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법시험 합격자의 여성 비율이 40%를 넘었다. 성 평등지수 순위가 경제 규모 순위에 훨씬 못 미치는 나라에서 여성이 ‘공부 실력’으로라도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은 기꺼운 일이다. 이렇게 대표적 전문직이라 할 법조계의 여성 비율이 높아가는 것과 달리, 대표적 고위 공직자라 할 국무위원들의 여성 비율은 제자리걸음이다. 국무위원들도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임명한다면, 여성 국무위원이 절반 안팎은 되리라. 여성 국무위원은 다다익선이다. ‘여성 내각’은 사회 전반의 성 평등 의식을 크게 고양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 여성 국무위원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2012년 대선에서 정권이 자유주의·진보 세력으로 넘어간다고 가정하고, 어떤 사람들이 입각하면 좋을지 상상해본다. 이것은 최근 서울대 조국 교수의 인터뷰 발언에서 실마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할 경우 어떤 사람들로 내각을 짤 것인지 상상해보자며, 이것을 ‘드림팀 놀이’라고 불렀다. 나는 여성에 대해서만 상상해보겠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 조직이 개편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명박 정권의 정부 조직이 그대로 간다고 가정하고 몽상을 펼쳐본다. 이름 뒤에 적은 나이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총리 김선주(66): 김선주씨는 퇴직 언론인이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다. 그가 총리로 임명된다면 파격 중의 파격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상상 놀이 아닌가? 김선주씨가 그간 글로써 보여준 시민적 양식, 비록 정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조직이기는 하나 신문사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리더십(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를 겪어본 사람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은 개혁적 내각을 이끄는 데 크게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외교통상부 장관 추미애(55):추미애 의원은 지금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지만,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네 해 동안 정치 활동을 쉬면서 동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관계에 폭넓은 지식을 쌓아왔다.

국방부 장관 피우진(57):대한민국의 첫 여군 헬기 조종사 피우진씨는 육군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는 현역 복무 시절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당했다가 소송 끝에 군에 복귀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박영선(53):기획재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의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아우른 것이다. 박영선 의원은 성실하고 듬직한 의정 활동에 비해 언론의 주목을 덜 받아왔다. 그가 주로 활동한 곳이 재정경제위원회이니만큼, 기획재정부 장관에 알맞을 듯하다. 그는 정계에 들어가기 전 언론계에 있을 때에도 유능한 경제부 기자였다.

지식경제부 장관 제정임(49):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인 제정임씨도 경제부 기자 출신이다. 그의 저서나 칼럼들에서는, 평범한 저널리스트 이상의 경제적 식견과 경제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지식경제부는 노무현 정부 때의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의 일부를 합친 것이다. 제 교수의 이력과 딱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크게 보면 경제적 시각이 긴요한 부처인 만큼 제정임씨가 감당할 만하다.

행안부 장관 문경란,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희…


행정안전부 장관 문경란(54):문경란씨는 한나라당 추천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되었다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반인권적’ 행보에 항의해 상임위원직을 사퇴했다. 그가 행정안전부 장관이 된다면, 인권 의식과는 거리가 먼 경찰 수뇌부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을 듯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심상정(54):교육과학기술부는 노무현 정권 때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 일부를 통합한 것이다. 심상정씨는 17대 국회 때 재경위에서 일했지만, 18대 총선 출마를 계기로 교육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더구나 그의 ‘학습 능력’은 이미 소문난 바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희(44):민주노동당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정희 의원이 고용노동부 일을 맡는 데 부적합하다고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상이다. 중요한 것은 내각에 포진한 여성의 수 못지않게 그들이 맡은 일의 성격이다. 국방부나 외교통상부나 행정안전부나 경제 부처처럼 남자만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부처의 여성 수장을 상상해본 것은 그래서다. 국가정보원장이나 검찰총장·경찰청장도 여성이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해보니, 조국씨 말대로 재미있는 놀이다. 더불어 조금 허무한 놀이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런 ‘여성 정부’를 하루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