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이동 될수 있습니다
두 시간동안의 충격-이문재 시인.2012.05.19 15:39 녹색세상]두 시간 동안의 ‘충격’
꽃들이 문란해 보였다. 내 기억에 따르면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 벚꽃 순으로 꽃이 피었다. 그 다음에 철쭉, 영산홍, 모란, 작약. 그런데 올봄은 달랐다. 산수유 묽은 노랑이 번지는가 싶더니 진달래에서 벚꽃까지 일제히 만개했다. 무슨 궐기대회 같았다. 꽃들의 시위는 캠퍼스의 채광량을 두 배 이상 올려놓았다. 눈이 부셨다. 양산을 받쳐 든 지역 주민들까지 몰려들었다. 교정의 벚꽃놀이가 절정을 이루던 날 오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
강의실로 들어오는 학생들도 풀이 죽어 있었다. 오후 3시부터 시작하는 세 시간짜리 글쓰기 수업. 게다가 신입생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최소 12년 이상 틀에 박힌 삶을 살아온 1학년 학생에게 첫 봄학기는 ‘기쁜 혼돈’의 시기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 생애 최초의 해방감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제 막 성년식을 통과하는 청춘들에게 저 무지막지한 꽃들의 폭발은 무엇일까. 글쓰기의 전략과 기술보다 봄을 느끼는 능력이 더 중요해 보였다. 꽃들의 축제 앞에서 무덤덤한 젊은이가 어떻게 글을 쓴단 말인가. 봄꽃 앞에서 들뜨지 않는 청춘이 어떻게 새로운 삶을 꿈꾼단 말인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 어두운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은 교양교육의 목표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단, 조건이 있다.”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던 학생들이 멈칫했다. 우선, 캠퍼스에서 ‘나만의 장소’를 찾아라. 둘째, 혼자 걸어다녀라. 셋째, 온몸으로 봄을 느껴라. 그리고 휴대전화를 놓고 나가라. 혹시나 싶어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학생 수와 휴대전화 수가 동일했다. 나는 두 시간 동안 혼자서 텅 빈 강의실을 지켰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두 시간 만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봄꽃에 눈이 팔려 호젓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허전하다 못해 불안할 것이었다. 지난 6~7년 동안 단 한순간도 휴대전화를 몸에서 떼지 않아온 신입생들에게 접속이 불가능한 봄날 오후의 두 시간은 ‘백년 동안의 고독’ 혹은 ‘백년 만의 외출’일 것이었다. 오후 5시, 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로 귀환했다. 혼자 걸어다닌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 혼자 있을 장소를 찾아냈다. 어떤 학생은 연못가에 앉아 졸기도 했다. 며칠 뒤 받아든 학생들의 글은 예상 밖이었다. 젊은이들의 감수성이 온전하게 살아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갑갑했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지만, 그래서 꽃과 나무, 바람과 햇빛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흙냄새를 맡고 나뭇잎을 만지고 새소리를 듣는 대신 사진 찍기에 바빴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난생처음 혼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 학생도 있었다. 나는 시간보다 장소를 우선한다. 좋은 장소가 있어야 좋은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장소가 없는 시간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장소가 없는 시간은 장소를 찾아 헤매는 ‘나쁜 시간’이다. 신입생이 ‘나만의 장소’를 찾아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각인했다면 그의 대학생활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환원시키며 스스로를 탈진시키는 ‘성과사회의 피로한 주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 청춘들뿐이랴. 건축가 김중업이 말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혼자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각박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혼자 울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중년 남성들, 운전석과 화장실 외에는 혼자만의 장소가 없는 남성들이 부지기수다. 좋은 장소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커피숍이나 공공도서관, 동네 서점, 공원은 물론 교외로 나가는 기차간도 ‘나만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아니, 스마트폰의 전원을 끌 수 있다면, 웬만한 곳이 다 ‘나를 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
만지막거림증. 안달증...손전화 부작용들이다.
어딘가에서 해올 접속을 기다리는 외로움증이 깊다.
나부터. 전화끄고 걸어야겠다
수시로띵똥하는 문자에 연연하지 말고서리...... 댓글 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