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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에서 통곡하는 남자....

2012.05.23 13:44

약초궁주 조회 수:1118 추천:91

덕수궁 돌담길에서 통곡하던 50대 남자, 왜?
[현장] 고 노무현 대통령 3주기... 그를 그리는 한 남자의 ‘속죄와 몸부림’
정운현 기자 |(인터넷 신문 - 진실의길-에서 퍼왔음)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해질 무렵, 거리로 나섰습니다.
운동화 차림에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러 갈 참이었습니다.
전시회장을 찾았다가 헛걸음을 하고는 시청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그곳에서 ‘3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린다고 해서였습니다.
거길 가면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날(19일, 토) 시청광장은 ‘볼거리’가 참으로 많더군요.
5.18 사진전에다 노 대통령 사진도 처음 보는 게 여럿 있었습니다.
당일 ‘플래시몹’ 용으로 제작한 노 대통령 마스크를 둘 얻은 다음
‘사람사는 세상’ 글귀와 노 대통령 얼굴을 새긴 판화도 한 장 얻었습니다.
잠시 뒤 태평로 거리를 메운 쌍용차 해고자 복직투쟁 집회를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건너편 덕수궁 입구 담벼락에 마련된 쌍용차 희생자 빈소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벌써 덕수궁 대한문 앞에 와 있었습니다.
예년 이맘때쯤이면 이곳 대한문 앞에는 조촐한 빈소가 차려지곤 했지요.
그 앞으론 문상객들이 줄지어 서 있고 시민상주들이 문상을 받곤 했었구요.
그런데 이날 대한문 앞 작은 광장은 한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새 노무현을 다 잊은 것인가요?
아니면 시청광장 추모문화제로 때우자는 것인가요?

3년 전, 추모기간 내내 덕수궁 돌담길 담벼락은,
노란 리본과 추모객들의 행렬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도 하고 또 설레기도 했습니다.
대한문 앞 광장을 지나 모퉁이로 들어서는 순간 그 꿈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곳엔 무심한 행인들만 바삐 오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50여 미터를 가다가 이상한 물체를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덕수궁 벽을 향해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물체는 가까이 갈수록 점점 분명하게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판넬 사진과 조촐한 ‘젯상’, 그 양옆으로 초가 켜져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죄인(罪人)이라도 된 듯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술을 한 잔 올리고 싶다’며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올리고는 그가 권하는 잔을 받았습니다.
그 남자의 눈은 부어 있었습니다.
제법 운 듯 했습니다.
잠시 말동무라도 돼줘야겠기에 깔판 귀퉁이에 걸터앉았습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 좀 됐습니다.
젯상은 누가 차렸습니까?
제가요.


 
젯상을 둘러보았습니다. 제법 젯상 흉내를 냈더군요.
사진 밑으로 윗둥을 깎은 배 하나, 감귤 하나.
그리고 그 중간엔 해장국을 한 그릇 놨더군요.
그 앞에는 강정과 약과, 그리고 젓가락을 꽂은 단호박이 한 그릇 놓여 있었습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두 가지가 제사 음식으론 좀 낯설어서 물어봤습니다.
해장국은 왜요?
노무현 대통령님이 평소 좋아하셨습니다.
단호박도요?
네.

직접 만들었습니까?
네, 두 시간동안 삶았습니다.
우린 막걸리를 다시 한 잔씩 나눠 마셨습니다.
바로 앞엔 말로보 레드와 디스 담배가 놓여 있었습니다.
디스도 그래서 샀나요?
예.
뒤늦게 보니 젯상 앞머리에 쑥떡도 있었는데 그것도 그래서 준비했다더군요.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다 싶었습니다.

 

도착할 때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그 즈음 곡명이 바뀌었습니다.
떠나가는 배로.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 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그는 노랫소리에 다시 흐느꼈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습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음악하는 사람입니다.
노래요?
음악방송 일을 합니다.
조그마한 마이크에 연결된 물체에는 이런 노래가 수십 곡 입력돼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소주로 한 잔씩 나눠 마셨습니다.

▲ 술 한 잔을 올리고 싶다고 말을 붙여 눌러앉아서는 두어 시간 그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남자의 성은 이씨, 나이는 저와 동갑(54세)이었습니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강도사까지 지냈으며 한 때 목회자를 꿈꿨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아버지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이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명색이 장로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비극의 이웃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는 그 후로 교회를 끊었다고 했습니다.

노사모 회원이었습니까?
예.
그럼 49제 때도 여길 지켰겠군요.
예... 어느 날 한 청년이 지나가다가 영정도 없이 초라한 빈소를 보고는 통곡을 하던 일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밤 경찰이 빈소를 지키던 사람들을 빨갱이라며 전부 잡아갔습니다. 그날 우리는 다같이 울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은 전부 방관자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분이 돌아가셨는데... 피를 토할 일입니다. 대체 이 분이 뭘 잘못 했나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그는 자신이 가롯 유다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지난 대선 때 경제를 살려준대서 이명박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현 정권 출범 후 검찰수사가 시작됐고 그 일로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걸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 때 지은 죄로 자신은 저기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엔 갈 자격이 없다며,
그래서 이곳 담벼락 밑에서 속죄하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잠시 대한문 앞엘 나가봤더니 시청광장에서 헤비메탈과 요란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느새 자리 잡고 앉은 지 한 시간가량 지나서 주위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그는 가방을 뒤져 작은 후레쉬를 하나 꺼내 벽에 걸린 오른쪽 사진을 비췄습니다.
동그랗고 환한 불빛 안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그가 볼일을 잠시 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떠 내가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남녀 가운데 남자가 우두커니 젯상을 바라보고 서 있길래
술 한 잔 치겠냐고 했더니 그러마 해서 제가 한 잔 따라 주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왜 좋아합니까?
청문회 이후로 노무현을 알고 나서 저의 사대주의를 떨쳐버렸습니다.
사대주의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정신 못 차리고 큰 나라에 맹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노 대통령은 완벽했다고 생각하세요?
그 분도 인간인데 허물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런 분은 또 없습니다. (이라크) 파병한 것도 그분이 과연 좋아서 했겠습니까? 전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한 곡을 십여 번씩 반복해서 틀었는데 새로 바뀌었습니다.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
님주신 밤에 씨뿌렸네/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낙엽지듯 가시었나...
9시가 넘어 나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는 인사를 하겠다며 일어섰는데 몸시 비틀거렸습니다.
겨우 주저앉혔는데 물가에 아이를 남겨둔 양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늦지 말고 더 이상 술 먹지 말고 짐 잘 챙겨서 가란 말만 던지고 돌아섰습니다.


▲ 엎드려 울고 있는 그를 혼자 두고 떠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3주기인 23일날 다시 오마고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발길을 돌렸습니다.


등 뒤에서 그의 흐느끼는 소리는 곧 통곡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그의 모습이 점점 작아져 보였습니다.
내일, 퇴근길에 덕수궁 담벼락으로 다시 그를 만나러 가볼 작정입니다.
이번엔 막걸리 한 병 사고 깔개용 신문지도 한 장 들고 가서
제법 밤 늦도록 그와 못다 한 얘기를 나누다가 올까 합니다.
내일 또 거기서 울고 있을 그의 등도 좀 두드려 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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