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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강제윤 섬떠돌이 시인-경향신문 만인보펌2012.05.10 11:03 [김석종의 만인보]500개 섬 유랑하는 ‘떠돌이 시인’ 강제윤
강제윤이 신안 앞바다 임자도 어판장에서 갖고 올라온 민어는 무려 ‘십키로’(10㎏)짜리였다. 청도 명물인 옻막걸리도 택배로 올라왔다. 그는 생선 중의 으뜸이며 복달임 음식으로 일품이라는 여름 민어(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하품이라고 그가 말했다)를 도마에 올려놓고 쓰윽쓱 쓰윽쓱 회를 떴다(그 칼놀림이 얼마나 능숙하던지 사람들은 떠돌이 생활 그만두고 횟집이나 차리라고 부추겼다). 민어전을 부치고, 껍질은 데치고, 뼈와 머리는 맑게 탕을 끓였다. 하여튼 오지게 맛난 민어 안주에, 달콤쌉싸래한 옻막걸리 탁배기 흥취로 다들 유쾌했다. 알고 보니 청년시절 강제윤은 좀 격렬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서 하는 작은 중국음식점 배달통을 들고 뛰어다녔다. 고1 때 자살기도, 권고 자퇴, 출가와 환속, 검정고시 대학 입학,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으로 3년2개월의 옥살이까지 했단다. 그 강제윤이 도시생활을 접고 불쑥 고향인 보길도로 들어간 게 1998년이다.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세연정 옆에다 ‘동천다려’라는 돌집과 흙집을 지었다. 작업실, 찻집, 민박의 겸사겸사로 사람들에게 차와 술과 음악을 내주며 혼자 살았다(물론 지금도 혼자 산다). 아니다. 강아지 봉순이, 꺽정이, 부용이, 그리고 염소들과 함께 살았다. 33일의 독하디 독한 단식으로 보길도 자연하천 훼손과 댐 건설을 막아낸 일도 있다. 들판에 지천인 쑥을 뜯어다 국을 끓이고, 뻘뚝(보리수)을 따다 술을 담그고, 인동차를 만들고, 푸성귀를 심고 거둬 김치를 담가 먹던 시절이다. 보길도 밤하늘의 총총총한 별빛 아래 아궁이 불을 때며 시를 썼고, ‘보길도 시인’으로 꽤 유명세를 탔다. 그럼에도 평생 떠돌며 살고 싶은 열망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8년 만에 훌쩍 고향을 떠나 바다 저 멀리 섬으로 떠나는 배를 탄다. 변방의 섬에서 섬으로, 지독한 행려의 생활이 시작된 거였다. 지심도, 욕지도, 연화도, 우도, 매물도, 여서도, 덕우도, 자월도, 이작도, 임자도, 어청도, 마라도, 추봉도, 비진도, 불음도, 석모도, 거문도, 외연도…. 처음에는 10년 예정으로 길을 떠났는데, 계획을 수정했다. 이제 ‘겨우’ 섬의 절반을 돌았을 뿐이고, 바쁠 것도 없으니 천천히 다니겠단다. 강제윤은 노트북 컴퓨터와 메모장, 한두 권의 책, 속옷을 넣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섬에 간다. 그러고는 마냥 걷는다. 그렇다고 풍류행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섬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이 있다. 난개발, 연륙교 같은 것들로 사라질 섬의 풍경, 오래된 삶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섬에 간다”고. 앞서 얘기한 그의 ‘전국구’ 친화력은 섬에서 더 빛난다. 억센 뱃사람들과 금방 흉허물 없이 친해져서 술대작을 하고, 배를 얻어 탄다. 낙심천만한 섬살이에 지친 외로운 노인네들은 능청맞게 농을 거는 떠돌이를 뭍에서 막 돌아온 자식처럼 여긴다. 나그네가 이쯤은 돼야 수월하게 얻어먹고 얻어자는 거다. 그러니 ‘쌔가 빠지도록’ 키워 놓은 자식들은 품을 떠나고, 지아비까지 앞세우고도 고달픈 밭일, 갯일을 놓지 못하고 사는 어머니들을 숱하게도 만났다. “내가 세상 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은 너끈히 나올껴.” “나 세상 산 이야기를 어디다 하고 죽으까!” <어머니전>에는 ‘세상 모든 자식들의 고향’이며, 한 말씀으로 천길 가르침을 주는 ‘삶의 고수’들인 어머니들의 서사가 소복이 담겼다. “그물코도 삼천코면 걸릴 날 있다고 차분히 맘먹고 사시오.” “여자는 철들면 시집가는디, 사내놈은 철들면 죽어뿌러!”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욕심이 생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져유. 죽으란 법은 없어유.” “집이 징글징글하게 이뻐요. 비 오면 새고 하늘이 보이고.” “천지가 만지가 꽃이요.” “술로 아깐 세월 탕진하지 마시오. 청춘 금방 가버려. 애들도 늙구만.”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참 깨단하다. 청산도에 사는 할머니는 신랑이 밤에 급하게 새색시 데려다놓고 아침에 군대 가버렸다. “즈그 어멈 밥해 주라고.” 그 남편이 평생 고생고생만 시키다가 먼저 가버려 끝내 결혼식도 못했다. 10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해 놓은 나무를 여전히 아껴 때며 혼자 사는 할멈도 있다. 한 어머니는 독초를 갈아 사약을 만든다. “풍 오고 치매 오고 그런 거 나도 모른 순간에 와빌더라고. 그럴 때는 얼릉 이걸 먹고 죽어 버려야제. 그래야 자식 안 성가시제.” 보태고 뺄 것도 없이 애틋하고, 쓸쓸하고, 구수하고, 흥겹고, 따끔한 ‘어머니 열전’이다. 읽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 가슴이 짠했다. 이제 뭍에서 만나도 그에게서 척척한 갯벌 냄새,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강제윤 스스로 하나의 섬이 된 걸까. 그 강제윤이 요즘 한 인터넷 언론사의 ‘섬학교’ 교장이 돼서 한 달에 한 번씩 사람들을 섬으로 데리고 다닌다. 나그네는 섬에서도 쉬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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