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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본색, <써니>의 힘-유지나 칼럼

2011.05.12 00:01

약초궁주 조회 수:1486 추천:113

여자본색,<써니>의 힘
  글쓴이 : 유지나     날짜 : 2011-05-10 15:50    

나는 늘 궁금한 게 있다. <마이 웨이>같은 노래를 들을 때면 더욱 그렇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돌아보는 인생 여정은,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온 충만한 나의 길을 찬미한다.

 “난 모든 것에 정면으로 맞서며 늘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행동했지”라며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말년에 들어선 인간은 멋지다.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이 노래를 영어로 부르는 노래방 장면은 아이러니 효과마저 보이며 뭉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조폭에게도 ‘나의 길 가기’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다. 누구나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라는 마스크를 쓰고 살지만, 결국 인간은 맨 얼굴로 자신의 삶을 직시하는 고독한 존재가 아니던가.

여자들은 왜 <마이 웨이>를 부르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데 여자들은 왜 <마이 웨이>를 부르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긍금증이 든다. 세상이 말하는 여자의 길, 누군가의 딸-아내-어머니-며느리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판 삼종지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저 자기 자신으로 세상과 직면하는 삶은 여자에겐 불가능한 것일까?

문정희님의 시처럼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한때 자신의 본색에 걸맞은 꿈을 가졌던 그 많던 여학생들이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사느라 아줌마라는 무리 속에 묻혀 버리고 만 것일까? 나의 길이 곧 정해진 여자의 길이라는 집단최면에 빠진 것일까? <마이 웨이>를 부를 주제가 못되는 게 여자의 본색일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라는 속설, 어버이날이면 쏟아져 나오는 헌신적인 모성 찬양론 속에 개봉한 <써니>는 그런 궁금증을 돌파하며 답을 준다. 80년대 고등학생이었던 7공주파 ‘써니’가 25년 만에 친구의 죽음을 앞두고 재회한다.

먹고 살 만하지만 아내와 엄마란 신분으로 맥없이 살아가던 나미는 화가가 꿈이었다. 쌍꺼풀 만들기에 매진했던 장미는 실적 부진한 보험설계사로 고달픈 삶에 치여 산다.

입에 욕을 물고 살던 활력소녀 진희는 성형 여왕이자 부자 사모님으로 변신했다. 문학소녀 금옥은 시집살이에 눌려 눈치보기 9단이 되버렸다. 미스코리아를 꿈꾸던 국희는 술집 여자로 전락하여 알콜중독자가 되버렸다.

 냉정한 얼음공주 수지는 행방불명이다. ‘써니’의 대장이었던 춘화는 독신 사장으로 성공했지만 시한부 암말기 환자이다.

25년간 저마다의 이유로, 아마 여자의 길을 가느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채 살았던 여자들이 소녀시절에 접속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전환점에 들어선다. 우정의 힘이다. ‘여자를 살리는 건 여자친구’라는 당연한 명제가 신나는 디스코 음악에 실려 웃고 울리며 인생 역전 드라마를 짜 나간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전환점에서 우정과 음악이             

특히 음악에 딱 맞는 이미지로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강형철 감독의 연출력은 기차게 가슴을 후려친다. 이를테면 악을 쓰며 고통을 겪던 춘화의 병실에 들어와 조심스레 사진을 보는 나미 뒤에서 춘화가 흥얼거린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사랑한다는 그 말을 못해…” 80년대를 풍미한 <빙글빙글>이란 가수 나미의 신나는 디스코 노래가 시들어가던 이들에게 만남이란 주문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옛 친구와의 만남이 결국 꿈을 지녔던, 자신의 본색과 만나는 일생일대의 만남으로 점화된다. 영화 보기의 매력은 80년대를 노스탤지어 감성코드로 살려낸 장면들이다.

<라붐>의 주제곡 <리얼리티>가 사랑을 대변하던 시대, 민주화 투쟁장면도 당대를 휩쓴 노래의 날개를 타고 싱싱하게 비상한다. 최루탄과 방패가 난무하는 거리투쟁이 <터치 바이 터치>에 실려 소녀들의 격돌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면에선 웃음이 폭발한다.

웃고 울며 영화를 보노라면 일곱 여자들의 본색이 나의 길 가기로 진화되는 막판에 도달하게 된다.

“써니, 과거 내 인생엔 비가 내렸지. 써니, 네가 미소 짓자 고통이 지워졌어. 이제 어두운 날들은 가고, 밝은 날들이 왔어.” 보니엠의 <써니>를 부르며 춤추는 그녀들. 드디어 여자의 본색을 발견하고 힘까지 주는 한국영화의 탄생에 축배를 올린다.

팁: 진정한 여자본색의 발견이 남자의 인생길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영화를 본 남자들의 찬탄이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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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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