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많은 개를 주워 돌봤고 그중 어찌어찌 입양 보낸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종자 있고  예쁘고 어린 개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다. 그중에서도 흰둥이와 검둥이는 절대 입양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두 녀석 다 3~4년을 함께 지내면서 별로 누가 원할 외모의 개가 아니란 걸 우리 식구들이 제일 잘 알았다. 흰둥이는 작고 가벼운 소형견이지만 귀엽다기보다는 애처로운 용모의 소유자였고, 개 주제에 어딘가 메뚜기 같은 구석이 있었다.

가는 팔다리에 진공청소기를 켜기만 하면 전기안마기처럼 부들부들 떠는 녀석은 간이 생기다 말았나, 하고 보는 사람이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검둥이 녀석도 성격이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좋지만 워낙 무던한 사나이 개인 데다가 일고여덟 살을 넘어가니 명실공히 중년, 유들유들한 아저씨 개는 작고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만 귀여움받는 세상에서 택함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흰둥이 녀석이 우리 엄마와 동사무소에서 탁구를 같이 치는 아주머니의 마당 있는 집에 입양되어 온갖 귀여움을 받고 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더니 곧이어 개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꼬마가 있는 집에서 개를 원했다. 함부로 짖지도 않고 화장실에 용변을 보는 훈련이 되어 있는 검둥이가 적격이었다. 교회 창고를 개조해서 사느라 패널로 막은 엉성한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는 검둥이의 이런 중산층 스타일의 재주가 빛을 발할 날이 없었다.
 
 유들유들한 검둥이는 소년의 친구가 되어 즐겁게 떠나갔다. 그 특유의 느긋함에 마음이 고단한 날이면 검둥이의 목에 뺨을 대고 외로움이라든가 서러움이라든가 각종 너저분한 감정을 삭혀왔는데, 정든 개가 남의 집에 가서 사랑받는 일은 반갑지만 늘 마음이 허하다.

그렇게 개 네 마리가 순식간에 두 마리로 줄고 나니 집이 조용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해서 집이 평화로워졌는가 하면
 
그럴 리 없다. 개 친구 가니 새 친구 왔다. 반려견으로 모자라 이제는 반려조다. 이 반려조도 반려조가 되려다 수없이 반려당한 역사를 가진 ‘반품 전문조’다.
 
지난해 겨울부터 집 근처 마트 애완동물 코너에서 삑삑 울던 이 앵무새는 일생을 ‘반품 전문조’로 살아왔다. 멍멍 짖고 삑삑 울고 투덜거리는 개나 새나 사람이나 죄다 불량품만 모였다. 못난 것들끼리는 역시 바로 알아본다. 그렇게 얼굴만 봐도 흥겹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다. 아, 못난이들.
 
 
~~~작가 겸 칼럼니스트 김현진.
시사인은 당분간 글을 퍼와도
채금져준다는 친구 남자가 있는 관게루
당당하게 펌질이다.
 
김현진은 누구냐.
내가 이뻐하는 젊은 작가다.
<누구의 애인도 되지마라>던 그녀는
사슴을 데불고 활쏘고 사냥다니던
주제 여신 프시켄가 다이아나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