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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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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시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책 에이 하지 말까?

2010.06.17 13:00

보아 조회 수:1249 추천:153

나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본 적이 거의 없네.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약초밭 샘의 삼총사 시리즈이지.

 

책은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라서

누군가에 대해 아주 잘 알지 못하면서 책을 권하는 건

내 생각을 그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선물받은 책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다시피 하고...

 

책을 사주는 건 빌려주는 것과는 또 차원이 다른 것 같아. 

사주는 건 이게 내 맘에 들었으니 너도 봐라... 일종의 압박이 느껴지고

빌려주는 건, 난 맘에 들던데 넌 어떨까 함 봐봐... 권유 정도라서 받아들이기에 가볍지. 

 

직접 골랐거나 남들의 추천을 듣고 생각하며 고른 책

결국은 내 손을 통과해 들어온 책만 읽네.

책선물을 할까말까 하는 랄라의 고민을 읽다보며 깨닫게 된 거긴 하다. ^^

별 엉뚱한 데서 한까칠 하는 인간이잖우. ^^; 

 

결론은? 없어...

선물 할건지 말건지는 랄라가 알아서 해.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큰 여자들은 시아버지를 좋아하기도 하나?

나도, 거의 할아버지 뻘이 되는 시아버지를 좋아했었지.

친자식들에게는 강렬한 애증이 교차하는 아버지였지만 (어느 집이나 그렇지 않겠어?)

그 분과 과거지사가 없는 나는 그 양반의 약간 차가운듯 하지만 깔끔한 성격이 처음부터 좋았어.  

그 분도 나를 좋아하셨다고 생각해.

결혼하고 3년만에 돌아가신 데다, 그 기간마저 우린 내내 외국에 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감정만 남기고 가실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그 분이 암 진단을 받고 1달만에 세상을 뜨셨는데...

위암이 꽤 진행되어 길어야 서너달 사실 거라는 의사의 선언이 있었지만

가족 중 아무도 시아버지 본인에게 그 얘길 해주지 않는 거야.

장남을 어려워했던 시어머니는, 장남이 입 다물고 있는데 내가 먼저 어찌 말을 하냐... (이것 때문에 시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고생을 많이 하셨지. 본인 생각만 밝히면 될 일도 장남 눈치를 보느라 입 다물고 일을 이리저리 꼬셨으니 누굴 원망하시겠냐만은)

보통 땐 장남이라고 나대며 어머니 무시도 불사하는 장남은 요번 일만은 어머니가 먼저 하셔야지... 그러고 있고

그러면서도 둘이 합의는 커녕 그 일에 대해 의견교환 할 생각도 안하고 서로 상대방이 먼저 칼 빼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는거야.

넷이나 되는 딸들이랑 차남이며 막내인 남편은, 형이랑 어머니 사이에 왜 끼어들어 피보기를 자초할거냐 하더라. 

(6남매의 막내인 울 남편은 새중간에 끼어서 곤란해질 것 같은 낌새만 보여도 아예 꼬리 감추고 초장부터 쏙 빠지는 게 어릴적부터 몸에 밴 삶의 기술이더군)  

 

하루는 시아버지가 나하고 둘만 있는 틈을 타 나한테 물으셨어.

내 병이 뭐냐... 하고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 질문인데

내가 지금만 같았으면 안 그랬을텐데... 

그 때는 나이도 어리고 결혼한지 아직 몇년 되지도 않아서

시집 식구들 판 돌아가는 규칙도 모르겠고 그러니 나서야 할 타이밍인지도 판단이 안서서

(사실 결혼 직후 별 생각 없이 나섰다가 눈치없다 소리 들은 적 있었다. 다들 뒤에서 계산기 두드리느라 침묵했던 건데 그걸 당연히 몰랐던 난 이건 이러면 간단히 되잖아요? 그래버렸거든? ^^)

저도 몰라요 아버님... 그러고 빠졌다.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이 본인만 그걸 모르고 있는데

그걸 알려주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족이 할 일인데  

그리고 나는 그 분을 정말 좋아했는데도

그분한테 꼭 필요한 도움을 드리지 못했던 거지.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도.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한테 원망을 하셨다.

나에게도 하셨다. 너도 나뻐...

가슴이 아팠고, 그건 지금도 아파.     

 

물론, 아내나 자식들이 했어야 하는 일이고, 내 일이 아니었긴 하다. 

그러나, 나에게 물으셨을 때 비겁하게 고개 돌렸던 게, 가시로 남아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 만큼은 꼭 다르게 하고 싶은 일.

난 겁이 많을지는 몰라도 비겁한 사람은 아니고 싶고, 그렇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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