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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김별아
김별아 소설가
한겨레
 
» 김별아 소설가
새로 이사한 꼭대기 층의 집은 이슬 맺힘 현상이 심하고 맨머리에 추위가 더하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비의 선물을 제일 먼저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지난 삼일절에도 잠결에 하늘이 수런거리는 것을 낌새채고 눈을 뜨니 봄비와 함께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새벽어둠 속에서도 왜 이리 비는 반가울까? 살아 있는 생명을 감지해서일까…?’

그 꽃향기가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을 본떠 ‘김백리’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그녀, 은숙 언니가 보내온 문자였다. 우리는 열 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에 등단한 인연으로 한동안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한 뒤 번역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그녀가 유학을 가면서 시나브로 연락이 끊겼다.

 그녀가 귀국한 직후 문단 행사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지만 어쩌다 보니 안부만 주고받고 바쁘게 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움켜잡을 수 없는 물처럼 흘러 3년 만에 다시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언니가 아프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녀의 젊은 날은 치열했다.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5·18에 있어서의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이름도 무시무시한 ‘방화범’이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5년8개월 동안 독방 안에 쌓여 있는 먼지와 갈라진 벽을 비집고 들어온 두꺼비와 대화했던 간절한 소통의 열망으로 작가가 되었으며, 얼마 전까지 창신동에서 지역아동센터를 꾸리며 다사다망하게 지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오롯한 그녀는 방화범도 장기수도 활동가도 아니고 필명처럼 청신한 향기가 번져나는 곱고 다정한 언니였다. 그런데 아직 젊은 그녀의 몸에 수술로도 제거할 수 없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니, 격조한 끝에 받은 악보가 막막하고 먹먹할 뿐이었다.

하지만 문인들의 십시일반에 초라한 마음을 보태고 안부 문자를 넣긴 했어도 직접 만날 작심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병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알기에 젊고 아름답고 강건했던 그녀를 내 맘속에서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은 시간을 알 수 없는 촉박지경에도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었지만, 언니는 용렬한 나를 욕하지 않았다.

“고생스럽게 뭣하러 먼길을 왔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반가운 빛을 숨기지 못했다. 많이 야위었지만 형형한 눈빛과 조용한 미소는 고스란했다. 나는 그녀의 깡마른 손발을 주무르며 우리가 함께했던 청춘의 봄과 다가올 새봄을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게 즐겁게 살라고,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그 말은 격려이자 꾸지람이었다.

 이즈음 나는 시시때때로 “사는 게 참 되다”며 엄부럭을 부리던 터였다. 그런데 나를 불면과 우울에 시달리게 하는 건 고단한 밥벌이와 떼어먹힌 인세와 헛똑똑이의 자괴감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희망 없이 사는 일이 두려웠다. 오토바이를 못 타니 피자 배달도 할 수 없고 꼴같잖은 자존심에 이웃집 문을 두드려 밥을 빌 재간도 없는데, 누군가가 ‘낯선 죽음’이라 부른 그것이 고립된 개별자인 내게는 너무도 익숙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괴롭고 답답했다. 나쁜 세상에는 죽음만큼이나,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무섭고 무거운 절망이 넘실거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언니는 미래의 공포에 사로잡혀 오늘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다. 정현종 선생의 시 제목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기억하며 바로 지금을 즐겁고 행복하게, 어떻게든 앙버티며 열심히 사는 것이 이 난경에 처한 우리의 의무라고.

~~~

미실, 논개의 소설가 김별아님의

한겨레 칼럼을 퍼왔다.

백리가 마니 아프다.

아니 아플줄 알았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내고도

안아플리가 없다.

저 운동경력과 빵잽이력으로

남자들은 구케의원도 되고

교수도 되고.. 존경도 받는데.

백리는...초심대로..

분수껏 살다가

몸의 세포들까지 암에게 헌납하고

사그라질것이다.

유순해지는 봄볕에 작별할 그대

백리... 향기 잊지 않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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