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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아줌마 보고서 (한겨레21 임지선 기자의 취업기)2009.10.21 11:32 요즘 한겨레 21의 특집기사는 기자들의 노동현장 취업 보고서다. 임지선기자는 갈빗집과 감자탕집에서 한달간 일했다.
애개...한달 일하고 다 아는것처럼 글쓰는거 날조아냐?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물어보고 상상해서 쓴 소설 아니다.
땀흘려 팔다리 움직여 고단한 노동끝에 나온글이다. 계속 연재중이라 이번호에는 더 심층 취재가 있지만. 요부분만을 짧게 퍼왔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식당 아줌마. 우리의 자매이며 이웃이며 이모, 언니 동생들이다. 조금이라도 도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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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감자탕집 언니들은 지난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 주방과 홀에 사람이 1명씩 있으니 대체 인력이 없는 상태다. 이렇게 직원 수를 줄인 지 3개월 됐다. 사장은 곧 1명을 더 뽑겠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언니들은 눈치를 보며 누구 하나 쉰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쉬면 가게는 어떻게 해.” 속 터지는 소리만 한다. 사장은 휴일을 모른 척한다. 쉬지 않는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9월 넷쨋주, 나와 주방 언니는 하루 차이로 생리를 시작했다. 내가 생리통에 고통스러워하자 주방 언니는 비밀스럽게 말했다. “반찬 냉장고 앞에 잠깐 엎드려 있어. 내가 손님 오나 보고 있을게.” 주방 입구의 반찬 냉장고 앞은 구석진 곳이어서 밖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더럽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 30분 이상,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휴게시간이란 ‘사용자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란다.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인천 B감자탕집에 휴게시간은 단 1분도 없다. 정식 휴일도 못 쉬는데 생리휴가가 통할 리도 없다. 손님과 사장의 눈을 벗어나 앉을 수 있는 곳은 화장실과 이 냉장고 앞뿐이다.
수술하면 당분간 일을 할 수 없으니…
다음날은 주방 언니가 그 자리에 엎드렸다. 언니는 주방 문턱을 베고 방석을 덮고 누워 끙끙 앓았다. 주방 언니 자궁에는 혹이 있다. 수술을 해 자궁을 들어내야 한단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당분간 식당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방 언니의 생리통은 극심했다. 생리 기간에는 하루에 진통제 한 통을 다 먹었다. 따뜻한 바닥에 10분만 배를 깔고 있을 수 있다면, 하고 그는 바랐다. 하지만 그는 지난 석 달을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버텼다. 방석 하나를 덮어주었다.
9월18일 금요일, 점심을 먹으려고 수저를 드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무거운 뚝배기를 들고 오전 내내 뛰어다녔더니 팔다리의 힘이 다 빠졌다. 주방 언니를 쳐다보는데 언니도 손을 떨고 있었다. 주방 앞 준비대에 서서 밥을 먹는 참이었다. 어이가 없으니 서로 웃음이 나왔다. 식당일을 한 기간 중 이날이 가장 바빴다.
애초에 바쁘기로 예약이 된 날이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산악회 20명, 친목회 14명이 예약을 했다. 오전에 수영장 회원 20명 예약이 추가됐다. 모두 저녁 7~8시였다. 가뜩이나 손님이 많은 편이라는 금요일 저녁, 혼자 얼마나 뛰어다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침 교대 시간부터 사람이 많았다
. 점심시간에는 밀려드는 손님에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뼈해장국을 나르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오고 한 팀은 나가면서 “여기 계산이오!”를 외쳤다. 뜨거운 뚝배기를 아슬아슬하게 내려놓고는 새로 온 손님들에게 금방 간다고 외치고 정문 쪽에 있는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해줘야 했다.
손님 54 대 직원 1의 전쟁터
이렇게 넓은 가게에, 손님이 몰리는 주말 식사 시간대까지 홀서빙을 단 1명만 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은 이날도 일할 사람을 더 구해주지 않았다. 오후 5시께, 사장이 홀로 나타났다. 그러고는 주방과 홀 사이에 서서 끝도 없이 잔소리를 했다. “밥 볶을 때 성의 있게 해라” “저기 18번 주문 받아라” “음식 먼저 갖다드려라”
….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시켰다. ‘니가 해!’라는 말이 목구멍 아래서 부글거렸다. 산악회 20명, 수영장 회원 20명, 친목회 14명은 모두 저녁 7시30분 언저리에 몰려왔다. 가게는 전쟁터였다. 나는 전쟁터 한가운데 서서 이대로 전사할 것만 같았다. 그날 밤엔 골반이 빠지는 듯 아팠다.
주방 언니는 감자탕집에서 일한 지가 벌써 4년째다. 그 사이 그는 완전히 사장의 노예가 됐다. 사장은 그에게 식당 뒤쪽에 배추와 오리를 키우게 했다. 주방 언니는 매일 오리장 청소를 하고 오리 목욕을 시켰다. 오리를 키우기 전에는 도사견 5마리를 키웠단다. 개똥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추가 업무지만 돈을 주진 않는다.
사장의 횡포에도 주방 언니가 묵묵히 일하는 이유가 있다. 주방 언니의 남편은 직장이 불안정하다. 의자 공장을 하다 망한 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언니가 이 감자탕집에서 벌어오는 돈은 귀하다. 집도 5분 거리여서 하굣길에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가게에 들른다. 언니는 이때 아들에게 1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다. 어떤 날은 감자를 볶아놨다가 건네며 저녁 반찬으로 먹으라고 한다. 3개월이 아니라 더 오랫동안 휴일 없이 일을 시켜도 계속 다닐 수밖에 없다. 이왕 익숙해진 일이니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도 생각한다.
A갈빗집 팀장님도 B감자탕집 주방 언니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식당 아줌마’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는 자영업자가 급증한 시기이기도 하다. 제조공장들이 쓰러지고 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셈이다. 몰락한 가장의 부인들은 고스란히 식당으로 떠밀려왔다.
최근 자영업의 몰락은 식당 아줌마의 위기이기도 하다. 식당 주인들은 가장 먼저 직원 수를 줄였고 식당 아줌마들은 점점 더 혹사당한다. 식당에 배달된 인천 지역 신문을 보는데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인천 지역에서 중·장년층 여성의 취업 건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그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3년새 2만4천 명이 늘어 20만6천 명의 중·장년층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 하늘 아래만도 비정규직 아줌마가 이렇게나 많다. 감자탕집에서 일한 지 5일째 되는 날, 난 사장에게 “사흘 뒤인 9월23일에 쉬겠다”고 말했다. 교대 시간이라 주·야간 언니들이 함께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사장은 이유를 물었다. 애초 취업할 때 한 달에 두 번은 쉬기로 했는데 사장은 그걸 아예 잊은 듯했다(근로기준법상에는 일주일에 1회 이상 유급 휴일을 주도록 돼 있다).
개인적으로 일이 있다고 했다.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쉬라고 했다. 그러고는 주방 언니에게 나 대신 일할 1일 파출부를 부르라고 했다. 그때부터 언니는 “하루는 푹 자도 되니 정말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직 미숙하니까 파출부로 대체할 수 있는 거지, 우린 못 쉰다”고 했다.
“하루 쉬겠다”에 화들짝 놀라는 언니들
얼마 뒤 감자탕집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사장은 호통을 쳤다. “놀게 해줬더니 마음이 변해서 온 거 아냐! 그만둘 거면 당장 나가!” 축축한 앞치마를 벗는데 눈물이 났다. 주방 언니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는 내일도 생리통을 참고 진통제를 한 통씩 먹어가며 일을 할 것이다. 가게 문을 나섰다. 자동문이 어김없이 <클레멘타인>을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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