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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유시민은 정말 매력있는 분이었어요. 이 칼럼은 2002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지금 읽어도 너무너무 훌륭한 칼럼입니다. (왜 다시 이 칼럼을 올렸는지는 다들 아시죠? ㅎㅎㅎ) <br><br>

 

[경향신문]유시민: 사랑의 매는 없다.<br><br>

 

 대한민국 형법은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국가가 행사하는 ‘공권력’과 개인의 ‘정당방위’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폭력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없는 규칙은 없는 법. 가정과 학교와 군대에서 부모와 선생님과 상관이 자녀와 학생과 하급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 용인되어 왔다.  <br><br>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한테 두어번 호되게 종아리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지쳐서 매를 거둘 때까지 도망치지 않았다.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심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해도 될 걸 왜 때리는지 모르겠다는 불만 때문에 그랬다. 그것은 ‘사랑이 담긴 매’가 아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 또한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의 매에 언제나 사랑이 담기는 건 아니다.<br><br>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한테 맞은 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조기 청소에 늦어서, 영어 책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수학 시험을 잘못 쳐서, 복도에서 장난을 치다가 들켜서, 수업시간에 잡담을 했다고, 돈이 없어 미술시간에 스케치북과 물감을 준비해 가지 못한 탓으로,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저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죄 때문에 맞았다. 나에게 그것이 ‘사랑의 매’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회초리와 대걸레 자루와 주먹과 발로 내 허벅지와 뺨과 엉덩이를 아프게 한 그 선생님들이 정말 나를 사랑하셨다고 믿지 않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br><br>

 

병영에서 저질러지는 폭력이 ‘사랑’과 무관하다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정상적으로 군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 병영의 폭력은 이른바 ‘교육’과 관계가 있다. 한밤중에 막사 뒤편에 하급자들을 모아 모멸적인 얼차려를 주고 두들겨패는 행위를 가리켜 ‘군기를 세우기 위한 교육’이라고 한다.<br><br> 

 

 교육인적자원부 공교육내실화추진기획단이 18일 내놓은 ‘공교육 진단 및 내실화 대책’에는 학칙에 규정을 두어 체벌을 허용하는 방안이 들어 있다. ‘교사 권위 살리기와 학생 교육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진단’에 따르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리지 못하는 것이 공교육이 부실해진 중요한 원인이다. 그래서 체벌을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공교육의 내실화를 도모하는 ‘대책’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br><br> 

 

 권위는 정당성을 획득한 권력을 말한다. 권위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발적인 승인을 받아낼 때 성립한다. 교사의 권위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의 권위는 기본적으로 지적(知的) 지도력에서 나온다. 자기가 가르치는 교과목을 스스로 깊이 이해하면서 학생들에게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실력 있는 선생님’을 어떤 학생과 학부모가 존중하지 않겠는가. <br><br>

 

교육부 관계자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체벌을 해서 세울 수 있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권력일 뿐이다. 아이들을 때려 굴복시킬 수는 있지만 마음으로 승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당신들은 선생님들이 요즘 같으면 당장 처벌받고도 남을 만큼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던 시대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가. 남들이 보는 앞에서 허벅지에 피멍이 들도록 맞던 일을 돌이켜 볼 때마다, 당신들은 그 아픈 ‘사랑의 매’를 휘둘렀던 선생님에 대해 존경과 감사와 정을 느끼는가. <br><br>

 

폭력은 범죄다. 가정이든 학교든 병영이든 예외가 될 수 없다. 체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학교라면 그런 학교는 무너져야 마땅하다. ‘사랑의 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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