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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콘서트]‘뭣도 없어도’ 서로 사랑하라
김현진 | 에세이스트

 

(경향신문에서 퍼왔네. 현진씨의 근래 모습이 궁금한 뇨성들은

사진 참조 ㅋㅋ)

 

 

지난번 이 코너에 글 쓸 차례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죄다 땅값 잘 아는 사람들로 싸잡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보수 기독교 교단의 목사님이셨던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먹고사는 걱정을 하면 늘 네가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 네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 네가 신앙 안에 똑바로 서면 그런 문제는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신다, 이런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아버지의 무능을 그런 말로 덮으시네, 되는 말을 해야지 하면서 어이없어 하고, 맞서다 보니 괜히 부녀 사이도 덩달아 상하곤 했다.

네 탓 네 탓 다 네 탓이로소이다, 하는 신자유주의의 주문과 아버지 말씀이 너무 닮아 있어서 더더욱 속이 상하고 반발심이 생겼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할 때 떠오른 것은 뜻밖에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며칠 전 첫눈 내린 날, 살며시 녹아 버리는 눈을 보니 폭설이 왔을 때 아버지를 도와 교회 앞에서 눈 치우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교회 앞만 치우는 게 아니라 아버지는 온 동네에 자동차가 제대로 다니고 아이들이 다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도 힘들여 길을 뚫어 놓으시곤 했다.

“요 앞만 치우면 되지 뭐하러 저기까지 나가서 눈을 치워요” 하면 아버지는 이런 건 다 자기 집앞만 치우니까 아무도 안 하지, 이런 일을 목사가 해야 은혜가 된다, 하며 삽과 빗자루를 놓으시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눈 오지 않을 때도 새벽기도를 마치면 빗자루로 교회 앞길을 쓰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빗자루로 길바닥을 쓸면서 교회가 있는 동네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시곤 했다.

교회가 있는 동네 땅을 죄다 사 버리는 능력 좋은 예수쟁이들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그저 눈 치우고 바닥을 쓰셨다. 적어도 그런 면은 땅값에 명민한 예수쟁이들보다 그런 거 모르는 아버지가 좋았다. 한 손에 빗자루, 한 손에 삽을 든 아버지는 눈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빨리 녹아 버릴 줄도 차마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네가 기도가 부족해서, 뭐 이런 잔소리 안 듣게 되니 성서를 전보다 훨씬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수가 서로 사랑하라고 이르면서 왜 이것을 굳이 새 계명이라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즘 늘 돈이 없어도, 가진 게 하나도 없어도, 뭣도 없어도, 그런 사람 죽으라고 떠미는 신자유주의와 어찌 싸우나 늘 고민하던 중 더욱 새롭게 들렸다. 이거야말로 혁명이었다. 왜냐하면 ‘뭣도 없어도’ 서로 사랑하라, 였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서로 사랑하라, 굶어죽을 지경이라도 서로 사랑하라, 잘난 것 없어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얼어 죽을 먹고사느라 미치겠는데 싶은 순간에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적어도 예수쟁이라면 그런 사랑은 할 수 있어야 하겠구나 싶으면서 짓궂은 생각도 들었다.

교회 근처 땅 사는 것만 관심인 사람들에게는 별것도 없는 것들이 서로 사랑하는 걸 보면 약이 올라 미치겠구나 싶어 킥킥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아니 이것들이 쥐뿔도 없는 것들이 뭐가 예쁘다고 서로 사랑하고 난리야, 받을 돈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사랑하고 난리야, 이렇게 보일 테니 절대 안 가르쳐주고 열심히 사랑하면 참 재미있겠다 하면서 1년 전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얼굴을 떠올렸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야, 라고 병석에서 힘주어 말씀하시곤 했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먼저 이 새 계명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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