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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

 

[프레시안 한형식 새움 회원·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절반이 3.1운동을 모른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국 사회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놀라운 수준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고와 실천을 하늘 아래 처음 시도된 것처럼 알고 열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사카구치 교헤 지음, 고주영 옮김, 이음 펴냄)에 나온 어떤 사례도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을 중고 물건을 새 물건으로 속여 파는 비양심적 상인들처럼 새로운 외양으로 치장하고 제도 내의 문화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시키는 일도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이다.

 

저자가 제일 야심차게 내놓은 대안적 실천 한 가지만 검토해 보겠다. 그는 0엔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음식은 과일 나무를 심어 돌보지 않고 놓아두다가 열매가 열리면 그것을 먹는다. 바나나만 먹고 사는 친구의 이야기도 친절하게 곁들인다. 집은 버려진 쓰레기와 폐자재로 짓는다. 도쿄의 노숙인들을 보면서 생각해낸 방법이란다. 집을 짓는 땅은 주인이 불분명하거나 사용되지 않고 있는 땅을 이용한다. 저자가 이름이 알려진 후에는 후원자들이 사용하도록 내놓은 땅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0엔으로 살면 돈이 필요 없으니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일 자체가 정신 나간 짓 같지만 아무튼 저자의 논리를 짚어 보자. 저자는 재활용할 수 있는 쓸 만한 쓰레기가 널려있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그것들을 주워올 수 있는 도쿄를 자연이라고 부르고 그 자연이 준 축복이 0엔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2011년 서울에서 폐지를 줍던 노인들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80대 노인이 70대 노인을 밀쳤고 밀쳐진 노인은 옆을 지나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 이들이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3~4000원 정도다. 노인들이 무게가 나간다며 선호하는 폐상자는 한국 노숙인들이 선호하는 보온재이기도 하다. 인도의 뭄바이로 대표되는 주변부 여러 나라들의 슬럼에는 쓰레기로 지은 집들이 가득 차 있다. 이들에게는 쓰레기를 얻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물건들이 이들에게는 귀중한 자원이다. 집을 지을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 노숙자들은 주변부에 사는 수억 명보다 더 잘산다.

 

도쿄와 서울과 뭄바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변부의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는 오래된 하지만 고통스러운 일상인 것을 어느 일본인은 새로운 실험 심지어 "봉기"라고 부르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선전하고 책을 내며 예술작품으로 포장해 세계를 여행하며 팔기까지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은 왜일까? 책에는 그가 나이로비에서 했던 예술적 실험이 자랑스럽게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그 예술 활동의 대가로 3주에 7만 엔을 받았다. 이는 저자의 평소 생활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 작업에 고용된 현지 청년들의 월수입은 3000엔 정도였다. 그는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지만 케냐인의 거의 30배를 받았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일본 사회와 경제가 세계적 자본주의 분업 구조의 정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 사회는 다른 나라들의 민중들이 "노동"한 결과물을 지나치게 풍요롭게 향유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쓰레기는 다른 사회 민중들의 피땀 흘린 노동의 결과물을 불평등하게 교환하여 낭비하고 남은 잉여물이다. 따라서 도쿄는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연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질서가 낳은 사회적, 역사적 공간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봉기는 기존 사회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결코 아니다. 기존 사회의 틈새에 DIY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거기에는 아까 본 바처럼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도심의 빌딩 틈새에 있는 분식점을 생각해 보자. 지붕과 주방집기만 있으면 식당을 차릴 수 있다. 지붕도 값싼 천막으로 해결할 수 있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하지만 벽을 제공해주는 빌딩을 짓는데 든 돈은?

 

저자의 이런 계산 방법은 일관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지불하지만 않으면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계산한다. 0엔으로 사는데 필요한 물은 우물을 뚫어서 해결하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틈새 식당의 빌딩 벽이나 0엔 특구의 우물이나 도쿄의 쓰레기나 모두 공짜가 아니다. 저자는 보지 않으려 하지만 빌딩 주인, 자연, 주변부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도쿄의 그를 위해 대신 비용을 부담해 준 것이다. 그는 남의 도움을 받는 일에 대해 아주 당당하게 자랑한다. 그리고 그 도움은 다시 기존 사회의 구조 즉 대중매체에 훌륭하게 영합한 결과로 주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의 저자는 제국주의 일본의 잉여에 기생하는 삶의 방식을 봉기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실천들이 즐거운 예술이라는 외양을 가지고 어떤 방해나 탄압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왜일까를 생각해 보자. 이 실천이 정말 세상을 바꿀만한 것이라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이 내버려 둘 것 같은가? 저자는 제국주의와 냉전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룬 일본이라는 사회의 특혜를 온전히 누리고 있고 기존 사회에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힘들게 투쟁하는 이들이 고통을 즐기는 변태이거나 엄숙을 가장한 위선자들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힘든 방식으로 투쟁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기존 사회를 극복하려고 한다고 해서 일시에 모든 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당연히 전술적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때의 기준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 즐거운 것은 선택하고 힘들고 불편한 것만 버리는 식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결심한 진짜 동기는 무엇인지, 그 결심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는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한형식 새움 회원·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mal@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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