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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여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요구해

2010.02.10 00:17

강위 조회 수:1161 추천:137

 

<STRONG>당당한 여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요구해</STRONG>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덧난 상처에 바르는 똑똑한 연고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연애는 ‘특별’하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연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다 그렇지’라는 식의 결론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데, 아니, 모든 연애는 특별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연애에 대해 ‘할 말’ 없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할 말’ 없는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연애에 대해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연애를 인생의 동심원 중 핵심에 놓고, 그만큼 충실하게 연애하였다는 것이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연애의 흔적은 아로새겨질 수밖에 없다.

 

상처에 필요한 건 소금이 아닌 ‘연고’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연애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은 언니들의 연애담을 담고 있다. A급도 C급도 아닌, B급 연애. 일곱 명의 다 다른 연애 이야기를 읽으면서(아니 들으면서) 나는 일곱 명 모두에게서 겹쳐지는 나의 경험들 - 세상에나, 둘도, 넷도 아니고 일곱에 두루 걸쳐져 있는 고민과 갈등과 상처라니! -에 공감과 경악을 반복했다.

 

 

나 역시 “내가 인생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되는 시기인데 얘를 만나면 편하고 다리 뻗을 데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게을러”지기도 했고, “그동안 내가 쏟은 정성이 억울”하기도 했으며, “나의 모든 걸 줄 수 있을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모든 걸 헌신하겠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면서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에서 뭔가 이득을 얻어 가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묻”기도 했다.

 

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도토리 키 재듯 엇비슷한 연애 경력을 가진 이들끼리 ‘맞아, 맞아’ 맞장구치다가 어느 순간 허탈해지는 경험. 혹은 섬세함이나 설득력을 탑재하지 못한 사이비 상담사나, 시답잖은 일반론과 인격비하적인 질책을 퍼붓는 선무당 때문에 상처가 덧난 경험. 사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내걸고 ‘찐한 연애’를 많이 해 본 언니, 그 경험을 풍부하게 재해석해낼 수 있는 믿음직한 언니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단순히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은 좌판이 아닌, 저자의 가치관을 통해 한 궤로 꿰어진 꼬치구이다. 연애 베태랑인 큰언니가 다른 언니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내밀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움푹 패인 상처에 연고가 스미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헌데, 눈앞에 연고가 놓여 있는데도 막상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 더 아프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상처’에 대한 달콤한 유혹. 하지만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흉터가 훈장인 줄 착각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충고한다. 그러기엔 네 자신이 너무 소중하지 않느냐고, 네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여전히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 연고가 내게 꼭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당당하고 독립적인 녀자도 징징댈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애 경험을 털어놓거나, 연애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연애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데 그 이면에는 ‘니들이 뭘 알아?’하는 마음이 있다. 남의 연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무 살 남짓 어릴 때야 세상의 모든 연애가 다 비슷한 줄 알았지만, 속해 있는 세계가 다르고 만나는 상대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이비 상담’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특히나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 조언하기 될 경우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나도 모르게 학습된 가치관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하게 된다.

 

그럼에도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연애에 대해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그 안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집안에 온통 물난리가 나서 세간 살림이 물에 다 잠기고, 물이 턱까지 차올라 이제 곧 죽게 생겼는데, 그것이 ‘사랑’인 줄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이 빠지고 나면 다 망가진 집안을 둘러보면서 그제야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이 올지라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조언을 찾아야 한다.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날 수 있는가, 혹은 어떻게 여우짓을 하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연애 교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당당하고 독립적인 녀자인 네가 연애를 하면서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끝까지 네 욕망에 충실할 것’을 강권한다. 즉,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으면서 또한 내 욕구를 묵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건강하게 연애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정서적 친밀감이 중요한 여자라면, 그런 욕구를 표현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마라. 자기의 삶을 상대와 더 많이 공유하고 싶다면 그렇게 만들어라. (...) 다시는 징징대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네가 징징댄다고 욕해도 나는 끝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요구할 거라구, 라고 말하라. 그것이 진정한 여자 본위의 레이스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징징대든, 떠나가는 남자에게 울고불고 매달리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미련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쿨한 것이고 자존감을 드높이는 일이라는 걸 명심하자.”

 

B급에 대한 후회는 없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연애지상주의자’다. 수많은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지만, 단연 내 삶의, 내가 맺는 관계의 중심은 연애다. 지난 십 년의 시간 동안 나를 키운 8할은 연애였고, 그 안의 행복과 희열, 상처와 고통을 통해 성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겐, 나의 B급 연애들이 참 많이 소중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B급에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감정에 휩쓸리는 연애가 아닌, 나에게 맞는, 내가 원하는 연애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걸 어디서, 어떻게 찾는담.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큰언니 조언하신다.

 

"연애란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해둔 비밀스런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너의 삶의 뿌리로부터 만들어진,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만들어가는, 때 묻은 삶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애는 내가 나에게는 주는 선물이다. 운명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멋진 상대를 고를 수 있는 나의 안목과, 내 삶을 더욱 멋지고 근사한 것으로 만들려는 생활인의 노력이 주는 선물이다. 지루하고 구질구질하다고 하루하루를 내팽개치며 신기루만 쫓는 사람은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연애는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상의 순간들을 멋지게 만들려는 사람이 멋진 연애를 할 수 있다."

 

일상의 순간을 멋지게 만들려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단단한 근육이 필요하고, 훈장처럼 달고 있는 상처 위에 연고부터 발라야 한다. 그래, 이제야 기꺼이 연고를 손에 든다. 꾹 짜서 눌러보니 제법 묵직하고 뭉근한 느낌이 든다. 여기, 무지나 미숙함 때문에 패인 상처, 무조건 내어주면서 생긴 상처,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생긴 상처, 타인에게 상처주면서 생긴 상처 ……

 

상처들 위로 큰언니의 조언과 격려가 스며든다. 징징대든, 울며불며 매달리든, 내 자신의 욕망에 떳떳한 연애, 그 끝이 무엇이 되었든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먹 불끈!

 

<온라인 이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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