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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즙 아가씨 (작은책 2010년 5월호)2010.09.10 16:46 작은책의 최모 꽃미남 기자가 침 맞으러 왔다. 책속에서 김현진님의 칼럼을 읽었다. 당근 반갑다. 그리고 졸랐다.
이거 좀 홈피에 올려도 되유? 그럼요 얼마든지...파일보내줬다. 좋남.
대한민국의 미스김들 힘내라!!!!!!!
나는 녹즙 아가씨(<작은책> 2010년 5월호)
김현진/ 에세이스트
어쩌면 지금까지, 사소하고 소소한 행복을 진작에 알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는 피가 펄펄 끓는 시기였으니까. 맥주에 뭘 섞은 폭탄주로 식힐 수밖에 없을 만큼, 그렇게 뜨거웠으니까. 지금은 그렇게 살 자신도 없고 그렇게 마실 자신도 없다. 그 시절을 되돌린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다시 스무 살로 만들어 준다면 바로 혀를 확 깨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만큼 독한 시절이었다.
하기야 그렇게 나쁠 것 없었다. 멀쩡히 국립 4년제 대학을 빚 안 지고 제 힘으로 다녔지, 좀 허접해도 월급 밀리지 않는 회사에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정규직으로 몇 년 월급 타 먹었지, 폭삭 망했고 다시 일 들어올 기미도 별로 없어 보이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단 등단은 했고, 2년이나 질질 끌며 휴학 중이지만 뭐 어찌어찌 대학원도 합격해서 적을 두고 있고, 돈 없는 거 빼고 꽉 찬 나이에 시집 갈 가망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열심히 산 인생이었다.
부족한 건, 다만 자족의 힘이었다. 성서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했다. 그 일체의 비결,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몰랐고 앞으로 더 배우고 끝없이 배워야 할 것이었다. 지금 병상에 누워 힘겹게 싸우고 있는 리영희 선생님 역시, 그 ‘일체의 비결’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인생에 대단히 로맨틱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많은 것이 간단해진다”고 특유의 간명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20대가 독하고 힘들었던 건 여기보다 어딘가에, 하고 중얼거리며 끝없이 뭔가 대단히 로맨틱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삿된 망상 때문이었다. 망상이 헛된 기대를 부르고 망상과 기대가 힘을 합쳐 피를 펄펄 끓게 하던 거였다. 비천에 처하기도 하고 풍부에 처하기도 하고 배부르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한 것이 인생일 텐데, 비천에 처하면 이상하게 여기고 배가 고파지면 억울해하다 보니 이건 공정하지 않다고 홧술이나 들이켜고 사방에 민폐를 끼치는 삶을 산 지 어언 10년. 남이라면 절대 상종 안 하겠건만 하필이면 지긋지긋한 이 여자는 나 자신, 평생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니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단 근면한 인간이 돼야 했다. 특기라고는 잠 적게 자는 것, 아침에 벌떡 빨리 일어나는 것, 30분 안에 책 한 권 읽는 것, 타자 1분에 1,300타 치는 것, 대형 오토바이 면허증, 몸이 바지런하고 잽싼 것뿐인데 생활에 별 도움 되는 재주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조건에 일치하는 밥벌이가 아침에 하는 녹즙 배달이었다. 전단지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주부 사원 모집이라길래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다 대고, 결혼 못했으면 녹즙 배달도 못하나요, 하고 구슬프게 물었다. 그건 꼭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아가씨들이 하기엔 좀 그런 일이라며 지사장은 말끝을 흐렸다. 500명 정도 배달 사원을 썼지만 결혼 안 한(못한) 아가씨를 쓴 적은 없다면서 망설였지만, 면접에서 내가 열심히 하겠다고 여덟 번쯤 말하자 채용해 줬다. 내가 비정규직인지 하청 사업자인지도 모르겠고 종종 잡상인 취급을 당하지만, 잡상인이 아닐 것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사는 이상 우리 모두는 노동 시장에 자기를 파는 잡상인이니까.
훌륭한 잡상인으로 살아야지, 중얼거리며 일생의 연인과 이별하는 기분으로 술을 끊었다. 그 많은 술이 없었다면 그 많은 연애, 혹은 사고를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을 텐데 아직까지 술을 미워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술과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끊는 김에 담배도 끊고 고기도 끊고 음식도 줄였다.
술을 끊으니 돈 나갈 데가 확 줄었다. 아등바등 돈 버는 독한 재주만 생활력인 줄 알았더니 돈 안 쓰는 재주도 버젓한 생활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을 줄이니 몸도 가벼워지고 간혹 먹는 음식 맛을 천천히 음미하게 됐다. 예전에는 뭔가 할 수 있는 것, 살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만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게 얼마나 좁은 세상이었나 돌이켜 보니 부끄럽다. 아마 앞으로 더 부끄러울 일이 많을 거다. 하지 않는 것, 사지 않는 것, 가지지 않는 것 역시 자유였다. 어쩌면 더 질 높은 자유.
일이 쉽지는 않았다. 회사 생활이나 글 팔아 먹고 사는 거나 카페 알바 같은 건 노동의 ‘ㄴ’ 자도 붙이기 민망하다 싶었다. 지사장님은 어쩐지 구성진 말투로 “이 일이, 비가 오면 좀 서글퍼요” 하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비가 왔다. 청소 아줌마들은 새벽 다섯 시에 나온다. 사무실에도 책상 앞에 앉아 밤새도록 일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고 감탄하면 건너 책상에 앉은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요즘 가정이 안 좋은 거지” 하고 뭔가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관조의 태도를 보인다.
사정이 있어서 관둬야 했던 저번 아줌마에서 내가 담당으로 바뀌고 나서 먹던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새로 먹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말이라도 붙여 보면 찡그린 얼굴로 손부터 내저어 기가 팍 죽어서는 녹즙 가방과 수레를 질질 끌고 나오면 경쟁 브랜드 배달 아줌마가 안쪽에서 빤히 보면서도 문도 안 열어 주고, 회사에서 입히는 조끼는 뒤에 ‘결사 투쟁’이라고 적어 놔도 하나도 안 이상할 것 같아 기분이 묘하고, 스키니진이라도 입고 나온 날이면 청소 아주머니들한테 한참 잔소리를 듣지만 새벽에 벌떡 일어나 일 나가는 건 전혀 싫지 않다.
숫기가 없어서 좋은 영업 사원이 되기엔 틀린 것 같다. 그렇지만 회사 다닐 적에 아침에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그때는 저녁 여섯 시까지 사무실에 갇혀 일해야 한다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싫었다. 달마다 엄마에게 돈을 부치지 않아도 됐다면 진작 도망쳤을 것이다. 그렇게 모은 전세금을 엄마에게 털어 주고 내 능력으로 회사 생활 같은 거 하기에는 틀린 것 같다고 고백한 다음 마이너스 통장만 끌어안고 있다가 비로소 아침 일찍 일 나가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낫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 보면 한때 내가 그이들 중 하나였으므로 확실히 알고 있는 바로 그 표정,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그 표정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을 한다. 내가 그 사람들의 4분의 1이나 벌까 싶지만 대신 네 배는 행복하다. “이 일에도 어떤 어드벤처가 있다”라며 ‘어드밴티지’를 잘못 말한 게 분명한 지사장님도 귀엽고, “저 3층 흑마늘이에요”라고 문자 하는 과장님도 귀엽고, 별 것 아닌 일들이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돈 잘 못 벌 것이고 불 같은 기세로 영업을 해서 수당을 엄청 받는 일도 없을 것이고 뭐 그저 그렇겠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말처럼, 지금은 ‘이게 다예요(C’est tout)’다.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대학원 휴학생, 잡상인 취급받아도 사소한 것에 웃을 수 있게 된 나는 녹즙 아가씨, 이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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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단히 로맨틱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많은 것이 간단해진다”라신 리영희 선생님이 또옥 이 랄라에게 하시는 말씀. 그래 해볼거 다해봤잖아. 두려울게 뭐있다고 맨날 이리쪼누.
나 읽을라고 산 책-한창훈님의 그 바다 책. 연구소에서 내가 이뻐하는 블루칼라 아버님이 오랜만에 오셨다. 늘쌍은 어머님이 오시는데 시엄니 병간호 하느라 시간내는 아내 위해 일이 뜸하신 날이면 아내 쉬라고 친히 오신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어버린 아들녀석. 6살부터 이 아일 가르쳤는데 말그대로 내 경력만큼 오래된 인연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아빠가 아들 이제 학년기 끝나면 장차 어찌할까 고민하다 아내더러 강원도행을 말했었다고 그전주에 말해주었는데 나는 너무 좋았다. 굳은일 마다않고 사신 아버님이 아내, 두딸, 아들을 위해 별일을 다하시는 아버님이기에 조금 부족한 아들을 위해 아들에게 몸쓰는 일을 손수 가르치면서 그렇게 살자고 했다는데 부부가 어쩜 그렇게 쿵짝이 맞노. 부창부수라고 또 어머님은 시골일, 식당일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들부분 남편은 농사짖고, 여기 인천서 집 고치는 일도 했으니 집 고치는 일도 부업으로 하고 아내는 남편이 농사지은 그것으로 식당하면서 아들에게 일자리 창출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이리 마음이 어지니 두 누나들도 어찌나 기특한지.
자기들은 도시에 살게 되어도 걱정말라 부모를 안심시킨단다.
그 아빠가 너무 예뻐. 당신 닮은 사람 여기있소 하면서 냉큼 그 책을 집어 주었다. 저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여기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미리 가서 자리 잡고 계심 힘들때나마 한번 휭하니 가고 싶다고.
허허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아들을 데리고 나가신다.
그래 저 남자.
저 진실한 남자.
그런 남자면 아빠면 족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