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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시남과...늦깍이 이순신.2012.02.01 11:26
이번 통영은 강의도 목적이지만. 내 자신의 공부를 위해서 갔다.
시티투어가 아침 8시반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토욜 밤에 도착하는 무리한 일정.
까닭은? 통영시티투어를 진행하는 박정우 샘ㄴ때문이다.
시에서 운영하는것이 아니고 통영과 이순신에 미쳐서 엄청난 공부를 하면서 해설을 하는 박샘.
덕분에, 한산섬 제승당과 한산대첩과 거북선 임진왜란 역사와 이순신에 대해. 공부마이했다.
난중일기 기록에 보면~~ 한산대첩- 음력 7월이니까네 한여름. 아침 일곱시부터. 저녁 다섯시까지 하루종일 싸웠다.
배밑창에서 노젓는 수부할배들 갑판에서 싸우는 아재들/. 북치는 장수는 호령하는 장군은 물 한모금. 주먹밥 한덩이라도 먹었을까
물리친 적은 어림잡아 육칠천명, 우리쪽 사망자는 겨우 19명.
이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순신과 절대로 싸우지 말라는 문서로 된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길게 옮기지 못하나.
임진왜란에 졌으면. 식민시대는 400년으로 거술러 올라가야 했으리라.
이런 역사적 의미와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일본해군 역사가들이 더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제사도 지낸단다.
한산대첩 그림과 셜명을 들으며 나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주책맞게도 잘울기도 하지만...
...나중에 거북선에 들어가보니 장군이 무과에 합격했다는 증서가 남아있다.
합격증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이순신은 그 시절 중년의 나이인 32세에 무과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고 병에 겨우 4등으로 붙었다.
그후 20여년간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쳤다. 백성걱정에 나라근심에 괴롭고 신음하며 고민하며 싸우고 또 싸우다가....
~~얼마전 고시 삼관왕에 빛나는 어느 정치인. 잘나간다. 양아버지처럼 모시던 그분이 영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3년전의 돈봉투 사건을 고자질 까지 해가며 말을 갈아탄다. 이번엔 할매쪽으로 ~~~앞으로도 잘나가서 잘먹구 잘살았다는 전설이 될것같다.
잠깐 옆길로 샜다가 돌아오자면.
32세 늦깍이라도 아무 걱정 말라는것.!!!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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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쭐한 자만심으로 넘치는 자신감으로
두루 보지 못하고 질주하면 탈내기 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