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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께 바친 이별의 학예회

2010.12.07 10:02

약초궁주 조회 수:1301 추천:112

우선. 류시춘샘이 쓴 오마이뉴스 기사를 올린다.

 

선생님이 남긴 숙제끝내고~~~오마이뉴스펌

 

2009년 6월 27일 일요일 오후 5시.

 

초여름 하늘은 청잣빛으로 푸르고 신록이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러운 초여름 하오였다. 리영희 선생님은 병환이 깊어져 아드님이 살고 있는 연희동으로 거처를 옮겨 통원치료를 받고 계셨다.

 

잔디밭이 아담했다. 담장 너머 위쪽에 연대 후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간혹 지나가는 이들의 발소리와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섞여 들리는 게 사람사는 마을의 냄새를 풍겨 싫지 않았다.

 

잔디밭 위에 접이식 테이블을 펴고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여성 예닐곱 명이 '학예회'준비를 서둘렀다. 김선주(전 한겨레논설주간), 조선희(전 씨네 21편집장), 류시춘(전 국가인권위원), 이유명호(한의사), 고은광순(한의사) 등이었다.

 

이들은 리영희 선생님께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을 통해 세상 속에 '다시 태어난' 리영희의 제자들이었다. 이 새로운 '하늘과 땅'을 접한 이후 이들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평등이라는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들의 청춘은 결코 리영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2006년 선생님의 대담집 <대화> 출판기념회가 열렸을 때, 이들 여성 열댓 명은 모두 가슴에 꽃을 달고 축가를 합창했다. 이들을 가리켜 그때, 사회자는 리영희의 '오빠부대'라고 소개했다. 그때는 한비야, 서명숙, 정혜신, 오한숙희, 유지나, 김진애, 정경아, 진선미 등이 함께 합창했다. 긴급구호팀장, 오마이뉴스 전 편집국장, 정신과의사, 여성학자, 교수, 국회의원, 변호사 등 각각의 직업은 다양했지만 리영희에 감전된 '오빠부대'임은 틀림없었다.

 

이후, 그 오빠부대는 각자의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선생님의 군포댁을 찾아뵙기도 하고 때로는 눈부시게 아리따운 봄날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와병하시기 직전 어느 5월에는 강화도로 긴 나들이도 갔다. 그곳에서 이들은 선생님 내외분의 발을 씻겨드렸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은 사모님 윤영자님의 발을 만져드리면서 말했다.

 

처음으로 아내의 발을 온전히 만져주노라고.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눈물나게 고맙다고. 놀랍게도 그날 선생님은 손수 운전으로 강화까지 오셨다! 우리들 '오빠부대'와 리영희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사적이고 정감적이고 즉흥적이었다. 우리들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은 늘 즐거워하셨다. 

 

'오빠부대'의 재롱잔치에 리영희 선생이 웃다

 

2009년 6월 27일 당시에도 선생님은 우리들을 기다리다가 몇 번이고 사모님께 (우리들이) 몇 시에 오느냐고 되물으셨다고 한다. 약속시간을 알고 계셨음에도 우리가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리신 모양이었다.

 

드디어 잔디밭에 학예회 객석을 만들고 선생님은 휠체어에 앉으셨다. 사모님이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 우리들이 선보일 '재롱잔치'를 기다렸다. 조선희씨가 자기 몸무게만큼 나가보이는 아코디언을 가슴에 두르고 나섰다.

 

우리들이 해마다 5월 광주항쟁기념일이 되면 부르는 '5월의 노래'가 흘렀다. 아코디언 연주로 듣는 곡은 또 감회가 달랐다. 달콤쌉싸름한 우수와 묘한 에너지가 함께 건너왔다. 누군가 이 곡이 원래 프랑스 곡이었고 번안했음을 알려준다.

 

이어서 '스텐카라친'이 연주되자 선생님은 나직이 그 가사를 되뇌며 따라 부르셨다. 우리들이 청춘이었을 때 수없이 부르던 그 노래를 병마에 지치신 선생님이 나지막이 읊조리듯 불렀다. 무척 평온한 얼굴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선생님 내외분은 앙코르 요청을 했다. 기다렸다는듯이 조선희씨가  '백만송이 장미'를 연주했다. 아마도 같은 러시아 곡이어서 쉬이 연상된 듯 보였다. 우리는 심수봉버전으로 그 러시아곡을 합창했다. 그리고 몇 곡의 노래를 더 불렀다.

 

다음으로 고은광순 선수가 나섰다. 배운 지 얼마 안되는 해금을 들고 '섬집아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연주한다. 완전 초보이지만 오로지 선생님 앞에서 연주하겠다는 그 일념으로 용맹정진한 결과, 그런대로 괜찮았다. 두 곡으로 미진했던지 그는 선생님께 '베사메무초'를 헌정한다. 음성보다 두 팔과 가슴을 열정적으로 열어보이는 몸의 언어가 더 섹시했다.

 

  
리영희 선생이 2009년 집앞 잔디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 류시춘
리영희

선생님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류시춘은 시 한 편을 올렸다. 변산반도에 사는 한 어부시인의 '사랑'이라는 시.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게 풀여치 한 마리가 어깨에 내려앉은 걸 알고 스스로 풀잎이 되고자 하는 노래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기울고 잔디밭에는 담 위의 키 큰 플라타너스가 긴 그림자를 눕혀왔다. 황혼녘에 보는 리영희 선생님의 얼굴은 오랜 병고의 그늘없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준비해 온 화관을 선생님 내외분께 씌워드렸다. 선생님은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보다 더 감격해했다. 우리는 모두 2열로 서서 선생님께 드리는 노래를 함께 목청껏 불렀다.

 

"꽃중의 꽃, 리영희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

 

"내 인생, 그다지 잘못 산 것은 아니구나"

 

우리는 반복해 부르면서 율동도 함께했다. 어깨로 물결치듯, 두 손을 모아 꽃봉오리를 벌리어내듯 각자의 몸짓으로 열연했다. 이때 선생님의 두 눈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우리가 지상에서 들은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

 

"병석에 누워 오랫동안 여러 번 묻고 또 물었다오. 내가 정말 바르게 살아왔나. 나의 인생은 과연 무엇이었나. 게으르거나 잘못한 일은 없었나. 그런데 좀체 해답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오늘 여러분을 보고 비로소 생각한다오. 그다지 잘못 산 것은 아니구나하고 말이오."

 

석양의 붉은빛에 선생님의 표정은 소년처럼 해맑았다. 류시춘이 선생님께 다가갔다. 복수가 차올라 만삭의 여인처럼 부풀어 있는 선생님의 배에 손을 얹고 말했다.

 

"선생님, 이제 곧 옥동자를 낳으실 거예요."

 

그랬다. 쾌차하셔서 이 혼돈의 시대를 밝혀줄 글과 말을, 그 '옥동자'를 우리는 기다렸다. 사나운 삼각파도가 덮쳐오는 캄캄한 바다 위를 비춰주는 그 칼날같은 등대 빛을 꿈꾸었다.

 

리영희 선생님이 영면하셨다. 한 시대가 저물고 말았다. 야만의 시대에 '이성'을 추구한 그 불굴의 정신도 정녕 저무는가? 허위의식이 진실의 권좌를 군림했던 그 기나긴 어둠의 시대를 오로지 '진실추구'의 외길을 걸었던 헌걸찬 정신이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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