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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2009.11.23 11:46

지혜자유용기 조회 수:1099 추천:168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김영사, 2007

 

고등학교 때 세계사 공부를 하면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제도를 배웠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네 계층을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달리트’라는 새로운 계급을 알게 되었다. 달리트는 카스트에 들지 못하는 아웃카스트, 즉 불가촉천민이란다. 달리트는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침을 받는 그릇을 목에 걸고 다녔고, 발자국을 지우려고 엉덩이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녔단다. 1950년에 인도 헌법이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할 때까지! 20세기 중반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정말로 놀랄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나렌드라 자다브가 그 달리트 출신이란다. 그는 인도중앙은행 수석경제보좌관으로 근무했고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에서도 많은 활약을 했다. 현재 인도 최상위 랭킹 대학인 푸네 대학의 총장이고, 외국 언론은 차기 대통령으로도 평가하고 있단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BR>그가 자신의 출신 환경을 뛰어 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 책에서 그리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대의 이야기부터 풀어 나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두 사람이 온몸으로 맞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왔기에 지금의 자다브가 있게 된 것이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화자로 등장시키면서 두 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탄탄한 구성, 흥미진진한 이야기 덕에 집중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끄러운 번역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자다브의 아버지 다무는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현실의  부당함에 용감하게 맞선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높은 수준의 의식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인간으로서 존중받은 경험과 바바사헤브라는 선지자와의 만남의 영향이 컸다. 다무는 어린 시절 신문팔이를 하다가 어느 고라(백인) 사헤브의 눈에 띄어 그 집을 드나들게 된다. 그 집 부부와 딸은 다무를 똑같은 인간으로 대해준다. 다무는 그 집에서는 자신이 불가촉천민임을 잊고 지낸다. 그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한테 뭐가 옳고 그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느낌은 묘했고 강하고 힘이 넘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바바사헤브(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도 달리트다.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달리트를 일깨우고 통일된 세력으로 조직하여 사회적 평등을 이루고자 온몸을 던졌던 사람이다. 그의 연설을 듣고, 사회 운동에 동참하면서 다무는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다무는 삶의 존엄성을 성취할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는 신념 아래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켰다. 또, 아이들을 용감하게 키웠고 늘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다. 다무, 소누 는 어렵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믿고 존중하면서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았다. 그런 모습이 아이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다브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날, 다무는 병상에 누워서도 또렷한 정신으로 묻는다. 첫째로, 아들의 연구가 어떤 내용인지 물었고, 그 다음에 그걸로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말문이 막힌 아들에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아들처럼 많이 배운 젊은이가 정치를 하고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고 당부를 했다. 참으로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인가.

 

달리트. 그들은 같은 인간인데도 신분의 차이로 개, 돼지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살았다. 공용 우물도 마실 수 없었고 힌두교 신전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혹독한 천대와 무시를 받으면서 살았다. 자기가 개보다 못하다고 느꼈을 때 그 찢어지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종교와 신분은 나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지만, 온갖 시련을 헤쳐 나아간 이들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바바사헤브라는 성인의 선지자적 역할이 놀라웠고, 다다의 성실, 열정, 뚝심도 대단했다. 부모의 의식 수준, 교육 철학이 얼마나 자녀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또 한 번 절감했다. 인간의 의지가, 힘이 정말로 대단한 것이란 걸 새삼 느꼈다. 굳건한 의지에 성실함과 집중력을 더한다면 못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나 스스로가 한계를 짓고 그 틀에서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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