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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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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갤러리란, 화가란, 또 어른이란

2009.11.03 10:48

랄라 조회 수:1156 추천:135

박재동 선생님을 직접 뵌다는게 나에겐 얼마나 큰 설레임이었는지. 일요일엔 머리도 염색하고 새옷도 좀 샀었다. 사실 부드럽게 보이고 싶어서 파마를 하고 싶었는데, 헤어원장이랑 수다 떨다 그만 그이가 내 머리를 동강 내는 줄도 몰랐다. 이 옷을 입어 보고, 저 옷을 입어 보고....., 물론 결국은 몸에 설익은 새 옷은 걸치지 못하고 가장 익숙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서긴 했지만 말이다.

 

연구소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부모교육이 있는 날이라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온통 오늘 갤러리에 갈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 했었다. 이날 부모교육도 내 마음에 흡족했고, 수업도 물 흐르듯이 흘렀다. 판화를 구입한 사람한테 캐리커처를 그려주신단 명호샘 말씀을 들어 지난주에 이미 아래 수업 두시간은 빼 놓은 상태였지만 4시반이 후울쩍 넘어 5시가 되었는데도 나는 갤러리에 갈 용기를 못 낸다. 명호샘이 7시 반쯤 오신다는 말쌈을 들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유난히 싫어하는 코 찔지리 어린애마냥 명호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부울끈 세상 두려울게 없어지는게 나인데 스스로 나설랴치면 참 용기가 없어진다.

 

날씨가 추워 옷은 다 입고 나설까 말까를 반복하고 있다는 압살언니 메세지가 왔다. 언니 와라~~ 목을 매었다. 약초샘 옷자락 대신 압살 언니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하지만 결국 압살언닌 잘 다녀와라 하고 명호샘 숙제도 주신다. 유채지나, 김선주 선생님께 인사도 드리고, 박재동 선생님께는 명호라인임을 팔라고. 아이고~~ 망설여진다. 이대로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또 가고도 싶다. 이대로 도망가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다.

 

그래 아무 생각말자며, 전철에 올랐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란 생각을 말자고.

덜컹덜컹 2호선 신촌역을 지날 때 쯤 압살 언니 메세지가 왔다. 간다고 택시타고. 얼굴 보자고. 헤헤헤~~ 헤벌쭉 괜시리 긴장이 풀린다.

 

이 즈음부턴 막막하고 초조한 마음은 사라지고, 즐거운 여행이 된다. 숨을 옷자락이 있음 먼 발치서 선생님을 시일컷 보고 와도 좋을 것이다. 내가 굳이 드러나지 않아도 숨어서 그렇게 마음에 담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약초샘이 설명해준대로, 던킨 도너츠를 지나고, 횟집도 지나고, 우체국도 지나고, 커피숍을 끼고 우측으로 쭈욱 내려가봤다. 자인제노는 눈에 안띈다. 경복궁 담벼락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면서 이 골목 저몰목 헤매는데 아주 작은 집이 발견된다. 너무도 소박하고, 너무도 아늑해보이는.

 

도착해서 아주 조용히 문을 밀치고 들어섰는데, 그만 그 작고 아담한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내 생전 이렇게 작은 갤러리는 처음 보니까. 그리고 조용히 실소하고 만다. 명호샘 옷자락 뒤에 압살라 옷자락 뒤에 숨을 수도 없겠구만. 너무나 작고 아담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닥다닥 가까이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구조. 문을 밀고 들어왔으나 도망갈 수도 없다. 너무나 작아서. 은수를 봤다. 그리고 이내 익숙한 얼굴들도 보인다. 유채지나 선생님, 김선주 선생님, 오한숙희 선생님, 최강기 언니. 그리고 그분 머리가 허옇고 약간은 마른 그리고 온화한 듯 하지만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신 그분! 박재동 선생님이 보인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분 뒤 뒤 뒤에 가서 섰다.

 

손병희라는 가수 분이 음악을 부르는 내내, 나는 박재동 선생님을 뒤태를 감상했다. 아주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손 스케치북을 드셨고, 연필이 아니라 붓펜을 잡고서 노래부르는 가수를 그리기 시작한다. 선은 날렵하고 빠르다. 그러면서도 진중하고. 팔을 먼저 완성하지 않고 기타를 고르는 손을 먼저 허공에 잡아 놓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아! 하는 감탄이 나왔다. 노래에 집중해야만 하는데, 사실 노래가사는 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그분의 팔을 잡고 제가 그 아버지의 그 그림책의 그 그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 가득 넘쳤다. 콩닥콩닥! 심장이 정말 터져 버릴 것만 같아. 그리고 그 작은 갤러리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내 심장 소리를 다 들을 것만 같아서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내 심장 소리를 듣지는 못하는 것 같다.

 

휴~~

기타를 치는 가수의 모습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내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제 가만가만 노랫가락도 들어온다.

 

아~~

차암 좋다. 이런 갤러리, 이런 공연이 있을 수도 있구나. 도망치고 안 왔으면 난 정말 평생을 후회했을 것이다.

 

구입한 사람들의 그림평이 이어졌다. 나도 그림을 골라야지. 좁아서 자세히 볼 수도 없지만, 난 곧 내가 어떤 그림에 끌리는지 알았다. 노란 은행 나무 밑에서 우수수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을 두팔 벌려 즐기는 그림도 좋았다. 벌떡벌떡 일어서는 옥수수도 좋았다. 또 내 바로 뒤쪽에 걸려있던 노무현 대통령 그림도 좋았다. 그런데 아주 먼 발치에서 바라보니 가을 정취를 뒷 배경으로 놓고, 야외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부부가 차를 마시고 있는 5번 그림이 내 눈에 들어온다. 다정한 부부! 흐드러지게 깊어진 가을전경! 그리고 차를 나누는 모습! 마음 차암 따뜻해진다. 내가 늘 부모님께서 보고 싶었던 모습. 엄마 아빠가 그렇게 늘 다정했으면 싶었던 모습.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다. 엄만 아빠가 아닌 딸 아들과 애착이 더 깊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자식보다는 사랑하고, 사랑했고, 일생의 이런저런 것을 공유한 그 사람과 머리 허애지는 인생의 황혼 무렵 흐드러진 가을 풍경을 차 한잔을 놓고 즐길 수 있는 여유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사람이 남편이 되지 못한다면 애인이래도 ㅋㅋㅋ 난 아직도 남녀 간의 따땃한 사랑을 꿈꾸는 18세 소녀인가......,

 

오한숙희 선생님이 그림평을 하라는 주문이 왔을 때, 나는 불쑥 손을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아마도 내 볼이 빨개지는 것을 감출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저질러졌지만, 더듬더듬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지만, 말할 수 있어서 말해서 좋았다. 헤효~~

 

전에 나에게 갤러리란 숨소리도 내면 안되는, 나 같은 문외한은 감히 미술평을 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전에 나에게 화가란 방떡 모자 눌러쓰고, 법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 속에 천부적인 솜씨를 혼자서 누리는 사람이었다.

전에 나에게 어른이란 잔뜩 권위를 내세워 함부로 어른 앞에서 내 뜻을 말하기엔 꺼려지는 하여 나는 정말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오늘 나에게 갤러리란 그림으로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화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이고,

오늘 나에게 화가란 그리고 그려주고 소통함이 행복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고,

오늘 나에게 어른이란 권위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세상에 서스럼없이 내어 놓을 수도 있는 용기 있고 큰 사람들이다.

명호샘을 따라 만나는 사람들은 백발이 성성하지만 청년 못지 않은 아름다운 향기를 내품는 사람들이다.

하여 나도 닮아 살고 싶다는 멋진 소망을 품게 만든다.

 

명호샘 말씀대로 2009년 11월 2일은 주먼 가벼운 내가 박재동 선생님의 판화를 구입한 날이고,

박재동 선생님이 친히 그려주신 캐리커처를 선물 받은 날이며,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고장자연씨를 깊히 생각해 보는 날이며,

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것들을 내어 놓는 보석같은 어른들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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