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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뒤끝, 며느리뒤끝 (한겨레 김선주칼럼)

2013.02.13 16:04

약초궁주 조회 수:1472 추천:76

[김선주 칼럼] 명절 뒤끝, 며느리 뒤끝

 
 

나이 지긋한 여자 탤런트가 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며느리와 자신이 ‘아들을 나누어 갖는 사이’라고 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어느 나라 어느 시절 이야기인가 싶게 나는 놀랐다. 수십년 전 신혼 때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네 남편의 뼈와 살과 피는 모두 내 것이다’라며 당신의 가슴을 손으로 마구 치는데 어리둥절했다. 입으로는 네네 그렇지요 하면서도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처럼 낯설게 시어머니를 구경했다고나 할까. 격정적으로 나를 겨냥해 토로하는 말인데도 남의 일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들이라는 남자를 나누어 갖는 사이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고 싶을지 몰라도 어떤 여자도 자신의 남편을 그의 어머니와 나누어 가져야만 한다면 결혼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몸과 마음만이 아니다. 부모의 돈은 자식과 나눌 수 있지만 자식의 돈은 아내와 나누지 부모와 나눌 수 없다.
 
다른 유언이 없는 한 부모의 재산은 자동으로 자식에게 가지만 자식의 재산은 결혼한 이상 부모에게 가지 않는다. 법적으로 그렇다. 좋은 뜻에서 아들을 나눈다고 했어도 그 안에 숨어 있는 역사적 사회적 생물학적 가족적 경제적 인간적 의미는 아주 많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명절을 지내고 나면 며느리들의 탄식이 쏟아진다. 명절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제사 준비해야 하고 귀성전쟁을 치러야 하고 아이들을 업고 안고 돈과 시간, 노동, 모든 수고를 해야 하는 일이 끔찍하다. 이걸 내가 왜 하지,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울화병이 도진다. 직장일로 야근을 해야 하고 일이 끝나지 않아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인데도 일일이 말해봤자 소용이 없고 시어머니는 변명으로만 들으려 한다. 며느리라는 대가 없는 직업을, 결혼을, 되물리고 싶을 지경이다. 바로 내가 그랬다.
 
 

내 어머니는 내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자식농사가 제일이고 사랑받고 예쁨받는 며느리가 되길 기대했다. 일요일마다 집에 와서 시가에 가라고 진을 치고 계셨다. 딸을 시집보내 딸 잘 키웠다는 말 듣는 것을 자신의 성공으로 아셨다. 내 시어머니와 같은 시대를 사셨으니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며느리인 내가 듣기에 시어머니의 억지 같은 말이나 이해 안 되는 행동들이 더 이상 상처가 안 된 것은 꽤 많은 세월이 지나서였다. 자신의 부모 기일이나 제사는 한번도 챙겨본 적 없는 시어머니의 여자로서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랬으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내 어머니도 시어머니도 딸 노릇은 포기한 채 산 인생이었다.
 
나 자신도 딸 노릇을 제대로 못한 채 살았다. 명절마다 당신의 딸과 사위가 친정에 오는 것에 대비해 나를 대기시켜놓고 나는 딸 노릇 하게 친정에 안 보내주셨다. 내가 얼굴이 부어서 음식 준비하는 것을 보며 시어머니는 그래도 너는 늦게라도 친정에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냐며 속으로 부러워했을까 질투했을까 돌이켜 상상해본다.
 
 

어찌 보면 며느리 시어머니 노릇 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살 만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가 이혼을 하건 부모가 외로움에 궁핍에 죽을 지경이어도 모른 체하는 자식도 부모도 있다. 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을 앓는 것도 안 하면 그만인데 그래도 그럴 수 없다는, 사람답게 살고 남에게 흉 안 잡히고 살자는, 상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부모도 친정부모도 저세상에 간 지 오래고 두 아들은 결혼은커녕 방 뺄 생각도 없다. 이번 명절이 가뿐하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마음만 바꾸어 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 싶었다. 내가 하면 하는 거고 안 할 생각이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었다.
 
젊은 여자들은 결혼은 좋으나 시집가는 것이 싫다고 하고 골치 아파서 고아랑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는 세상이다. 명절 뒤끝이 긴 며느리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딸이었던 시어머니들이 세상을 바꾸는 세상을 꿈꿔 본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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