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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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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머리가 나빠

2011.09.16 13:34

랄라 조회 수:1057 추천:98

1~100까지 수를 가지고 노는 과정이 1학년 2학기부터 시작되었다.

일, 이, 삼, 사....,로도 숫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하나, 둘, 셋, 넷....., 아흔여덟, 아흔아홉, 백으로도 숫자를 읽어야 한다. 또한 각 숫자간의 규칙도 발견해내야 하고. 아들녀석에겐 너무 벅차다. 암튼 수업시간에 들어가보면 대한민국 현재 1학년들은 모두 천재들같다. 어쩜 저렇게들 수학을 다 잘할 수 있는지.

조금 다그치고 체근질하면 또래들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었다.

1~9까지의 수를 더하고, 빼기를 할때 덧셈은 곧잘하는데 뺄셈이 영 안되는데 어찌나 속이 터지던지 아들녀석에게 책망하는 말을 너무 많이 해버린것 같다. 결과적으로 아들녀석은 수학은 너무 재미없고 어렵고 또 자기는 머리가 나빠 도저히 수학을 할 수 없는 아이라는 인상만 심어준 셈이다.

그것이 결국 수업시간에 터지고 말았다. 그래도 친구들을 따라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녀석이 짝이 문제를 다 풀고 다음페이지로 넘겨버리자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ㅇㅇ는 머리가 나빠. 수학은 너무 어려워."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다. 녀석이 너무 서럽게 울어서. 녀석은 엉엉 울고 교실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나름 아들녀석을 무시하고 수업을 이끌려 했던 담임샘도 호흡을 멈췄다.

녀석이 절망적인 울음에 갑자기 내 눈에서도 또르륵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주착없는 눈물을 그만 옆 짝꿍에게도 앞뒤 아이들에게도 들키고 만다.

아!

이 좌절감 결국 내가 심어주었구나. 능력만큼 천천히 풀어도 된다고 차근차근 구체물을 충분히 만질 기회도 주지 않고 결국 아이들 따라잡을 욕심에 녀석을 채찍질만 하고.

결국 자기는 머리가 나빠서 할 수 없는 아이라고 내가 만들어 놓았구나.

그날 벼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래 엄마랑 같이하자. 도와줄께. 같이 풀어도 돼."

아들은 진정이 되지 않는지 오랫동안 울었다.

쉬는시간 아이들이 아들과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ㅇㅇ 왜 울어요? 아줌마!"

나는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했다.

누가 이 아이에게 머리나쁘다고 인식시켜 주었는가?

담임쌤이 그랬을리가 만문이고 이 천진한 반 친구들이 그랬을리가 없고.

나는 내 죄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차마 나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친구들처럼 빨리 문제를 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서 속상하대. 누구누구야! 답을 보여줘도 돼. 수업시간에는 시험보는게 아니니까 보고 하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한두문제는 스스로 풀게 도와주고. 못 따라가는 것은 답을 보게 해줘도돼."

그 순간 나는 아들의 특수교사로 돌아가 있었다.

못 따라가는 것은 나랑 천천히 해도 된다. 경쟁에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

친구를 거울처럼 따라하고 모방하고 그것만으로도 아들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모든 것들이 하향조정이 되었다.

받아쓰기도, 수학도, 줄넘기도.....,

난 약초샘이 그 좋아하는 70점만 하자. 60점만 하자. 그렇게 아들녀석에 대한 기대치를 그날 진심으로 하향조정하게 되었다.

뭐 가끔 0점을 맞아오면 어떤가!

도와주면 되지.

남들과는 상관없이.

어제와 다른 오늘로 일신우일신 하면서 지금 내 아들은 발달해가고 있지 않은가!

부끄럽고 어리석은 엄마는 이렇게 일일이 깨져가면서 아들과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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