<한겨례신문>, 2014. 4. 17.

     세월호는 급선회 때 3분36초 동안 신호가 수신되지 않아 전기가 끊기는 등의 이상 징후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승무원과 탑승자들은 이보다 1시간여 전부터 큰 소리가 들리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 항해지원과 관계자는 “8시48분까지 신호가 들어왔고 3분 동안 신호가 끊겼다. 전기 등의 공급이 끊겼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급선회는 보다 근본적인 사고 원인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어 보인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384.html)

8) 비행기 공항에는 관제탑(소)가 있어 항공기의 이착륙 등을 관리한다. 항구에도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있어 항구의 안과 주변 지역에 들어오는 선박들을 감시한다. 전국 17곳에 설치돼 있다. 15곳은 해양항만청이 관리하고 있고, 진도와 여수만 해양경찰청이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해경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9) 이경미 박수지 기자, 제주/허호준 기자, 김경무 선임기자,  “[단독] 세월호, 진도 관제구역 진입 때 항행 신고 의무 무시”, <한겨레 신문>, 2014.04.22.

     강상보 제주 관제센터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목포나 진도 등 해역에서 (세월호를 포함해) 우리 쪽으로 교신해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멀리 교신이 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가끔 봄철에 전파가 멀리 넘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연결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연락이 되지 않는데 날씨 같은 ‘하늘의 도움’으로 제주 관제센터와 연락이 됐다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967.html)

10) http://idolbox.tistory.com/16737 에서 들어보라.

11)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선장이나 선원들이 구조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영상에, 그들의 이상할 만큼 차분한 표정이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저히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온 사람 같지가 않다.        

12)(목포=연합뉴스) 특별취재팀, ‘탈출 명령 없었다’…골든타임 31분 우왕좌왕(종합4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20/0200000000AKR20140420038453055.HTML?input=1179r)

13) 김장민 기자, <우먼컨슈머>, 2014. 4. 16.

     16일 오전 진도 앞 바다에서 승객 475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전날 밤 암초에 부딪친 뒤 운항을 계속하다 침몰 사고가 난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구조된 한 구조자는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밝혔다.

     구조자는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며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http://www.womanc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34)

14)  박기용 기자, “어민 ‘7시~7시30분 배 정지 목격’, 최초 신고시간보다 1시간여 일러”, ≪한겨레≫, 2014. 4. 2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760.html)

15) 진도 권경안 김형원 기자, “침몰까지 140분 …”, ≪조선일보≫ 2014. 4. 17.

16) 4월 18일 오후 1시에 완전 침몰된다.

17) 특별취재팀, “<여객선침몰> 해경 ‘나홀로’ 구조활동…민간어선 접근 통제”,≪연합뉴스≫,2014. 4. 17.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4/04/17/0505000000AKR20140417149100054.HTML)

18) 정은주, 엄지원, 박현정.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다”, <한겨레21>, 2014. 4. 21.

      “사고 초기 구조 활동에 투입된 장비와 인력이 형편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헬기나 보트로 건져올릴 뿐이었다. 더 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 여객선 내부에는 진입하지 않았다. 훈련을 받고 장비를 갖춘 해경특공대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생존자 허아무개(51)씨는 “사고 초기 구조 활동에 투입된 장비와 인력이 형편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당시 해군·소방·해경 등에서 헬기 16대, 선박 24척이 출동했다고 밝혔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818.html)

19) 강경남기자, “세월호 사고 당일 투입 구조대 고작 16명”, <뉴스타파>, 2014. 4. 22.

     22일 ‘뉴스타파’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첫 날 동원된 잠수 요원은 해경 140명과 해군 42명 등 모두 182명이었다.

     하지만 실제 수중 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9%에 불과한 16명이었다.

     이는 ‘뉴스타파’가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해양수산부 종합상황실과 해경 상황실이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uid=455349)

20) 서재근 기자, “’세월호 침몰’ 완전 침수 전 리프트백 설치 왜 안했나?”, <스포츠서울닷컴>, 2014. 4. 19.

     수사 당국이 ‘세월호’가 완전히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매달아 놓은 부양주머니(리프트백)의 설치를 중단했다. 리프트백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됐다는 게 수사 당국의 판단이다.

     18일 오후 5시께 해군 측은 리프트백의 효과가 없다고 판단, 추가 설치 계획을 중단했다. 생존자 수색작업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선체를 가라앉지 않게 하는 리프트백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만큼 추가 설치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에는 지금까지 인양력 10t짜리 1개와 35t짜리 두 개 등 모두 세 개의 리프트백이 설치돼 있다. 이 리프트백은 18일 낮 12시 45분께 ‘세월호’의 뱃머리가 물에 잠기면서 선체의 완전한 침몰을 막기 위해 해군이 설치한 것이다.

     정부는 애초 35t 부력의 리프트백 25개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설치된 세 개 가운데 한 개가 수면에 쓰러지면서 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리프트백이 제기능을 하려면 수면에 꼿꼿이 서 있어야 한다.

     리프트백이 수면에 뉘어 있다는 것은 리프트백과 선체 사이에 연결된 줄이 그만큼 느슨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썰물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에 잠긴 선체가 수면과 가까워졌고, 리프트백과 연결된 줄이 느슨해지면서 사실상 ‘부표’의 기능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역시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리프트백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있다”며 “(수사 당국이) 무슨 의도로 이런 식으로 작업을 계속 진행하는지 답답하다”고 비판했다….(생략)

     선체의 완전 침몰을 막아줄 유일한 희망이었던 ‘리프트백’마저 ‘무용지물’이 되자 실종자 가족들의 애환은 더 커졌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선체의 상당부분이 물에 떠 있었을 당시 배의 침몰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개의 공기주머니를 달아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수사 당국의 ‘뒷북식’ 대응이 화를 키웠다”며 분개했다.

     리프트백 설치와 관련해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측은 “리프트백 설치 규모나 시기 등에 대해서는 해군 측에서 답변할 부분”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358338.htm)

21) 이호건 기자, “사고 난 지 12시간 지나서 출발한 크레인, 왜?”, <SBS>, 2014. 4. 18.

     앵커: 그런데 이 크레인이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고가 나고 나서 12시간이 지나서야 사고 해역으로 출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호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구조작업을 위해 모두가 기다리던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거제조선소를 출발한 시간은 그제(16일) 저녁 8시쯤입니다. 사고가 난 지 12시간 가까이 지나서였습니다. 우선 해경의 요청 자체가 늦었습니다. 해경은 크레인 사용료를 사고 낸 선사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선사 측이 먼저 요청하길 기다리느라 지연됐다고 말합니다.

     [해경 관계자: 원래 원칙은 거기(사고 선사)가 하게 되어 있죠.]

     하지만 해경은 이런 긴급 상황에 크레인을 요청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른바 방재조치명령 권한입니다. 먼저 크레인을 요청하면 차후 선사로부터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해경이 초반에 상황판단을 잘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실제 요청시간은 사고 발생 5시간 뒤였습니다.

     [해경 관계자: (몇 시쯤 요청하셨나요?) 13시40분요.]

     해경은 나중에 요청 시간을 오전으로 해달라고 삼성중공업에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 연락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냥 사고 당일 오전이라고 해달랍니다. 해경이랑 우리랑 또 사이도 있잖아요.]

     이러는 사이 크레인 넉 대가 모두 모이는 데는 만 이틀이 넘게 걸렸습니다.

22)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210306523

22) 정철운 기자, “세월호 참사, 언론은 ‘오보 참사’”, <미디어 오늘>, 2014. 4. 23.

     출발부터 오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 16일 오전, 언론은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오전 11시 5분 해경으로 통보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밝혔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이것도 오보였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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