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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화화 대상은 ‘권력’이었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성욕감퇴제·코피로 놀림 대상이
된 건 다름아닌 전직 국회의원…
탈권력·탈권위의 일관된 태도다
불쾌하다면 무시하면 될 일이다

 

반쪽 진보를 수용할 수 없다며 <나꼼수> 지지 철회를 선언한 진보적 여성카페를 향해 드는 느낌은 탄식에 가깝다. ‘참 잔인하구나….’

 

비키니 운운은 <나꼼수> 멤버들이 한갓지게 놀다가 터진 돌발사태가 아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감옥에 갇힌 동료의 구명운동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다. 그들의 강령이 ‘쫄지 마!’이다. 속으로 억장이 무너졌을 그들은 더 가열차게 찧고 까불고 낄낄거렸다.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건 감옥에 가둔 자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므로. 죽어도 지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꼼수는 지지자들을 향해 ‘투쟁해 달라’ 투로 요구하지 않는 대신 ‘감옥으로 비키니 사진을 보내셔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비키니 시위? 그건 정리됐다. 호재를 만난 듯 기사를 쏟아내는 극우매체들조차 비키니 착용은 문제가 아니라며 짐짓 여성주의적 시각을 과시해 보였다. 문제의 지점은 ‘코피’ ‘성욕감퇴제 복용’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말이 여성을 비하한 것이란 말인가. <나꼼수>의 언어는 최고권력에 대한 조롱과 스스로에 대한 자학적 비하, 유머 코드로 설정한 과장된 자아도취 사이를 오간다. 감옥에서 독수공방하는 사내가 성욕을 억제할 수 없어 감퇴제를 먹는다는 둥, 비키니 사진을 보고 흥분해서 코피를 흘릴지 모른다는 둥, 이런 건 사내들끼리의 자기 희화화다. 그렇게 성적 놀림을 당하는 사내가 전직 국회의원이다. 탈권력·탈권위의 일관된 태도다.

 

 

비키니 시위자를 성적 대상물로 삼았다고 문제 삼는다. 혹시 이성에게 성적 본능을 느끼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일까. 아, 그런 탈레반은 정말로 무섭다. 그런 순결주의, 그런 엄숙주의여야 반쪽이 아닌 온전한 진보가 된다면 진보의 대열에 설 자신이 없다. 양성평등 의식을 소유하려면 성에 무관심하거나 하염없이 진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누군가 나를 종북좌파 빨갱이라고 부른다면 퍽 재미있을 것 같다.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어이없는 웃음이 터질 것이고 상대에 대한 연민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성이 나를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마초라고 낙인찍으면 움찔할 것 같다. 의도적으로 마초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으나 부지불식간에 그런 언행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성을 존대하는 평범한 한국의 어머니에게서 키워졌고 남자 중·고교를 다니면서 철없이 막가는 분위기에 젖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 의식을 포함한 진보적 관점은 학습을 통해 습득된 것이지만 지배와 억압의 관계는 다분히 생득적이고 관습적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항상 조심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앞뒤를 캐봐도 <나꼼수>들에게서 성희롱·성차별의 의도를 찾아낼 길이 없다. 그들은 권력자도 주류도 아니며 동료는 수감되었고 각종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중이고 언제 잡혀갈지 모를 상황에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다. 속에서 피눈물이 나도 그들은 낄낄거리고 악악대는 것으로 권력에 맞선다. 불쾌감을 느낀다는 엄숙주의자들에게 굴복해서 위선적인 혹은 위악적인 거짓 사과를 한다면 <나꼼수>가 더 이상 온전한 <나꼼수>일 수 있겠는가. 다양한 진보의 대오에서 <나꼼수>는 ‘지하실’을 담당하는 한 축일 뿐이다. 그들의 언행이 불쾌하다면 외면하고 무시하면 될 일이다. 부디 총수, 누나전문, 돼지 일당이 주눅들지 말기를 바란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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