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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돌아가는 길~

2011.06.20 10:33

행복한동행 조회 수:1212 추천:212

굽이 돌아가는 길

 

올곧게 뻗은 나무들 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 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 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으로

많은 지성인들을 울게 했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

20대에 수배길 떠난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7년째 수감중이던 97년에 쓴 옥중시집을

오늘 아침 다시 읽어 보았다.

나는 여자가 왜 이리 그리운가 하는 시에서 그는

"여자가 남자 보다 키가 작고 힘이 약한 것은

자궁과 젖가슴을 집중적으로 발육시키기 위해서"라고 읊기도 했다.

"다음 생명을 낳아 기르기 위해

키 크는 성장도 싸우는 강함도 멈춰주는 거라고,

미래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

그래서 여자는 속이 깊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강인한 것"이라며

"미래를 위해 기꺼이 키 작아지고 힘 약해지는 것"이라고 노래하는 그의 시가

"불덩이 시대의 사랑을 안고 오늘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 사람아

자기 성장의 강한 힘을 안으로 들이 부어 희망 하나 키워가는 사람아

미래를 낳고 기르기 위해 기꺼이 작고 낮아지는 사람아" 라는

자기 연민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내게는 충분히 의미있는 독백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새롭다.

 

놀이 공원에 갔다가

무허가시설 놀이기구에서 당한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삼년째 끌어 안고

보상문제로 지자체와

힘겨운 법정싸움을 하는 지인의 친척이 있는데

법정에 제출할 부모의 탄원서가 필요한데

좀 써줄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이름있는 글꾼도 아닌 내가

정말 부모의 아픔과 억울함을 잘써낼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꼭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많은 억울함을 시로 써내곤 했던

그의 시집을 꺼내 읽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가슴 뿌듯한 성찰을 만난 기쁜 아침이 되었다.

 

 

상처 받고 있다는 건 네가 살아있다는 것

상처 받고 있다는 건 네가 사랑한다는 것

 

순결한 영혼의 상처를 지닌 자여

상처 난 빛의 가슴을 가진 자여

 

이 아픔이 나 하나의 상처가 아니라면

이 슬픔이 나 하나의 좌절이 아니라면

 

                   그대,

            상처가 희망이다

 

                                                                     -박노해, 상처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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