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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열이 모이면~~(너북*찾 중에서)2010.02.18 15:45 너만의 북극성을 따라라
-오한숙희
<여자 열이 모이면>
새장에 혼자 있는 새는 빨리 죽는다. 그런데 거울을 달아주면 수명이 길어진다. 뿐만 아니라 성장이 잘되고 배란이 촉진된다. 거울속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새를 한 마리 더 넣어준다면 어떻겠는가. 새장이 아니라 넓은 숲 속에서 수많은 새들과 어울려 산다면 어떻겠는가.
나에게는 십자매가 있다. 새 이름이 아니라 열 명의 자매이다. 혈연의 자매가 아니라 사회적 자매이다. 제일 큰 언니는 지금 환갑이 넘었다. 어느 해가 바뀌려는 무렵의 겨울밤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케이크를 들고 다니는 젊은 남녀들 속에서 괜히 쓸쓸해지고 허전한 그런 밤이었다. 큰언니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지금 너무 심심하니 당장 자기 집에 와서 놀아달라는 것이다. 언니 집에 가보니 벌써 십자매 맴버 둘이 와 있었다.
"너희들 고스톱 칠 줄 알지?" 판을 펴고 자리에 둘러앉아 언니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동생들 앞에 한 장씩 놓았다. 봉투에는 빳빳한 지폐가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화투를 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
언니는 마치 무슨 갱단 보스나 되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판돈까지 나눠 주었다. 나는 속으로 언니가 무지 심심하긴 했던 모양이다 싶어 여한 없이 놀아주리라 마음먹었다. 돈이 오고 갔지만 언니에게서 공으로 받은 돈이니 잃어도 부담이 없었다. 돈은 뒷전이고 웃고 떠드는 '놀이판'이 먼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는 절대 심심한 게 아니었다. 부부동반 모임이 유난히 많은 연말연시에 소외감이 들 법한 이혼한 나와 또 다른 자매를 생각해서 자작극을 벌인 것이었다. 행여 우리가 자존심 상할세라 이혼 안 한 동생도 슬쩍 한 명 끼워 넣었다. 돈도 신경 써서 신권으로 인출하고 돈 담을 예쁜봉투를 사느라 벌금 4만원 낼 각오로 불법주차까지 했단다.
그 겨울밤 나는 언니에게서 위로를 배웠다. 큰언니 환갑날, 우리는 깔끔한 모텔의 스위트룸을 빌려서 '새로운 젊음을 위하여' 깜짝 파티를 열고 다 같이 밤을 지새웠다. 둘째 언니는 요리 솜씨가 제일이다. 솜씨 좋아도 밥 차리는 일은 번거롭게 마련이건만 이 언니는 틈만 나면 십자매를 집으로 부른다. 낙지볶음과 곰탕이 전공인데 최근에 새롭게 개발한 메뉴는 석이버섯 무침이다. 돌에서 벗겨낸 버섯을 씻고 또 씻어 돌가루 하나없이 닦아내는 정성은 애정 없이 하기 힘든 일이리라.
우리를 앉혀 놓고 들기름과 소금에 무쳐 내와서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서 먹어라" 채근하는 마음은 또 무엇인가. 편히 앉아 먹기만 하라며 돕지도 못하게 하고는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기는 굶어도, 배터지고 입 찢어지는 우리를 보면 배부르단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이런 음식을 먹고 오면 보약보다 더 힘이 난다. 전업 작가로 원고와 씨름하며 사는 와중에 어디서 이런 사랑이 샘솟는단 말인가. 나는 언니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셋째 언니와 다섯째 언니는 투사이다. 정의의 여인이다. 옳지 못한 일을 보면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뛰어든다. 그래서 다섯째 언니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 종사자건만 빚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언니는 늘 곱게 웃는다. 셋째 언니는 칼이다.
자매간에도 직언을 서슴치 않는다. 우리가 모두 누군가를 오냐오냐 위로할 때도 언니는 냉정한 비판을 말한다. 언니들은 투사이면서도 우리에게 동조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소신대로 묵ㅁ구히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나도 사사로운 정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갈등할 때면 이 언니들을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 언니들은 내 인생의 소금이다.
넷째 언니는 배려의 여왕이다. 밥 먹을 때는 누가 모자라지 않는지, 헤어질 때는 누가 어떻게 차를 타고 가는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챙긴다. 십자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가장 먼저 알고 그 소식을 여기저기 날라주는 십자매 리포터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피 한 방을 섞이지 않고 하는 일이 저마다 다른 여자들 열 명이, 그것도 상당히 나이가 먹어서 알게 되었음에도 오늘날까지 십자매로 끈끈히 맺어진 것은 전적으로 넷째 언니의 공덕이다. 개성 강하고 독특한 여자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내서 인간십자수를 놓은 넷째 언니의 솜씨는 세계적인 리더십, 노벨 평화상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변호해주는 언니 앞에서 "누구는 어떻고 아무개는 저렇고"하며 불만을 말하는 내가 부끄러워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넷째 언니는 어떻게 해야 더불어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여섯째 언니는 항상 명창, 발랄, 상쾌, 통쾌하다. "나잇값 하지 말자"를 모토로 삼아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생업에 치이는 몸이건만 모임에 빠지는 날 없고 십자매의 경조사에 빠지는 일이 없다. 내가 우울하거나 심란해할 때면 잠깐이라도 달려 나와 결국은 나를 웃게 만들어주는 언니. 몸으로 실천하며 사는 언니를 보면 '나는 말로만 사는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일곱째 언니와 여덟째 언니는 모험가이다. 열정적이고 도전적이다. 생각도 삶도 변화무쌍하기 짝이 없다. 이 언니들을 만나면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고 갑자기 체온이 높아지면서 내 안에서 무언가가 끓는 게 느껴진다. 가끔 삶에 지치고 무력해질 때면 언니들이 내게 해주었던 말을 곱씹는다. "나는 힘들 때마다 너를 생각해. 너 참 잘 헤쳐 왔잖아" 그러면 금방 용기가 난다. '그래, 이언니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이 언니들에게 지지 않게 ' 용기와 자신과 오기로 배가 불러진다. 늘어진 내 삶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산소 같은 언니들.
십자매의 아홉 번째인 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세울 게 없다. 자매들에게 받기만 했지 해준 게 도무지 없다. 다만 나이 한 살 더 먹고 세상 공부 한 페이지 더해가면서 언니들의 소중함을, 자매애의 아름다움을 개달아가고 있다. 언니들은 이런 나를 놓고 그것만으로도 기특하다 머리 쓰다듬어줄 것이다.
열 뻔째는 동생. 그러나 이 또한 나에게는 언니이다. 동생 노릇이 무엇인지를 늘 웃으며 내게 가르쳐주는 언니이다. 상당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있건만 항상 구석진 자리에서 자기를 내세우기 보다 스며들 줄 아는 모습이 내게 즐거운 열등감을 준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다. 여성이 여성의 가장 강력한 동지가 될 수 잇음을 나는 십자매를 통해서 알았다. 이들은 나에게 고개 끄덕여주고 등 토닥여주는 나의 지지자이며 나의 준거집단(개인이 자기의 행위나 규범의 표준으로 삼는 집단)이다. 어리석은 자의 백 마디 칭찬보다 현명한 나의 한마디 비난을 택하듯이 나는 십자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인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었다. 그러나 틀렸다. 여자열이 모이면 접시가 아니라 잘못된 고정관념이 깨진다. 세상의 불의가 깨진다. 여자 열이 모이면 돌보고 나누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차별에 맞서자면 여자들은 단결하고 연대해야 한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가 떼 지어 감으로써 역류의 고통을 이기듯, 십자매도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일에 두려움 없이 앞장선다. 세상에는 수많은 자매연대가 있다. 더 넓게 세상을 보며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힘을 합치는 여자들이 적지 않다.
여자들아 모이자, 우리 모두 언니가 되어주고 동생이 되어주자. 하나보다 좋은 열, 여자 열이 모이면 열정이 생기고 그 열로 세상이 따듯해진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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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루즈를 발랐다.
봄날. 오한숙희, 서명숙..(제주올레이사장..그때는 건달백조)
그리고 나.
우리가 가장 예뻤을때였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