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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낮잠을 모사한 고호

2009.09.16 19:44

랄라 조회 수:1884 추천:171





<사진1>밀레의 낮잠

<사진2>고흐의 낮잠

 

사실 오늘 나를 퍼엉퍼엉 울게 한 대목은 바로 고호에 대한 성수선의 이야기이다.

 

난 의도하지 않은 채로 고흐의 초기작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얼음땡'을 하듯이 순간 그대로 멈춰섰다. 너무 놀라 심장이 다 쿵쾅거렸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후기작들과 달리 초기작들은 <감자 먹는 사람들>(1885)같은, 가난한 농촌 사람들을 묘사한 어두운 색채의 그림들이었는데, 그중 몇몇운 밀레 그림의 '모사'였다. 설마 싶어서 벽에 붙어 있는 설명을 읽어보니, 고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880년부터 밀레의 판화 및 사진을 보고 데생의 기초를 다졌으며, 밀레와 마찬가지로 농부들을 주제로 습작을 했다고 한다.

 

그저 천재라고만 생각했던 고흐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걸고 그림을 그렸는지 그 절박함과 간절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성수선, [밑줄긋는 여자], p.111, p.113

 

그런 말과 함께 올라 있는 흑백의 두개의 작품-고흐의 낮잠과 밀레의 낮잠을 보면서 나는 또 주착없이 눈물을 솓고 말았다. 일에 있어서 내 오래된 컴플렉스가 일거에 해소되는 기쁨도 있었지만, 따끔따끔 이 컴플렉스는 아직도 날개 달지 못한채 내 가슴을 비수가 되어 찔러대고 있었다.

 

Bondy(본디)의 PECS를 흉내내는 특수교사!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 사람의 메뉴얼을 뒤적뒤적이면서 모사를 해내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그 사람의 뜻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직은 내꺼와 되지 않은 연구소 교육프로그램! 잘하고 있지 않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떳떳히 내가 이것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업었다. 그저 나는 그 많은 이론서과 교육실천서 중에서 이 사람 Bondy의 PECS가 끌렸던 것이고. 그의 교육과정을 내 연구소에서 실현해내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다했다. 사진을 배우고, 포토샵을 배우고. 읽고 또 읽고. 그런데도 떳떳하지 못한!

 

멈추려해도 꾸역꾸역 참아지지 않는 눈물이 내 뱃속에서 올라왔다. 주착없이 와 이리 눈물이 많이 흐르는고. 난 고호처럼 당당하지 못했다. 가난한 고호였지만 하여 누구에게 가서 당당히 레슨을 받을 수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밀레의 그림을 택해 좌절하지 않고 그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그림의 기본기를 닦은 것이다. 그리고 그 모사의 흔적을 당당히 세상에 공표했다. 나 또한 가난하고 영어도 짧아 본디를 만나라 미국에 갈 형편도 안되고, 그렇다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구다운 연구를 하는 공부를 사사 받기엔! 그건 나로써는 너무나 사치여서 한번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을 대학원에 먼저 보내고 빚에 허덕이면서 정말 연구원 다운 연구원이 되어보고 싶어 대학원에 가고 싶었어도 나에게 대학원은 사치 그자체였으니까.

 

하여 나는 Bondy의 메뉴얼을 가슴에 품고, 읽고 또 읽었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지 못하는 자폐아에게 소통의 기술을 가르치는지 상상하기도 하고, 또 글자로만 되어 있는 그것을 실천하면서 깨져가고. 그런데 여전히 아직도 나는 그의 PECS를 완전히 재연해 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오늘 나는 얄팍한 대학노트 열권과 4색 연필을 한자루 샀다. 그리고 아주 작고 담담한 어조로 옆반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다. '언니 나 그림을 그리려고 해. 언니 것도 샀어.' Bondy의 첫번째 책은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남의 힘도 빌리기도 하고 번역해 냈는데, 이 두번째 책! Pictur's Worth는 내 힘으로 번역해 내고 싶네. 언니 나 이 사람 책 '필사'부터 시작할꺼야. 모르겠다. 옆반 언니가 왜 그러마. 그렇게 하자고 해주었는지. 왜 동참해 주겠다고 했는지. 그 말을 언니에게 전하는데도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 글을 올리는 지금도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그의 책을 필사해내고,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 찾아가면서 나는 그의 책을 완역해 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이번에는 완전히 필사도 완역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날까지. 몇권의 노트가 들어도 나는 이번 만큼은 끝까지 그의 책을 필사해 내고, 완역해내리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꼬옥 그를 만나고 싶다. 미국에 가서. 정말로 감사했노라고. 당신 덕분에 내가 우리 아이들 가르치는데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노라고. 내가 필사하고 완역한 그 노트에 그분의 싸인을 받아오고 싶다. 이제 나는 Bondy의 따라쟁이임을 감추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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