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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 1년만의 깨달음 (시사인, 김현진 칼럼)2010.04.16 14:56 “마, 밥만 먹으면 된다 안 카나” 하고 중얼거리며 사표를 쓰고 실업자가 된 지 1년이 넘었다. 살던 집 전세금을 빼서 무너져가는 아버지 교회에 헌금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이왕이면 즐거운 비렁뱅이로 살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쯤에서 중간 결산을 한번 해봐도 될 때가 온 셈이다. 물론 번 돈은 없다. 취업 사기를 한 번 당했고, 홍대 앞 카페에서 커피나 식사나 안주를 만들어서 나르기도 했고, 이곳저곳 다친 후에는 교회 지하창고에 ‘암굴왕’처럼 들어앉아 있었다.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니까 번 돈은 없지만 쓴 돈도 없어서, 결국 숨만 쉬고 살면서 무사히 해를 넘겼다.
하지만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집 안 온도가 영상 1℃이던 종암동 자취집에서 점퍼를 껴입고 자는데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못 참느냐’고 핀잔하던 주인집 할머니와 옥수동의 다정하고 지긋지긋한 ‘궁기’에 단련되어 별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지난해만 해도 책을 두 권이나 냈으면서 어디다 써서 돈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책이란 걸 쓰면 뭔가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선입견은 그야말로 ‘으허허허허 오해입니다’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불행하게도 그 두 가지 다에 해당된다. 어쨌든 살아남으려면 엥겔계수만 잔뜩 높인 채 돈 냄새 나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돈 쓰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곳에 코빼기도 내밀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돈 쓰고 싶은 기분을 일으키는 주범은 텔레비전·인터넷·패션 잡지 같은 것들이다. 집에 있는 립스틱이 정말로 바닥을 드러냈거나 겨울 코트가 너덜너덜해졌거나 청바지가 입을 수 없을 만큼 해져서 쇼핑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그놈의 ‘기분’ 문제다. 저걸 바르면, 저걸 걸치면, 저걸 입으면 더 예쁘고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고, 그래서 사랑받고 결국 절대로 외롭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기분’. 그 ‘기분’이라는 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만 20대를 다 보냈다.
이 청년실업자 신세를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하자 자주 가던 순대국집의 팔순 할머니는 “평생 벌 텐데 지금 잠깐 안 벌 수도 있지 뭘 그걸 갖고 그러느냐”라고 하셨는데 그러고보니 지금이 천금 같은 기회였다. 도서관에 처박혀 부지런히 책을 빌려다 읽으면서 전혀 친하지 않았던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해 한 생각이라곤 뭔가 좀 이상한 여자, 사적으로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인간이지만 하필이면 본인이기 때문에 평생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 뭐 그런 정도였다.
그런 자기와 좀 가까워지려고 해보니 낯설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좀 안됐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럭저럭 친해지면서 자신을 조금 더 참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 멀쩡한 직업도 없는 신세지만, 개구리밥처럼 둥둥 떠 있는 그 시간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에게 먹고살자, 하고 좀 다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다 이상해지더라. 안 죽으면 됐지, 자 먹고살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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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님의 칼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