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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내겐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와 같은 친구가 하나 있다. 세살배기 아들을 둔 그가 최근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희처럼 소득이 낮은 가정은 요즘엔 보육료 전액 지원해 준답니다. 저도 요즘 아이를 종일반에 맡기고 일 나가는걸요. 어린이집 환경은 아주 열악하고요. 허나 아이를 맡길 방법이 달리 없어서 찍소리 못하고 보내지요. 또 정부에서 주는 혜택 중에 인지발달향상 서비스라는 바우처가 있어요. 10개월 동안 국가에서 2만천원 지원해주고 본인부담은 2만원이에요.

 

우리나라 유수의 학습지 빨간펜, 씽크빅, 구몬 등에서 골라 신청하면 집으로 학습지 선생님이 오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무슨 실적이랑 연관이 있나 봐요. 너무 급하게 나가시고 교재도 별 내용 없구요. 결국엔 이 와중에 학습지 회사 배만 불려줬구나 한숨이 나와요. 그 예산을 좀더 잘 쓰면 좋을 텐데, 이런 건 엄마들과 의논하고 하면 안 되나 싶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아이, 낳으십시오. 제가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던 텔레비전 속 장면을 기억한다. 한국은 여전히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계속 기발한 출산장려책을 내놓고 있다. 출산장려금, 시간제 영유아실, 육아정보센터, 영유아 플라자, 가정보육사, 산모도우미, 경력단절여성 등 생소한 단어들도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이 덕에 여성들 직장도 늘었다.

 

 그러나 군사작전을 펼치듯 만든 정책의 효과는 의심스럽다. 가정보육사가 우는 아기를 “죽어라, 죽어라” 하며 마구 흔들어대는 장면이 폐쇄회로 화면에 잡혀 뉴스거리가 되었다. 나라에서 하니까 당연히 믿고 맡겼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부모는 땅을 쳤다. 며칠 전 이웃집 애엄마가 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동네 유아정보센터에 갔다가 그 공간은 만 한살 반 이상이 쓸 수 있는 장난감들이 구비되어 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했다. 보호자가 데리고 가서 놀겠다는데 빈 공간을 두고 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지 참 이해할 수 없다. 나의 ‘베를린 천사’가 지적했듯 육아 지원이 결국 시장의 배만 불리거나 보육계 직장을 늘리는 효과에 그칠까 걱정된다.

아기는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자란다. 육아는 부담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경험

 

이다. 그런 면에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그것은 호르몬 문제라고 하지만 실은 엄마가 행복할 수 없는 조건 때문이다. 돈이 매개되지 않은 호혜의 관계망 안에서 아기는 자라야 한다. 그런데 홀로 아기를 키워야 하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사회에서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젖을 먹이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게 된다고 한다. 사랑의 눈길을 맞추고 느긋하게 아기에게 젖을 먹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임신, 출산의 고통과 환희, 아기와의 비언어적 소통, 지속적인 관찰 학습을 통해 엄마는 지혜롭고 자상한 인간으로 성숙해진다. 바로 그 성숙한 모성적 소통과 경영능력이 지금껏 ‘돌봄 결핍’의 시장 사회를 받쳐준 버팀목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주도하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가슴/돌봄’의 영역이 건재했기에 돌아가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들이 우울해지고 불안해졌다. ‘보이지 않는 가슴’의 세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육아를 즐거운 경험으로 되살리는 일, 불가능할까? 삶을 보는 시각을 바꾸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놀이터와 동네 사랑방에 모여 아기를 키우는 일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과 활동을 선배 어머니들과 함께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영글어가도록 하면 된다.

 

다시 직장에 다니고자 하는 어머니들에게는 육아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하여 일터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게 하면 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돌봄과 상생의 감각을 가진 ‘아줌마들’을 공채해서 육아정책특별반을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모성 경험’을 제대로 살려내는 국가만이 후기 근대의 복합적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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